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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5:13). 이것은 구세주의 도덕적인 완벽성을 제시해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의 온유함을 입증해 준다. 그는 여보라는 듯이 법석을 떨지 않고 일하셨다. 그는 순간적인 숭배를 바치는 대중의 우상이나 찬양하는 구중의 중심이 되고자 하지 않으셨다. 그는 인기를 얻고자 하는 대신 그것을 피하셨다. 그는 자기 자신을 선전하는 대신 "사람의 영광을 받지 아하셨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아름다운 탁월성은 마가복음에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1:37, 38, 44; 7:17, 36; 8:26 참조).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5:14). 주님께서는 그 사람..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5:10). 이것은 다시 한 번 실제의 모습을 보여주는 말이다. 주님께 굴복한 사람은 비난받을 예상을 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자기를 통제하는 사람은 반대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가장 맹렬하게 반대하는 것은 바로 종교계이다. 우리가 그들의 신조에 동의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규칙을 준수하지 아니한자면 우리가 차지하게 될 묷은 박해와 추방이다. 우리가 장로들의 유전에 의하여 속박당하려 하지 아니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찌푸린 얼굴을 보게 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에 대한 그 당시에 널리 행해지고 있던 가르침을 모르신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이 병 고침을 받은 자가 안식일에 그의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5:8). 구세주께서 죄인의 마음속에 그의 인격에 대한 합당한 인식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신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병자가 자비를 청하며 부르짖은 적은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병자가 낫고자 하는지를 일일이 세심하게 조사하신다면 믿음은 전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권적 은혜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생명을 주시는 말씀을 선언하신다. 그런데 그것은 그 문제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묻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신중하게 분석해 보면 세 가지 사항이 드러난다. 첫째로, 그의 말씀 속에는 절대적인 확신이 들어있다. '일어나라'는 말은 강제적인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의 권위에 대한 참된 인식과 그의 명령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이 수..
"[주께서]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5:6). 그 병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는가? 서른여덟 해나 앓아 온 사람이 다른 무엇보다 원하는 유일한 것은 바로 낫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가 못가에 누워 있었다는 바로 그 사실은 그가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 암시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구세주께서는 어째서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을까 그 질문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비참한 상태에 있는 자들이 구원되기를 항상 바라는 것은 아니다. 병자들은 때때로 친구들의 동정과 관대한 대우를 받으려 한다. 또 어떤 병자들은 너무나 깊이 가라앉아서 의기소침해지고 희망을 버린다. 그리고 죽음이 와서 자기들을 구해 주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여기..
우리가 지금 고찰하고 있는 이 구절들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현저하게 예증되어 있다. 병자들의 '큰 무리'가 누워 있었다. 그들 모두는 한결같이 무력하여 스스로를 도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능력이 무한하시며, 그의 명령으로 말미암는 자원이 다함이 없으신 위대하신 의사, 곧 성육신하신 하나님 자신이 여기 있다. 그가 모든 병자들을 고치시는 것은 그 중 한 사람만 고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병자를 고쳐 주시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인하여 그는 병자들의 '무리'를 지나치고 그 중 한 사람만 택하여 고쳐 주셨다. 이 '어떤 병자'가 다른 병자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있었는지를 시사해 주는 말은 전혀 없다. 우리는 그 병자가 구세주를 향하여 "저에게 자비를 ..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하시더라]"(5:6). 여기에 어둠 속에서 빛나는 빛이 있다. 그러나 어둠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빛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줄 따름이다. 저 연못 주위에 누워 있는 수많은 병자를 보라. 그리고 거기에 계신 위대하신 의사를 보라. 베데스다는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자가 없으므로 그는 지나쳐 가고 계신다. 진실로 "어둠이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것은 별다를 바가 없다. 모든 성가신 종교 의식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경시해 버리는 인간이 만든 종교가 있다. 수없이 많은 사원과 성스러운 갠지스 강을 가지고 있는 저 인도..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5:4). 본 구절은 다시 한 번 유대인에게 적용된다. 이 못의 물은 시내 산의 율법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은 '천사들에 의해' 전해졌다. 그리고 그 법은 그것이 명하고 있는 모든 것을 행한 자에게 '생명'이 있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 법을 지킨 사람이 누가 있었는가? 그 법의 요구를 이행함으로써 생명을 얻은 자가 누가 있는가? 아담의 타락한 자손 중에는 아무도 없다. 율법은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인간은 그것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죄인은 지킬 수 없다. 그렇다면 율법은 왜 주어지는가? 그것은 범죄가 가득차게 하기 위하여 주어졌다. 그것은 죄인으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