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6/03 (15)
En Hakkore
믿음의 견인 6(히 11:13,14)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용하되(필요할 경우에) 그것들을 남용하지는 않음으로써(고전 7:31). 우리가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명백히 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 때 몫으로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것에 만족해야 한다(빌 4:11). 양심적으로 우리의 책임을 감당하려고 추구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간섭하는 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벧전 4:15). 모든 일에 겸비하여 절제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모든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한다(벧전 2:11).♥ 또한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 버리고 땅에 있는 우리 지체들을 죽임으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인내로 달려 가야 한다(히 12:1). 매일같이 이 세상의 덧없음과 불확실성을 ..
믿음의 견인 5(히 11:13,14)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전달해 주는 사상에 있어서는 매우 유사하지만, 두 용어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하나는 지위와 차지한 자리를 더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조건을 더 가리켜 말한다. 곧 그 차지한 자리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처신하였는지를 언급하는 말이다. 그들이 "외국인"이었던 것은, 그들의 본향이 하늘에 잇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그네"였던 것은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말한 바와 같다. "'외국인'이 되지 않고서는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참된 외국인임을 깨닫기만 하면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나그네' 이면서도, 나그네 길에서 이 세상의 모든 도성과 교회들을 방문할 수 있다. ..
믿음의 견인 4(히 11:13,14) "그것들을 환영하며". 냉담하고 현실적인 태도로 받았다는 것이 아니다. 뜨거운 마음을 다해서 환영했다는 말이다. 참된 믿음이 구원의 약속들을 붙잡을 때 그러한 성질을 나타내 보인다. 확신의 열매는 언제나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감사하며 기쁨에 넘치게 받아들인다. 믿음은 영적인 것들의 가치를 불변할 뿐 아니라, 영적인 것들의 실체를 온전히 확신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사랑한다. 믿음은 승인할 뿐 아니라 집착한다. 성경에서 믿음을 보는 것뿐 아니라 맛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믿음은 총명으로 "보고" 마음으로 "확신하고". 의지로 "환영한다". 그래서 이 구절에서 나타난 동사들의 "순서"는 실제적인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먼저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보고 묵상해야 ..
믿음의 견인 3(히 11:13,14) "이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믿음 안에서 죽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것들을 아는 지식을 얻으려고 부지런히 애쓰야 한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총명이 밝아져야 한다. 매일 우리는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소서". "내 길을 주의 말씀으로 지도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담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묵상하고, 기억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의 생각과 삶이 그 말씀의 교훈에 따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이 총명을 밝혀 주는 빛으로 뿐 아니라 우리의 길을 비추어 주는 등불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믿음의 견인 2(히 11:13,14)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그들이 믿음을 따라 죽었는데, 바로 그 믿음은 1절에서 묘사한 믿음과 같은 것이다. 그 믿음은 의롭다 함을 받고 거룩하게 함을 받는 믿음이다. 그들이 "믿음을 따라(안에서) 죽었다"는 것을, 죽을 시간에 믿음을 실제로 행사하였다는 식으로 반드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보다 더 엄격히, 그들은 믿음에서 떠나 배도한 적이 없었다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비록 그들이 믿는 바를 얻었거나 실제로 소유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상의 순례길이 끝날 때까지 믿는 바를 확신에 넘쳐서 바라다 보았다, 여기에 그들의 믿음이 가진 다섯 가지 효력, 또는 작용들이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주의깊게 따로 나누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첫..
믿음의 견인 1(히 11:13,14)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11:13,14) 사도는 초기 하나님의 자녀들 몇 사람이 보여준 탁월한 믿음의 행동을 몇 가지 묘사하여 왔다. 이제 잠시 멈추어 서서, 그가 이미 열거한 사람들과(39,40절을 보면 명백해지듯이) 앞으로 더 소개될 사람들의 믿음이 지닌 보편적 특성을 소개한다. 13절에서 이 특성을 제시한 다음에 연이어 세 구절을 통해서 그것을 확대설명한다. 이 일을 통해 성령께서 목적하시는 명백한 의도는, 끝까지 지치지 않고 장애들을 견디어 내며 지속되는 믿음이 절대로 필요함을 히브리 사람들에게 강..
사라의 믿음 5(히 11:10,12)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여기에 전체의 비밀이 있다. 바로 사라가 확신을 가졌던 근거와 믿음으로 의지했던 터가 여기 있다. 그녀는 앞을 가로막은 장애물을 거쳐서 하나님의 약속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분명한 등불을 가지고 난관과 장애물들을 보았던 것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사라의 행동은 이러하다. 곧 그녀는 하나님이야말로 미쁘시다고 "판단" 했고, 계산했고, 평가를 내렸다. 사라는 자기로 소망을 갖게 한 말씀을 주신 그 하나님이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질 것임을 확신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라는 들었다. 그녀의 경우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견고히 믿었다. 루터는 잘 말하였다. "만일..
사라의 믿음 4(히 11:10,12) "잉태하는". 여기서 "또"(우리말 개역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음 - 역자주)라는 말이 앞에 나온 동사들과 뒤에 나오는 것을 연결시켜 준다. 사라가 힘을 받은"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잉태하게" 된 것도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았다. 여기서는 사라가 믿음을 끝까지 견지하는 모습을 암시한다. 그녀는 낙태나 유산을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줄곧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다. 이 점은 오늘날 책에서 아주 조금밖에 다루어지지 않는 한 가지 문제를 제시한다. 곧 삶에서 가장 어렵고 갈등이 심한 시기에 안전한 출산을 위하여 하나님을 의뢰해야 할 기독교 여성의 의미와 특권이다. 예배의 행위를 통해서만 믿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의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믿음을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