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83]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83]

En Hakkore 2024. 6. 4. 12:14

믿음의 상급 3(히 11:15,16)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러나 다음 구절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이 점에 있어서 에서와 결정적이고 복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에서는 영적인 것보다 잠시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더 높게 평가함으로써 자기의 장자권을 팔았다.

또한 그들은,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서로 말했던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달랐다(민 14:4). 또한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보다 자기들의 돼지를 더 크게 여겼던 거라사인들과 대조를 이룬다(막 5장).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바위 같은 사람들과는 다르다(눅 8:13). 그리고 베드로후서 2:20-22에서 묘사되는 배도자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게" 악하다. 이 엄숙한 경고들은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모든 각 사람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도가 그것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표현하는지 주목하라. "또한 진실로" 또는 "참으로"(우리말 개역성경에는 이 부분이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다 - 역자주). "저희가 생각하였다면"(이 말은 자주 갈대아를 생각하고 마음이 거기에 솔려 있었다면 이라는 의미이다).

이 법은 "우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벧전 1:13), 생각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함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기" 때문이다(잠 23:7). "믿음의 본질 속에는, 부패하고 죄악적인 정욕뿐 아니라 우리의 본성적인 감성들과 그 감성의 가장 격렬한 성향들을 죽이는 것이 있다.

물론 그것들이 그 자체로는 무죄하지만 하나님의 계명들을 순종해 나가는 데 있어서 거부반응을 보이는 즉시 죽여야 하는 것이다 - 바로 이것이 믿음의 신실성과 능력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이다.

우리의 삶과 부모와 아내와 자녀와 집과 소유와 나라를 생각하는 것은 합당하고 바르고 참으로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아니 그것들 어느 것이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방해가 되거나 고통을 준다면, 믿음은 그것을 사랑하는 것을 죽이고 약화시키고 끊어 버린다. 그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그것들을 미워하게 한다"(J. Owen).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은 그리로 가는 길을 알았고, 재산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시간적인 여유도 많았고, 여행하기에 필요한 건강과 힘도 있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그들이 떠난다고 해서 하나도 아쉬워하지 않았을 것이고(창 26:18-21), 아마 고향에 있던 옛 친구들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우리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같은 방식으로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로 돌아가기 위한 길이 넓게 열려 있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참으로 특별한 의무였다. 그들은 그것이 특별한 올무였다. 그들은 그것을 부단하고 습관적으로 버릴 필요가 있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세상으로 돌아가 그 모든 허망한 것을 좇기로 다시 마음만 먹는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매혹적인 것들이 사방에서 우리를 둘러 싸고 있다. 그들과 다른 우리의 색깔을 조금 옅게 하고, 우리의 경건을 약화시키고 그들의 길을 따른다면, 세상 친구들은 자기들의 사회에 돌아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그 조상들은 자기들이 나왔던 본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마땅히 행할 믿음의 길에 서있었고, 모든 낙담케 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명이 자기들에게 지시해 준 진로를 따라갔다.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은 우리에게 한 본을 남겼다.

그들은 부나 명예나 쾌락을 즐거워하지 않았고 갈대아의 사회를 바라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광대하게 높은 어떤 것으로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하늘의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자기들에게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때 자기들을 만족케 했던 시시한 것들을 경멸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자기들이 전에 그처럼 열심히 추구했던 기쁨의 소재들이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렘 2:13) 같음도 배웠다. 또한 은혜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들에게는 영생하도록 소생하는 샘물이 있음을 알았다. 또 이 세상에 살 때, 자기들의 삶의 최고 목적을 물질적인 것으로 삼은 것이 죄악임도 배우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가장 먼저 구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를 어찌나 낮게 평가하였던지, 자기 며느리를 얻으려 그곳으로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또는 이삭더러 그리로 가보라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기 종을 맹세시켜 보냈다. 만일 그 며느리 될 사람이 오고 싶어 하지 않으면 그리로 데려오지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경건처럼 자발적인 것이 없다는 또 다른 좋은 실례가 된다. 그리스도인이 처음 회심했을 때인 풍부의 날에 가장 날카롭게 시험하는 것이 오기 마련이다.

"다윗은 자기가 외국인이요 나그네라고 고백했다. 그가 산 위의 자고새처럼 쫓김을 받을 때뿐 아니라 왕궁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 때도 그러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위로를 버리거나 하나님의 복을 집어 던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적인 정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고 싶은 대로 세상 밖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오히려 우리 속에서 세상을 몰아내야 한다.♥ 기회를 거절하는 것은 은혜의 큰 연단이다. 풍부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함을 배우는 것은 부족할 때나 낮아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위안되는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위안으로부터 마음을 떼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하는 수 없이 죽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죽는 것은 어렵다"(T. Manton).

내주하는 은혜의 효력을 확증하는 것은, 시험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물리치고 이기는 것이다. 갈등이 있을 때는 악을 행할 "기회"가 있지만, 그것을 버릴 때에 자발적인 경건의 능력이 나타난다.♥ 요셉은 시험받았을 뿐 아니라 그 시험에 굴복할 "기회"도 있었지만, 은혜로 그것을 이겨냈다(창 39:9).

그 족장들로 하여금 갈대아 돌아가지 못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모든 중생한 사람들의 마음을 통제하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이다. "선해질 수밖에 없을 때 착해지는 것은 쉽다. 또는 그와 반대로 모든 시험이 물러갔을 때 선해지는 것도 쉽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선을 소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시험을 당하지 않았거나 악을 행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T. Manton).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377

이제 반 년을 달려왔습니다♪ 올 하반기도 성령께서 이끄시는데로 뒤로 돌아가지않고 주님계신 하늘나라 소망하며 하루하루 믿음으로 걷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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