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성화론 (Sanctification)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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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칭의와 성화 칭의와 성화의 관계는 로마서 3장에서 8장까지 명확하게 나타나있다. 로마서는 신약성경의 위대한 교리적 서신이다. 5장에서 우리는 믿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선언하는 것을 발견한다.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그의 은혜 안에서 서로 마주대하며 사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고 끝까지 지키심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 안에서 즐거워하는 삶을 산다. 그러나 이러한 복들이 참으로 놀라운 것들이지만 깨어 있는 양심은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함을 절감하는 것이다. 즉 우리 속에 내재해 있는 죄의 권능과 오염으로부터 건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로마서 6장과 7장에서 길게 다루면서 근본적으로 성화의 다양한 측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첫째로 신자는 법정적으로..
1. 중생과 성화 이것은 중생에 대한 글을 비판적으로 읽은 자들과 성화의 특질을 다룬 글들을 세밀하게 따르는 자들에게 부각되는 주제일 것이다. 즉 우리는 중생할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과 성화에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 사이의 진짜 차이가 무엇인지를 전부는 아닐지라도 거의 대부분 다루지 않았다. 그 둘 사이를 구분 짓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것들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선을 긋고자 한다면 그 주도적인 차이가 무엇인지를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 두 세 단락에서 이 점을 다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각각의 관계성을 부각시키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 말미암아 이 문제를 고려하는 일에 도움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
샬롬! 추웠던 지난 겨울, 사실 어렵고 무거운 주제로 시작하기는 조금 부담감이 있었지만, 영적성장시리즈를 이어 주님께서 제게 작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어렵사리 고전을 구했고, 4개월의 짧은 기간 타이핑을 하고 성경을 찾아 읽고 딸아이가 만들어준 성구가 담긴 그림카드를 첨언하며 무한 반복 묵상하는 동안 한번쯤 공부한 내용들을 정리해 볼까 해서 메모장에 옮겨 놓기도 했었지만 마지막회의 내용이 결론을 명쾌하게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꼭 잊지말아야 할 말씀이 있다면, "성도'(saint)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엡 1:4),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책과 오염으로부터 깨끗함을 받은 자이며(히 13:12),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받쳐진 자요(고후 1:21-22),..
처음에 언급했던 것과 같이 본 장을 쓰는 우리의 주된 관점은 하나님의 도우심 아래서 죄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의심이 솟구치며 사단의 시험으로 고난을 당하는 백성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있음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한편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 늘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딤후 3:5,7). 그들은 우리가 지적한 것들처럼 정말 위험한 사람들이다. 반면에 경건치 않은 사람들,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는 자들이 있다(유다서 4절). 그런 것을 지성인의 견해로 말하면서 같은 짓을 남용하는 자들, 하나님을 모독하면서 마음의 평강을 얻고자 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태가 도발될 수 있을지라도 그런 자들에게 어..
오 사랑하는이여, 여러분이 직면하고 있는 모든 유혹, 여러분이 힘들어하는 패배, 여러분이 경험하는 모든 고통스러운 일들은 믿음이 강력하게 활동할 기회요 도전의 때임을 실감하게 만들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다르게 하는가? 여러분은 여전히 죄에 종속되어 있다고 불평할 것이다. 여러분은 의무수행에 뒤섞여 있고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을 더럽힌다고 투덜댈 것이다. 여러분은 난 죄짓는 일만 한다고 자주 생각할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할 때 내적으로 악이 일어나 그 일을 멈추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또는 기도시간을 가지고자 할 때 믿음이 없는 생각들, 육체적인 상상들, 세속적인 욕망들이 내 영혼을 삼키려고 덤비는 것을 경험한다. 그것들을 물리치려고 하지만 헛될 뿐임을 경험한다. 겸손함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행한 가장 큰 잘못은 그들 자신들 안에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발견되는 것을 발견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실지로 다른 사람들의 경건의 겉모습이나 육적인 매력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불만족스런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들의 꽃과 같이 참으로 육체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사 40:6). 그러나 그 다음 구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그리하여 꽃이 시들고 마는 것이다. 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아릅답게 보이는 것을 경건한 것으로 잘못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 사랑하는이여, 왜 성도들이 단지 사람들이 그럴싸하게 꾸민 것을 온유하고 어린양처럼 유순한 것으로 보고자 하는가? 그는 계속적으로 친절하고 남에게 빌붙어 사는 아첨꾼으로 행세하는 것인..
시편 기자가 확인한 것을 보라. 그처럼 악한 자들에게 눈길을 주었던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율을 행하였으니이다"(시 73:15). 그렇다.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은혜의 방편들을 사용하는 것이 헛되다 왜냐하면 내주하는 죄로부터 건짐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함을 듣게 될때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그런 소리는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 될 것이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저희를 참으로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시 73:16-18). 얼마나 엄숙한 고백이란 말인가! 온 종일 신실한 성도들을 성가시..
앞 장에서 우리는 성화에 있어서 믿음의 역할을 대략적으로 다루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 아래서 죄로 인해 힘겨워하고 의심의 안개를 걷어내지 못하고 있고 사단의 미혹에 고통당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큰 위안을 주는 가르침을 제시하고자 한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왜 위로하라 하시는가?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야말로 지상에 사는 백성들 중 가장 깊은 고통 중에 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때로 지각에 뛰어난 마음 깊은 평강을 누리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만끽할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큰 침체에 빠지며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압박과 신음이 그들의 삶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게 됨을 경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