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166)
En Hakkore
우리의 자연의 몸 안에서 그 지체들이 그들의 머리로부터 생명을 받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신비스런 몸 안에서 그 지체들은 그들의 머리로부터 생명을 부여해 주는 성령을 받는다. "우리가 믿는 이것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라고 나타나 있는 요한복음 1:16의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충만함'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1:16에서는 그리스도를 신성 안에 있는 제 2위로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구절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성육신하신(1:4)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신 중보자로서 나타내고 있음을 주목해보라. 그러면 그 임무를 이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에게 공급하고 있는 중보자로서의 그의 '충만함'은 무엇인가? 그가 "성령을 기름붓듯"(행 10:..
여기에서 논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는 은혜로운 복음에 계시된 거룩한 삼위일체에 대한 지식도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본질과 서로에 대한 구별된 관계, 그리고 우리와의 관계 안에 있는 신성의 여러 위들에 대해서 아는대로 믿어야 하고 승인해야 한다. 무한한 본체 안에 그들이 존재하신다는 지식이 아닌, 그들의 존재 자체에 대한 진리는 우리의 믿음과 믿음 안에 있는 축복을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그들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시라는 사실을 스스로 어떻게 계시하셨는가를 안다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우리와 어떤 관계이며, 영원한 계약 안에서 그들이 우리를 위해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아버지를 아는 것, 즉 영원하신 사랑으로 사랑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아..
히브리서 13:20, 21(I)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히브리서 13:20,21) 평강의 하나님 첫째로, 신약의 다른 기자들은 그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것은 특수하게 바울만이 사용하고 있는 칭호이다. 여기에서 그가 이 표현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그가 이 서신을 기록하였다는 많은 내재적 증거들 중의 하나가 된다. 그는 그의 서신들 중에서 여섯 번이나 그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즉 로마서 15:33, 16:20과 고린도후서 13:11과 빌립보서..
하나님의 최상의 복을 즐김(결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는 그릇"(호 8:8)과 "깨끗하고 귀하며 거룩하여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딤후 2:21)을 하나님이 각각 달리 대하실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최상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인생의 흥망성쇠나 어려움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최상을 소유한 사람은 거룩과 축복을 보장받으며 성도들이 어리석게 자주 빠지게 되는 곤경과 문제들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이요"(사 3:10).이 말씀에 대하여 청교도 카릴(Caryl)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거룩한 선행 때문에 혹은 그 선행을 따라 선대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최상의 복을 즐김(반대 의견들 9) 십자가를 앞에 두신 우리 주님께서 받으셨던 고난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분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신다"(시 16:8)고 한 분이셨고,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요 8:29)고 단언하실 수 있는 분이었다.그런 분이 '고뇌라는 인간, 슬픔을 당해야 할 인간'으로서 일생을 살아야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시련과 고난, 역경과 수난이 그의 분깃일 수 있단 말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모든 수난은 죄 때문이었다. 그리스도 자신의 죄가 아니라 교회의 죄 때문이었다.하나님께서 무죄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실 리가 없다. 하물며 사랑하시는 아들을 악한 사람들..
하나님의 최상의 복을 즐김(반대 의견들 8) 다윗이 밧세바와 우리아의 문제를 깊이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자백하고 성실하게 죄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매가 다윗과 다윗의 집에 떠나지 않은 것을 들어 항의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이 문제를 풀려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의 매듭을 잘라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 다윗의 이 범죄는 누가 보더라도 평범한 범죄가 아니었다. 그의 죄는 모세 율법에 의하면 사형에 해당하였다. 더구나 그의 죄는 선지자요, 이스라엘의 시편 저자요, 왕이라는 그의 지위로 인해 더욱 더 무거워진 것이다.그처럼 높은 공직 혹은 지도자의 임무를 가진 자가 저지른 죄는 하찮은 사람이 저지른 꼭같은 죄보다 훨씬..
하나님의 최상의 복을 즐김(반대 의견들 7)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신다"(시 103:10)는 말씀이 있는데 '성도가 자기 의지와 자기 만족을 따라 살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눈쌀을 찌푸리신다'는 당신의 주장은 이 말씀과 어떻게 조화가 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대답은 이렇다. 두 가지 사이에는 조화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 두 가지 사실이 서로 모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앞의 본문은 현재 하나님의 통치 사역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한 후 벌어진 일, 즉 우리 죄에 대한 징벌이 끝난 상태에서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저자가 바로 뒷 절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높이 찬양한 후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
하나님의 최상의 복을 즐김(반대 의견들 6) 어떤 사람들은 이 교훈이 너무 관념적이고 실천 불가능한 것이며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을 요구한다고 불평하면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어야만 하나님의 최선을 맛볼 수 있다면 우리의 현재 조건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것이다.우리는, 땅을 디디고 살아간 사람들 중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살았던 사람은 오직 한 분밖에 없었으며,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육체에 거하는 이상, 실패와 타락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멸망의 날이 가까운 이 세대에서 그리스도인의 질적 저하를 비난하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놀랄 필요가 없다.천국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양심을 찾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려고 애쓰는 태도를 별로 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