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77]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77]

En Hakkore 2024. 6. 3. 11:23

믿음의 견인 3(히 11:13,14)

"이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믿음 안에서 죽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것들을 아는 지식을 얻으려고 부지런히 애쓰야 한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총명이 밝아져야 한다. 매일 우리는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소서". "내 길을 주의 말씀으로 지도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담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묵상하고, 기억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의 생각과 삶이 그 말씀의 교훈에 따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이 총명을 밝혀 주는 빛으로 뿐 아니라 우리의 길을 비추어 주는 등불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따라서 행해야 한다.

셋째, 영혼이 정규적으로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다함 없는 사랑과 신기한 은혜와 무한한 긍휼히 여기심과 현재 우리를 간구하심을 생각하면서 경배하고 찬미를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법에 얽매인 정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마음을 뜨겁게 하고, 마땅한 일을 행할 힘을 공급하며, 그를 기쁘시게 할 마음의 '소원'을 갖게 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약속" 이라는 말은 환유법적인 표현이다. 곧 약속된 것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자 그대로 하면 그들은 "약속을" 받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들었던 것이 그들의 믿음의 기초였기 때문이다. 10,14,16절을 보면 그 점은 명백하다. 약속된 것들은 복음 시대의 영적인 복락과 장래 하늘의 기업에 관한 것이었다.

조상들과 "장로들"에게 주어진 그 약속들은 복되신 "후손"인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고, 가나안을 통해서 모형적으로 나타난바 된 하늘에 관한 것이다. 13절 첫 소절은 '같은' 약속들이 아벨과 에녹과 노아에게 주어졌음을 명백히 한다(물론 그 외양적인 모습은 여러 가지였지만),

그 약속들은 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반복되어 주어진다. 그 사람들은 각각 약속된 메시야를 철썩같이 기다리며, 하늘의 영광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죽었다. '그렇게' 죽는 것이 그들 자신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이 고백한 것의 실상을 확증해 주었던 것이다.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받았다"는 말의 헬라어는 실제로 차지하고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믿음은 아직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한 것을 의뢰하고 의지한다. 믿음의 삶의 내용은 크게 약속된 것들을 실제로 얻어  누리기 전에 그것들을 붙잡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원히 양식을 얻고 힘을 내게 되는 것은, 그 약속된 것들의 아름다움을 묵상하고 미루어 생각해 봄을 통해서이다. 그리스도인이 현재 갖는 영적 행복은 실제로 그 약속된 것들을 소유하는 것보다는 약속과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하게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롬 8:18).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그들의 총명의 눈이 하나님에 의해서 밝혀졌으며(엡 1:18). 그래서 약속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과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그것들을 멀리 본 것이다. 실로 그 약속들은 먼 장래에나 이루어질 것들이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은 멀리까지 볼 수 있는 힘을 부여받아 강하다.

아브라함이 그러하였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상 주시는 이심을 바라보며,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은" 모세도 그러하였다(히 11:26,27).

베드로후서 1:9에 나타난 대조는 실로 성숙한 것이다. 우리는 그 말씀 속에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더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계발하지 못한 결과로 "멀리 볼 수 없다".

"그것들을 확신하였으며".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부분이 번역되어 있지 많다 - 역자주). 이 표현은 자신의 말씀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영혼이 만족하게 인정하였음을 공표하는 말이다. 마음으로 참되게 하나님의 증거를 받을 때, 하나님은 진리라는 인침을 받게 된다(요 3:33).
"확신하였다"는 말은 확실하게 신뢰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믿음이 이지 속에서 일으키는 바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경우에 그 점에 대한 복된 실례가 나타난다. 그의 나이가 백세였고 자기 아내의 태가 죽은 것을 알고도 하나님께서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을 때, 그는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롬 4:21).

사랑하는이여!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의 신실성과 가치를 그렇게 적게밖에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들을 묵상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 더디기 때문이 아닌가!♥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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