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341)
En Hakkore
미국 웨스트민스터 대학원의 필독서인 아더핑크 목사님의 '산상수훈 강해' 를 집어 들고 기도와 묵상으로 나누어온 지난 1년, 되돌아오지 않는 카이로스 조각속에서 다시 따스한 봄을 맞게 해주신 하나님을 은혜를 찬양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즐겨 읽고 외웠던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의 팔복들, 다시 눈을 감고 되새기며 주님께서 가르치시던 그 때를 회상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이제 마무리 하면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우리의 심비에 철필처럼 새겨 그렇게 살기를 원하셨던 '믿음'은 과연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며 마음판에 되새깁니다 신앙고백을 성급하고 경솔하게 하지 않고 '먼저 앉아..
에필로그를 쓰기 전, 주의 말씀을 행하는 것에 대해 "깊이 파고' 라는 말씀이 저의 뇌리에서 맴돌며 떠나지 않아 다시 돌아가 되새겨보며 요약 정리하여 나눕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6, 27). 지혜로운 건축가에 대한 누가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그 설명이 부가적으로 설명된다.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눅 6:47, 48). '어리석은' 자들은 '깊이 파지' 않는다. 이것은 두 부류를 구별지어 주는 중요한 점이기 때문에 '깊이 판..
결론 5 끝으로, 왜 이 설교에 의하여 한 영혼도 거듭나지 않은 것인지(이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에 의하면) 더 엄숙한 또 다른 이유를 여전히 우리는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마태복음 5장으로부터 7장까지에서 우리가 가지는 바 확신, 말 그대로 세밀한 그림 같은 장면 묘사, 특유한 표현,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고를 자신에게서 떨쳐버릴 수 없다.♡ 산 위에 앉으신 그리스도는 곧 심판의 보좌 위에 앉아 계신 그의 모습이었다. 제자들과 앞에 나아온 많은 '무리' 들에 둘러싸인 모습은 다가올 두려운 날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설교의 내용은 그때 행해질 진행의 절차와 판결이 내려지는 근거, 둘 다를 드러내 보여준다. 즉 "그의 백성" 은 축복의 말("복 받은 자" 라고 선언된다)에 ..
결론 4 우리가 한걸음 물러나서 다음과 같이 묻기를 원하는가? 아버지의 성육신하신 아들이 그렇게도 자주 자신에게 있는 하나님의 속성을 행사하기를 중지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를 억제하는 것이 어찌해서 아버지의 기쁨인가? 분명히 우리가 위에서 지적한 사실보다 더 좋은 답변은 없을 것이므로 위의 내용으로 족하리라 본다. 다시 말하여, 아들과 아버지의 완벽한 일체성을 보여주는 것, 전자는 후자와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 그의 도덕적인 완전성을 명백히 나타내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백성에게 모범을 남겨 주는 것이다.♡ 그러나 성육신하신 아들에게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베일로 가리는 것이 왜 적절한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때는 그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세상을 다스리러 ..
결론 3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6, 17). 이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리의 독특한 양상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그리스도는 온화하시고 동정적이시며 연민으로 가득 차신 분이다. 그렇지만 그로 하여금 병든 자를 고치도록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우선적인 동기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바로 그것이다.♡ 성경이 그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그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시 40:7, 8)라고 말하였다. 이에 대한 놀랍고도 아름다운 예증을 요한복음 11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사로는 중한 병에 걸..
결론 2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우리는 그들이 '놀람' 에 그쳤다는 사실 그 자체에 놀랄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자신들에게 설교한 자가 인간 이상이었음을 자각하면서 그의 발치로 경배하며 나아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그의 가르침에 의해 죄를 깨닫고 회심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통회함으로 그에게 돌아오면서, 그리고 자비를 호소하면서 그들은 그러한 거룩함의 기준에 너무도, 너무도 미치지 못함을 깊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서글프게도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성육신하신 진리의 입술로부터 진리에 대해 들을 때에조차 그러했으니 하나님의 메시지가 외부로부터 자신의 귀에 떨어질 때 그에 대해 감명받을 수는 있지만 그 메시지의 조명 아래 자신의 내적인 부패와..
결론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 29)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이 세 장은 일반적으로 주님의 산상설교라고 일컬어지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실상 그것은 설교라기보다는 메시야의 선언 내지 그의 나라의 대헌장(혹은 '헌법')으로 불리어지기에 적절한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주님은 우리가 그의 나라로 들어가는데 요구되는 법칙과 조건을 밝히셨기 때문이다. 이미 이 책의 두 번째 장에 이 설교는 그 성격과 의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열두 부분 곧(통치의 수단이다)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것은 다음과 나타낼 수 있다. 1)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자의 성격(마 ..
참된 신앙고백 8(마 7:21-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27절). 여기 엄숙한 대조점이 있다. 모래 위에 집을 세운 자에게 닥쳐오는 가공할 결과가 여기에 나타나 있다. 안전하지 않은 주추에 소망을 두고 무가치한 것에 믿음의 근거를 둔 모든 자에게 닥쳐올 확실한 운명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공허한 신앙고백자에게 닥쳐올 가공할 결과가 여기에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 의 '말' 을 양심에 새기지 않고 신앙 고백한 것을 실천에 옮기지 아니한 자,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의 길을 따라 살지 아니한 자는 영원한 저주를 향해 머리를 둔 것이다. 공허한 신앙고백자는 평화롭고 번창하는 시기에 닥쳐오는 좀 더 가벼운 반대의 바람결은 이겨낼 수 있으나, 한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