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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4:17, 18).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잘 드러내 준다! 그는 그의 전지하심을 나타내셨다. 그는 이 여인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 그녀의 마음, 그녀의 인생, 그리고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까지도, 아무 것도 그에게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육신적으로 완전히 그와 처음 만난 사이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녀에 대해 철저하게 알고 계셨다. 그것은 베드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구세주는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에 그에 대해 전부 알고 계셨다. 1:42을 보고 그에 대한 우리의 해설을 살펴보라. 나..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4:15). 그녀는 여전히 다소간의 어둠 안에 있다. 본성적인 마음은 본성적인 것들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그러한 매개를 통하여 모든 것을 바라본다. 본성적인 마음은 그 자신이 지닌 감정과 사고의 적은 범주에 제한받는다. 그리고 그 이상의 것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 마음은 그 자신의 좁고 답답한 영역 안에서 살고 이쓰며, 거기에는 즐거움과 할 일을 찾는다. 그리고 만일 그 같은 마음에 모든 것을 맡기고 내버려 둔다면 거기에서 살다가 죽을 것이다. 참으로 가련한 여인이다! 죄인들의 구세주께서 그녀 앞에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는 그녀에게 은혜로운 말씀을 해..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4:14). 여기에 영혼의 만족이 있다. 구하고 받는 자는 이제 만족하게 된다. 주님은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믿는 자가 이제 자기 안에, 영원토록 새로우며 영원토록 넘쳐나는 그 본래의 원천을 향하여 영원토록 솟아오르는 생수의 우물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물은 항상 마땅한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말씀의 표현들을 각각 살펴보기로 하자. "마시는 자는."🌼 마신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절실한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그것은 충족의 개인적인 행위이다. 그것은 전에는 내 밖에 있었던 것을 내 안으로 들여오는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을."🌼 이 '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4:12). 또 다른 물음이 여기에 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신 분에 대해 너무도 알지 못하였다. 우물은 깊은 것이다. 그렇지만 더 깊은 어떤 것이 있다. 곧 그녀의 영혼의 절실하게 깊은 필요이다. 그리고 또한 그보다 더 깊은 어떤 것이 있다. 곧 그녀의 필요에 응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그를 내려오시게 한 그 은혜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에 대해 너무도 알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라고 물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야곱의 하나님 곧 야곱을 지으시고 그에게 일찍이 그가 소유했..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말은 많은 죄인들과 구원사이에 외적으로 가로놓여 있는 또 다른 원리를 예증해 준다. 여인의 마음은 목적보다는 수단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리스도에게보다 '물 길을' 도구에 관심을 두었다. 그리고 오늘날에 있어서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구세주 그분보다는 자신의 노력과 행위에 훨씬 더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일에 관심을 돌리지 않을 때에 흔히 그들은 복음 전도자에게 문의하고 '상담실' 내지 '참화자석'을 찾는다. 그리고 그렇지 않을 때, 마귀는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후회와 신념에 전념하게 할 것이다. 즉 마귀는 가련한 죄인이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이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4:13). 주 예수는 단념하지 않으셨다. 그는 이 죄지은 병든 영혼에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기를 결정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사람 안에 있는 '목마름'의 깊이는 이 지상의 물로 채우기에는 너무나 깊다. 사람의 영혼의 '목마름'은 영적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물질적인 것들로는 그 갈증을 풀지 못하는 이유이다. 지상의 가장 깊은 우물이라 해도 밑바닥을 측량할 수 있으며 고갈될 수 있다. 그리고 갈급한 영혼은 여전히 목마른 채 남게 된다. 사람들이 쾌락으로 그들을 채울 수는 있다. 그렇지만 자신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부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안락과 호사로 자신을 감쌀 수 있다. 그런데도 ..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말은 그녀의 사고의 경향을 참으로 여실히 드러내준다. 그녀의 정신은 우물과 두레박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것 역시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를 예증해 준다. 이 여인은 여전히 대표적인 성격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녀의 마음이 물질적인 것들에 집중되어 있음을 볼 때, 그녀에세서 죄인의 정확한 초상을 보게 된다. 그녀의 정신은 세상 - 그 의무와 해야 할 일에 - 에 전념하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어떠한 너 높은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말을 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분별할 수 없었다. 그가 무엇을 제안하였는지도 식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일시적이고 감각적인 사물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것들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