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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3:34).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의해 보내지셨으며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말하신다. 변화산에서의 아버지께서 그에게 이 사실에 대한 증언을 주셨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다른 사자들과 다르시다. 그는 모든 점에서 '탁월하시다''. 다른 사람들은 성령을 '제한적으로'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 단편적인 것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령은 왔다가 다시 간다. 게다가 그들의 은사는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이런 은사를 받고, 다른 사람은 전혀 다른 은사를 받았다..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3:32). 요한의 이 말은 26절에서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라"라고 선언했던 유대인들에 대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가! 영적인 결과를 도표로 작성하고자 할 때의 통계적인 숫자는 참으로 믿을 수 없음이 여기에서 배워야 할 귀한 교훈이다.✒️ 저 유대인들은 외양만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대의(大義)는 비범하게 번창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주님의 선구자는 참된 영적 결과에 있어서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판결했던 것은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라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통계적인 숫자를 조심하라. 그것들은 주로 모여든 숫자에만 의존한다. 악관적인 사람들은 기쁘고 고무적인 모든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진지하고..
우리가 지금 고찰하고 있는 구절 속에는 세례 요한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최후의 증언들이 들어 있다. 세례 요한은 그의 주님의 여러 가지 영광을 증언하면서 일곱 가지의 대조적인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요한은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27절). 반면에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신" 자이다(35절). 둘째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반면에 요한은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일 뿐이다(28절). 셋째로, 그리스도는 '신랑'이시다. 반면에 요한은 신랑의 '친구'일 뿐이다(29절). 넷째로, 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하겠고 반면에 요한 자신은 '쇠하여야' 한다(30절). 다섯째로, 요한은 '땅에 속하고' 반면에 주 예수는 '하늘로 오시는'이시며..
우리는 이 3장에서 그리스도의 하늘의 신부가 곧 그리스도의 몸일 것인지에 관해서는 부인할 수도 단언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점에 관해서는 본 구절들의 범위 내에서는 판단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요한복음 3:29을 충실하게 설명하는 일이며, 거기에서의 '신부'는 분명히 새로 난 이스라엘 민족의 무리, 그러나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무리를 가리키는 것임을 설명하는 일이다. 그 무리를 모으는 일은 유대 민족 전체가 그리스도를 부인한 것으로 인하여 방해되었고, 이 시대에도 그리스도를 부인함으로써 그 일이 방해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이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 후"에는(엡 4:13) 하..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3:28). 요한은 여기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낸다. 그는 그리스도의 앞에 보내진 사자, 즉 그의 선구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의 신분은 종속적인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유대인들은 요한의 자만심을 유발시키려 했다. 그러나 주님의 종은 그들 앞에서 적절한 자신의 위치를 취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은 그리스도의 '앞에 나타내심을 받은' 자일 뿐임을 상기시킨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3:29). 우리는 우선 이 구절 서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주 예수께서 '취하신다'고 한 그 '신부'는 누..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3:27). 이 때 요한이 어떻게 처신했는가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의 대답은 지극히 적절하였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굴복하였다(27절). 둘째로, 그는 앞에서 자신은 주님에 '앞서 먼저 보내진 자' 일 뿐 그 외에 다른 어떤 신분도 아니라고 부인했었는데 여기에서 유혹자들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킨다(1:28). 셋째로, 그는 이스라엘이 요한 자신에게가 아니라 예수께 속해 있음을 선포한다(29절). 넷째로, 그는 사람들이 주 예수께로 몰리는 것을 보고서 그의 기쁨이 충만해졌다고 단언한다(30절). 끝으로, 그는 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하겠고 자신은 '쇠하여야' 하리라고 주장한다(30절). 이..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3:25). 여기에 언급된 '유대인'이란, 1:19에서 세례 요한에게 그가 누구인지를 물으려고 대표단을 파견했던 바로 그 유대인들이다. 고대 헬라어 사본과 개혁 성경(Revised Version)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개혁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a Jew)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러나 우리는 다른 많은 예에서처럼 여기에서도 흠정역(Authorized Version) 성경이 개역 성경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한다. 1:19에서 언급된 유대인들이 여기 3:25에서 다시 언급된 바로 '그 유대인들'임에 틀림없다. 이 사실은 28절을 읽..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3:23). 이 지명의 의미는 (성경의 다른 모든 예들이 그렇듯이) 대단히 함축적이다. 애논은 '샘물이 있는 곳"을 의미하며, 살렘은 '평화'를 뜻한다. 그곳에 있을 수 있었던 요한에게는 얼마나 축복이었겠는가! 이 명칭들은 가뭄과 죽음을 암시하는 '유대 광야' 및 '요단 강 사방'(마 3:1, 5)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는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칠 매우 중대한 교훈이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부르셔서 수고하게 하신 곳은 바로 가뭄과 죽음의 장소였다. 그런데 그가 거기에서 주 예수를 신실하게 증언했을 때 그곳은 그에게 '샘물'(새롭게 함)과 '평화'의 장소가 되었다. 하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