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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믿음의 상급 4(히 11:15,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 구절의 전반부는 적극적인 국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14절에서 말한 것을 확대시키고 있다. 세상을 버리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더 나은 것을 향하여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하늘을 믿고 하늘 자체를 추구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적인 이익을 경멸하면서도, 참된 부요를 추구하지 않고 세상적인 즐거움에 몰입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육신적인 오락이나 방탕은 경멸하며 보다 진지한 것에 자신들을 드리려 하면서도, "배부름을 얻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한다"(사 55:2).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
믿음의 상급 3(히 11:15,16)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러나 다음 구절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이 점에 있어서 에서와 결정적이고 복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에서는 영적인 것보다 잠시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더 높게 평가함으로써 자기의 장자권을 팔았다. 또한 그들은,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서로 말했던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달랐다(민 14:4). 또한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보다 자기들의 돼지를 더 크게 여겼던 거라사인들과 대조를 이룬다(막 5장).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바위 같은 사람들과는 다르다(눅 8:13). 그리고 베드로후서 2:20-22에서 묘사되는 배도..
믿음의 상급 2(히 11:15,16)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이 말씀과 바로 다음에 나오는 말씀 사이에는 삼중적인 연관이 존재한다. 첫째, 사도는 13절 초두에서 자기가 언급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그는 히브리 사람들이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집중시키도록 하고 있다) "믿음으로 죽었다"고 확언했다. 그 다음부터 16절 마지막까지의 말씀 속에서 어떻게 그런 주장을 했는지 그 증거를 제시한다. 둘째, 사도는 14절에서 시작한 추론을 15절에 계속해 나간다. 그 족장들의 고백은 그들의 마음이 하늘에 가 있었음을 명백히 한다. 갈대아로 돌아가기를 싫어한 싫어한 사실에서 그 점은 더욱 확증된다. 셋째, 사도는 반대 주장을 예기하면서 그 주장을 미리 논박한다. 곧, 하나..
믿음의 상급 1(히 11:15,16)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하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1:15,16).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서신을 처음 받았던 성도들의 특별한 처지를 상기해야겠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이 서신의 내용을 분변할 가장 좋은 위치에 서게 되며, 그 내용을 우리 자신에게 가장 적확하게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히브리 사람들은 육체를 따라서 유대인들이고, 우리는 육체를 따라서 이방인들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와 한결같이 "거룩한 형제들, 하늘의 부르심에 참예한 자들"이기 때문이다(3..
믿음의 견인 6(히 11:13,14)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용하되(필요할 경우에) 그것들을 남용하지는 않음으로써(고전 7:31). 우리가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명백히 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 때 몫으로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것에 만족해야 한다(빌 4:11). 양심적으로 우리의 책임을 감당하려고 추구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간섭하는 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벧전 4:15). 모든 일에 겸비하여 절제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모든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한다(벧전 2:11).♥ 또한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 버리고 땅에 있는 우리 지체들을 죽임으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인내로 달려 가야 한다(히 12:1). 매일같이 이 세상의 덧없음과 불확실성을 ..
믿음의 견인 5(히 11:13,14)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전달해 주는 사상에 있어서는 매우 유사하지만, 두 용어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하나는 지위와 차지한 자리를 더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조건을 더 가리켜 말한다. 곧 그 차지한 자리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처신하였는지를 언급하는 말이다. 그들이 "외국인"이었던 것은, 그들의 본향이 하늘에 잇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그네"였던 것은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말한 바와 같다. "'외국인'이 되지 않고서는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참된 외국인임을 깨닫기만 하면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나그네' 이면서도, 나그네 길에서 이 세상의 모든 도성과 교회들을 방문할 수 있다. ..
믿음의 견인 4(히 11:13,14) "그것들을 환영하며". 냉담하고 현실적인 태도로 받았다는 것이 아니다. 뜨거운 마음을 다해서 환영했다는 말이다. 참된 믿음이 구원의 약속들을 붙잡을 때 그러한 성질을 나타내 보인다. 확신의 열매는 언제나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감사하며 기쁨에 넘치게 받아들인다. 믿음은 영적인 것들의 가치를 불변할 뿐 아니라, 영적인 것들의 실체를 온전히 확신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사랑한다. 믿음은 승인할 뿐 아니라 집착한다. 성경에서 믿음을 보는 것뿐 아니라 맛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믿음은 총명으로 "보고" 마음으로 "확신하고". 의지로 "환영한다". 그래서 이 구절에서 나타난 동사들의 "순서"는 실제적인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먼저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보고 묵상해야 ..
믿음의 견인 3(히 11:13,14) "이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믿음 안에서 죽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것들을 아는 지식을 얻으려고 부지런히 애쓰야 한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총명이 밝아져야 한다. 매일 우리는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소서". "내 길을 주의 말씀으로 지도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담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묵상하고, 기억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의 생각과 삶이 그 말씀의 교훈에 따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이 총명을 밝혀 주는 빛으로 뿐 아니라 우리의 길을 비추어 주는 등불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