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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말은 그녀의 사고의 경향을 참으로 여실히 드러내준다. 그녀의 정신은 우물과 두레박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것 역시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를 예증해 준다. 이 여인은 여전히 대표적인 성격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녀의 마음이 물질적인 것들에 집중되어 있음을 볼 때, 그녀에세서 죄인의 정확한 초상을 보게 된다. 그녀의 정신은 세상 - 그 의무와 해야 할 일에 - 에 전념하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어떠한 너 높은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말을 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분별할 수 없었다. 그가 무엇을 제안하였는지도 식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일시적이고 감각적인 사물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것들에 ..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생수는 돈도, 다른 보상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선물' 이다. 이 선물은 그리스도로부터만 얻어질 수 있다. 이 선물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구함으로써, 그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선물은 얼마나 복된 것인가! 그 주시는 분은 얼마나 놀라우신 이인가! 그 말은 얼마나 단순한가! 여기, 가련한 여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해 주시는 그리스도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찾도 있던 일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이 복음 안에서 참으로 예기치 않았던 일들을 거듭 만나게 된다. 그러한 일들은 우리가 상상해 왔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 여기 성육신하시어 이 세상에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 있다. 우리는 그의 누우실 요람을 어디에서 발견하리라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어떤 사람은 여기에서의 '생수'를 성령이라고 간주하는데, 이 견해를 지지할만한 약간의 근거는 있다. 또한 필자로서는 그 견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말씀에는 그 이상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생수'가 구원, 즉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 있어서의 구원을 뜻한다고 믿는다. '물'의 상징은 지극히 암시적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발견되는 모든 다른 말처럼 그것의 와넌하고 아름다운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간절하고 오랜ㄴ 숙고를 필요로 한다. '물'(생수), 즉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의 ..
그러면 무엇이 치유책일까? 결국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에게 지적하여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 15). 그러나 이 놋뱀은 누구에게 제시된 것일까? 그것은 물린 사람이면 누구든지 다 해당된다. 왜냐하면 그가 물렸기 때문이다. 그 상처가 자격이다. 무엇에 대한 자격인가? 뱀을 바라볼 수 있는 자격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바라본 사람은 살았다. '바라보면 산다'는 것은 지극히 복된 복음이다. 그것은 니고데모에게도 효력이 있었고, 수가의 여자에게도 그랬다. 그리고 죄에게 물린 아담의 모든 아들딸들에게 다 효력이 있다. 거기에는 제한이 없다. 인자가 들어 올려졌으니 단순한 믿음으..
주님께서 니고데모와 이야기를 하신 방식과, 이 가련한 사마리아 간음녀를 다루신 방식은 서로 두드러진 대조를 이루어 우리의 주목을 받아 왔다. 주님께서는 영혼들을 기계적인, 판에 박힌 듯한 방식으로 다루지 아니하셨는데 그것은 오늘날 그렇게 행동하는 많은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주님께서는 저마다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각자에 맞게 대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를 다루실 때 그는 복음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으셨다. 대신에 그는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네기 ... 해야 하겠다"는 말 안에는 기쁜 소식이란 들어 있지 않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그렇게 되기 위하여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의 과거의 삶, 즉 아주 많은 자선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ㅏ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4:10). 우리 주님께서는 그녀가 제기한 '어떻게' 라는 말 때문에 하시고자 하는 일에 방해를 받지 아니하신다. 그는 니고데모가 제기한 '어떻게' 에 답변해 주셨다. 그리고 여기서도 수가의 여자가 제기한 '어떻게' 라는 말에 답변하신다. 우리 주님께서는 드디어 주님 자신을 놋뱀의 위대한 원형이라고 가리켜 주심으로써 니고데모에게 답변해 주신다. 구세주께서 이 가련한 버림받은 자에게 대답해 주신 그 정신에 주목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는 그녀와 사마리아인들의 편견에 대하여 논쟁하지 않으셨으며, 또한 유대인들의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무정한..
"우리는 이 '어떻게'라는 말로 마음이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의 진리가 지극히 위엄 있고 권위 있게 우리에게 제시된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그럴 리가 있나?' 라는 식으로 대처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지극히 감미롭고 온유하게 우리 앞에 펼쳐진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가?' 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그것이 신학적인 '어떻게' 이든, 합리적인 '어떻게' 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가련한 마음이 진리를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대신 따지고 드는 것이다. 자기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그러므로 양심이 제아무리 편치 않고 마음이 그 주위의 상태에 대해 불만스럽게 느낀다 할지라도 여전히 불시나는 '어떻게' 가 이런저런 형태를 취하고 쏟아져 나온다. 니고데모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