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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수 7:1). 이 끔찍한 범죄는 여리고성 내에서, 그것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그 성을 무너뜨리신 직후에, 일어났다. 그 성의 파괴와 황폐화와 관련해서, 그 어떠한 생명도 살려두어서는 안 되며 전리품을 스스로 취해서도 안 된다는 구체적인 지침이 이스라엘에게 사전에 내려져 있었다(수 6:17-19). 이것이 주는 영적 교훈은 그리스도인이 싸워야 할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육체를 죽이는 것이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요, 세상에 대한 애착을 버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아간의 범죄는 그냥 보통의 도둑질보다 훨씬 악한 ..
여호수아 7:1 앞의 "그러나"(한글개역/개정판에는 나타나 있지 않음. 역주) 얼마나 불길한지! 이는 그 다음에 이어질 안타까운 내용을 암시하는 것으로, 6장 마지막 절과 대조적인 양상을 지적하기에 아주 알맞는 표현일 것이다. 거기서는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고 기록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고 한다.😥 두 가지 점에서 대조가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계셨으나,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그분의 진노가 촉발되었다. 전자의 결과로 여호수아의 소문이 널리 퍼졌으나, 후자의 결과로 그가 굴..
1. 아이 성에서의 굴욕 여호수아 7장은 앞장에서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상황과는 전혀 딴판의 상황이 벌어진다. 그 대조가 너무도 놀라워서, "진실은 허구보다 더 이상스럽다"는 옛 말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까지는 모든 일이 이스라엘을 위해 부드럽게 복되게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전진이 갑자기 멈추어진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철저한 순종이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드러났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모든 것이 역전된다. 그들은 할례의 필수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순종했고, 지정된 유월절 절기도 지켰었다. 하나님 편에서도 그들을 위해 놀랍게 역사하셔서 요단 강을 마른 땅을 디디고 건너게 하셨고, 가나안의 주요 요새인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14. 그리스도의 종은 시간 엄수, 부지런함, 전심을 기울임을 언제나 특징적으로 실천해야 한다(수 6:12).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수 6:12) 15.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도, 제사장들은 그들의 나팔을 "계속" 불어야 한다(수 6:13).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진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니라"(수 6:13). 16. 하나님이 주신 모든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반드시 인내가 요구된다(수 6:14).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수 6:14). 17. 임무가 괴롭고 ..
이제 여호수아 6장에서 실례로 드러나는 많은 중요한 교훈들 중 몇 가지를 간단히 정리하기로 하자.(말씀을 다 찾아서 두 번에 나누어 옮깁니다. 깊은 묵상이 있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는 닫힌 문과 높은 성벽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수 6:1, 행 12:10)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수 6:1)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행 12:10). 2. 믿음은 이성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수 6:2 ;요 8:56; 히 11:1).👏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아브라함의 삶 2(히 11:9,10) 창세기 11:31은 12:5로 연결된다.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아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정착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무한정 거기에 있도록 하시지는 않으셨다. 주께서는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할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목적을 포기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 만든 보금자리에서 빠져나오도록 그를 어지럽히셨다(신 32:11). 하나님이 사용한 방편을 주목하는 것은 매우 엄숙하다. "데라는 하란에거 죽었더라"(창 11:32; 행 7:4은 참조) - 중간의 여인숙을 아브라함이 떠나기 전에 죽음이..
아브라함의 삶 1(히 11:9,10)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11:9,10). 우리가 지난 강론에서, 갈대아에서 우상을 숭배하며 살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심을 숙고해 보았다. 또한 그때 아브라함이 받은 부르심은 그의 옛 삶을 온전히 청산하게 하였고,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철저하게 복종하여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였음을 알았다. 우리는 그것을, 중생의 본질적인 한 특징을 상징적으로, 모형적으로, 예증적으로 나타내는 실례로 취급하여 생각하여 보았다. 곧 하나님께서 그의 선택한 백성들을 효력 있게 부르사, 죽음에서 생명으로, 흑..
아브라함을 부르심 7(히 11:8)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으며". 아마도 갈대아에 있는 아브라함의 이웃들과 친지들 중 많은 사람들이 왜 여기를 떠나려 하며 어디로 가려 하느냐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난 모른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얼마나 놀랬을까 생각해 보라. '그들이'. 아브라함은 보는 것으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아브라함더러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라고 권장했겠는가? 그들이 그를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사랑하는이여, 경건치 않은 사람들은 오늘날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을 움직이는 동기들을 이해할 수 없다. 만일 그들이 이해한다면 갈대아 사람들도 아브라함을 이해했을 것이다. 중생치 못하고 그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스스로 고백하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