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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3:27). 이 때 요한이 어떻게 처신했는가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의 대답은 지극히 적절하였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굴복하였다(27절). 둘째로, 그는 앞에서 자신은 주님에 '앞서 먼저 보내진 자' 일 뿐 그 외에 다른 어떤 신분도 아니라고 부인했었는데 여기에서 유혹자들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킨다(1:28). 셋째로, 그는 이스라엘이 요한 자신에게가 아니라 예수께 속해 있음을 선포한다(29절). 넷째로, 그는 사람들이 주 예수께로 몰리는 것을 보고서 그의 기쁨이 충만해졌다고 단언한다(30절). 끝으로, 그는 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하겠고 자신은 '쇠하여야' 하리라고 주장한다(30절). 이..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3:25). 여기에 언급된 '유대인'이란, 1:19에서 세례 요한에게 그가 누구인지를 물으려고 대표단을 파견했던 바로 그 유대인들이다. 고대 헬라어 사본과 개혁 성경(Revised Version)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개혁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a Jew)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러나 우리는 다른 많은 예에서처럼 여기에서도 흠정역(Authorized Version) 성경이 개역 성경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한다. 1:19에서 언급된 유대인들이 여기 3:25에서 다시 언급된 바로 '그 유대인들'임에 틀림없다. 이 사실은 28절을 읽..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3:23). 이 지명의 의미는 (성경의 다른 모든 예들이 그렇듯이) 대단히 함축적이다. 애논은 '샘물이 있는 곳"을 의미하며, 살렘은 '평화'를 뜻한다. 그곳에 있을 수 있었던 요한에게는 얼마나 축복이었겠는가! 이 명칭들은 가뭄과 죽음을 암시하는 '유대 광야' 및 '요단 강 사방'(마 3:1, 5)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는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칠 매우 중대한 교훈이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부르셔서 수고하게 하신 곳은 바로 가뭄과 죽음의 장소였다. 그런데 그가 거기에서 주 예수를 신실하게 증언했을 때 그곳은 그에게 '샘물'(새롭게 함)과 '평화'의 장소가 되었다. 하나님..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3:19). 여기에 인간의 불신의 원인이 있다. 인간은 어두운 가운데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둠을 사랑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진리의 빛보다 무지와 잘못과 미신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둠을 사랑하고 빛을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다. "악을 행하는 바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3:20, 21). 여기에 최종적인 시험이 있다. "악을 행하는(실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3:17). 이 구절은 하나님의 사랑의 시혜(施惠)적 성격과 그 목적을 상술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특성은 비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나 그 사랑이 흘러들어가는 자의 유익을 바란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지상에 보내셨을 때, 그것은 우리가 예기(豫期)했던 바와 같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세상이 왜 심판을 받았어야 했는가에 대하여는 잘 알 수 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악한 상태에 있었다. 팔레스타인이란 좁은 땅 바깥에서는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지상에서 거의 완전히 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그리스도는 방금 그의 죽음에 대하여 언급하였고, 십자가가 절박하게 필요함을 단언하셨다. 즉 '인자가 들릴 것이다'가 아니라 '인자가 들려야 한다'이다. 이외의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보좌의 요구가 이루어지려면, 정의의 요구가 만족되려면, 또 죄가 제거되려면, 구원받아야 할 자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실 죄 없는 분이 계셔야 한다. 하나님의 의는 이것을 요구하셨다. 즉 인자가 들려야 한다. 주여!!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의 이상의 것이 나타나 있다. 즉 그곳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도 나타나 있다. 16절의 처음 몇 마디 말이 지시하여 주듯이 16절..
"물린 자마다." 그가 아무리 여러 번 물렸다 할지라도, 또 그 독이 치명적인 결과를 빚을 정도로 온 몸에 퍼져 있다 할지라도 그가 바라보기만 하면 그는 '살' 것이다. 복음의 선포도 마찬가지이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예외가 없다. 지상에서 가장 악하고 비열한 자라 할지라도, 가장 비천하고 멸시를 받는 자라 할지라도, 모든 인류 가운데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쌍한 자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에 의해 구원될 것이다. 아멘! 죄인이 구세주께로 나아가는 길을 막는 것은 죄가 아니라 바로 불신이다. 이스라엘 중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치료법을 듣고도 그것을 무시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또 놋뱀을 바라본다고 해도 나을 가망이 없을 것이라는 악한 의심을 품는 자도 있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