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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5:30). 우리는 이 구절의 전반부에 대하여 이미 고찰한 바 있으므로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 구절의 후반부에는 심판에 대하여 또 다른 말씀이 부가되어 있다.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이것은 지극히 엄숙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은혜가 아니라 확고한 의(義)로써 심판을 다루실 것이다. 그는 자비가 아니라 공의를 행하실 것이다. 이것은 '심판에 이르는' 부활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다시 한 번 전적으로 희망의 빛을 몰아내는 말씀이다. 이 마지막 구절들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련된 사상이 두 가지 부가되어 있다. 첫째로,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7-29). 이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일곱째 증거를 제시해 준다.📚 즉 그는 심판의 권세와 권능에 있어서 아버지와 상호 동등하시다.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또' 라는 말은 22절의 말씀을 다시 지적함을 내포하고 있다. 거기에는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심판은 아들에게 맡겨졌는데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함이다. 그러나 여기 27절에서 그..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17절에서와 같이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이 아버지와 지극히 밀접한 일치 속에 연합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발견한다. 즉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으라." 이것은 우리가 고찰해 온 구절들을 통해 면면히 흐르고 있는 지배적인 사상으로서, 필자가 이미 충분히 강조한 바 있기 때문에, 이제 부차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진리들을 고찰해 보자. 이것은 주의 백성들이 대단히 좋아하는 구절이다. 그것은 걱정에 잠긴 많은 영혼들에게 평화와 확신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구절이다. 긴 많은 영혼들에게 평화와 확신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시느니라"(5:21).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네 번째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주권적 권리에 있어서의 아버지와의 절대적인 동등성을 단언하신다. 이것은 주 예수께서 여기에서 종속적인 종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하고 계심을 입증해 주는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신적 주권에 대해 주장하고 있다. 병자를 고치신 것이 그 좋은 실례이다. 그 예는 주님의 능력을 입증해 줄 뿐만 아니라 그의 절대적인 주권을 드러내 주고 있다. 그는 못가에 누워 있는 병자의 무리 전체를 고치신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 그는 그 중 한 사람을 택하여 그를 낫게 하였다. 그는 영적 영역에서 그렇게 일하시..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5:20). 육체적인 마음을 가진 우리는 이 구절을 읽을 때 다시 한 번 혼란에 빠진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어째서 그는 '보여주심을' 받을 필요가 있단 말인가? 우리가 어린이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줄' 때 그것은 어린이가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자에게 바른 길을 '보여줄' 때 그것은 여행자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이 구절이 그리스도의 중보자의 직무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것은 이 구절의 아름다움을 해치며 이 부분의 문맥의 통일성을 훼손시킨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지식에 ..
그리스도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른 점은 바로 그가 신인(神人)이라는 데에 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유리되어 독자적으로 행동하신 적이 결코 없었다. 그는 항상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셨다. 그는 자기의 의지를 꺾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그를 보내신 이의 뜻에 완전하게 일치하셨다. 그가 어린 시절에 하셨던 말은 그의 지상생활의 핵심을 찌른 것이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마귀에게 공격받으시던 저 광야의 시험에서도 그는 하나님과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를 거부하셨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라는 것이 내 양식이니라"는 말씀은 그의 사랑이 넘치는 봉사를 특징지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최후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그가 행하신 것을 살..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이 말은 그의 능력에 제한이 있다는 뜻일까? 또는 그의 권능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일까? 그의 이 말씀은 그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고 말씀하셨으므로(빌 2:7) 그의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모든 한계를 입게 되었다는 의미일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절대적으로, 그리고 교리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말씀을 올바르게 파악해 보면,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이나 권능에 있어서의 불완전함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그의 비할 데 없는 탁월성을 제시해 주는 데 이바지하는 것일 따름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곳에서와 같이 여기에서도 성경은 성경에 의하여 해석되어야 하며, 우리가 일단 이 규칙에 유의하기만 하..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라"(5:18). 그리스도의 선포가 참된 것이라는 데에는 틀림이 없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두 번째 증거이다.📚 "내 아버지께서... 나도..."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는 지극히 적절하게도 단순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자로서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는 아브라함, 모세, 다윗, 그리고 다니엘이 말하려고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는 자기 자신을 아버지와 동등한 지위에 위치시켰다. 그리스도를 험담하는 자들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신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는데 그것은 그들이 옳았다. 그의 말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