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159)
En Hakkore
칭의에 대한 기본적인 복된 진리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그것을 바탕으로 성화론을 상술하게 숙고해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본다. 그러나 성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질적인 질문인가? 아니면 지위의 질문인가? 성화는 법정적인 것인가? 아니면 경험적인 것인가? 다시 말해서 성화란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는 무엇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 성화는 절대적인가? 아니면 상대적인가? 다시 말하면 성화는 어느 정도의 수준을 요하는 것인가? 성화는 불변의 것인가? 점진적인 것인가?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을 그때 성결케 되는 것인가? 아니면 성화는 나중에 오는 축복인가? 그 축복은 어떻게 획득되는가? 우리를 위해서 뭔가 먼저 성립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에 의해서 혹은 둘 다를 ..
"칭의론'을 다룬 글에서 우리는 주의 백성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초월적인 은혜를 깊이 생각했었다. 그 은혜는 주의 거룩한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시고 수많은 죄악을 저지른 자들이 받기에 합당한 저주를 몸소 견뎌야 하셨던 확실한 보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지적하였었다. 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판결을 받아야 마땅한 죄수들이요 사망선고를 피할 수 없는 존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대속주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적 섬김의 공로로 말미암아 정죄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의롭다 함을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하늘의 최고 법정에서 죄인이 의인이라는 언도를 받는 것이다.♡ 공의의 심판을 대항하여 자비가 춤을 추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통치적인 의로움이 숨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주님의 거룩한 율법에 ..
사실, 5월부터 시작한 창세기는 약 6개월 분량의 내용이었지만, 장맛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6월 끝자락에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일찍 마무리하고 계속 연계된 성경을 찾아보면서 묵상하고 되새김질하였습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인물들의 모형속에서 원형 예수그리스도를 볼 수 있지만, 특히 요셉은 그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생애 사이에서 최소한 100가지 이상의 유비점(類比點)을 추적할 수 있는 것으로 정리해 나가며 창세기는 종료되는데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당초 에필로그를 쓸 생각은 없었지만, 묵상하는 가운데 다시 한번 창세기 본문을 정독해서 읽으며,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엘샤다이 하나님의 역사(役事)하심속에 지나온 과정을 요약해보며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를 이곳에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
27. 요셉은 형통한 종이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 39:2). 여기에서 특별히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행한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셨더라"(the Lord made all that he did to prosper in his hand)라는 표현을 주목하라(한글개역개정판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이라고 되어 있음). 이러한 말씀은 우리에게 여호와의 완전한 종을 가리키는 두 가지 예언적인 말씀을 일깨워 준다.♡ 첫 번째 것은 우리 앞에 "복 있는 사람"을 제시하는 시편 1편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창세기 37장은 야곱의 아들들이 이복동생 요셉을 미디안 사람들에게 팔고, 미디안 사람들이 다시 그를 애굽에 판 이야기로 끝난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에 의해 배척을 당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지는 것을 보여준다. 유대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메시야를 빌라도의 손에 넘겨준 때로부터, 이제 한 나라로서 이스라엘은 더 이상 그와 아무런 관계도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도 그들로부터 이방인들에게로 돌이키셨다. 그와 같이 여기의 모형에서도 그 무대에 있어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 이제 요셉은 이방인들의 손 안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애굽으로 내려간 요셉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성령은 이를테면 요셉의 원형이 그 땅에 없는 동안의 유대인들의 역사(歷史)를 추적한다. 바로 이것이 창..
20. 요셉이 모욕을 당함.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창 37:23). 이러한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요셉에 대한 형들의 미움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알게 된다. 요셉은 단지 형들이 잘 있는지 보기 위해 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를 그토록 미워했다. 마치 먹이를 덮치려는 짐승처럼, 그들은 즉시로 그에게 튀어 올랐다.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모욕해야만 했다. 그들은 그로부터 채색옷을 벗김으로써 노골적으로 그에게 수치를 가했다. 여기의 모형은 원형과 얼마나 완벽하게 상응하는가! 영광의 주님은 여기와 똑같은 방식으로 다루어졌다. 그 역시도 모욕과 수치를 당했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17. 요셉은 끝까지 형들을 찾았다.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창 37:17). 요셉이 세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형들이 그곳을 떠난 뒤였다. 이와 관련하여 냅(Knapp)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그의 마음이 아버지가 맡긴 일에 완전히 착념하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은 헤브론으로 돌아갈 좋은 기회였다. 맡은 일을 포기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는 좋은 핑계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맡긴 일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것은 요셉이 예표한 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버지의 잃은 양을 찾는 수고를..
14. 요셉은 헤브론 골짜기로부터 보냄을 받았다.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성령께서 그리신 여기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 있는 특징들 가운데 의미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기에서 냅(C. Knapp)의 "무성한 가지"(A Fruiful Bough)로부터 한 구절 인용해 보도록 하자. "헤브론은 교제 혹은 친교를 의미하며, 골짜기는 고요한 안식과 평온을 상징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죄와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아버지와 아들이 하늘의 영원한 평온 가운데 교제하고 계셨던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평화로운 헤브론 골짜기는 요셉이 아버지와 더불어 복된 교제 가운데 거하던 장소였다. 거기에서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