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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4:8). 이것은 단순히 우연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은혜롭게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정해진 일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가엷은 영혼과 단 둘이 있고 싶어하셨다. 요한복음은 우리가 숙고해 볼 수 있는 것 중 가장 고귀한 면의 그리스도를 나타내 주고 있다. 즉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 영원한 말씀, 만물의 창조자, 아버지를 계시하시는 자로서 묘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이야말로 이 영광스러운 분께서 죄인들과 함께 홀로 계신 모습을 가장 많이 보여주고 있다. 분명히 여기에는 신적인 계획이 들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와 함께 혼자 있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이 사마리아 여자와도, 요한복음 8ㅈㅇ에서의 현장에..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구세주께서 행하신 최초의 일은(그가 명령법을 사용하신 점에 주목하라) 그녀에게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달라고 청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값싸게 얻어지는 것이라고 간주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스스로를 얼마나 비천하게 낮추셨는가! 사마리아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도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심한 타락으로 간주되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사마리아인들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전혀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영광의 주님께서 사마리아인들이 사는 그 동네에서 가장 악한 자 중의 한 사람에게 물을 좀 달라 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여자를 놀라게 만든 것은 바로 그러한 그의 겸손이었다. "물을 좀 달라" 그녀에게 이루어져야 할..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그 여자가 거기 온 목적은 '물을 긷기 위함' 이었다. 그 여자는 자신이 사람들의 눈에 뜨지 않으리라는 것 이외에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와 같은 성품을 가진 여자는(다른 여자들은 그와 같은 여자를 피한다)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한낮의 태양이 내리쬐는 이 시각에 남의 눈을 피해 나온 것이다. 그 여자는 구세주를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만나리라는 것을 예기치도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그날 회심하리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은 그녀가 예상할 만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아마도 그녀는 출발하면서 '이 시각에는 우물가에 아무도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얼마나 외로운 영혼인가! 그러나 거기에는 한 사..
주께서는 이 여자보다 먼저 우물에 계셨다. 그는 그를 찾지 아니하는 자에 의해 발견되셨다. 그것은 갈대아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던 아브라한(수 24장 참고)의 경우에도 그랬고, 영광의 주께서 아브라함ㅇ이 메소포다미아에 있을 때 그에게 나타나셨을 때도 그랬다(행 7:2). 그것은 야곱이 그의 형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 달아났을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경우에도 그랬고(창 28:10, 13), 모세가 양을 치러 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예에서도 그랬다(출 3:1, 2). 각각의 예에서 주님께서는 그를 찾지 아니하는 자들을 주로 찾아가셨다. 그것은 나뭇가지 사이에 숨어 있던 삭개오의 경우에도 그랬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 이것은 강제적인 명령이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내가 오늘 네 집에..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 4:7-10). 우선 고찰하게 될 본문을 간략히 분석해 보자.1. 사마리아 여자(7절)2. 구세주의 질문(7절)3. 구세주의 외로움(8절)4. 여자의 놀람(9절)5. 여자의 편견(9절)6. 구세주의 책망(10절)7. 구세주의 제안(10절) 우리는 11장에서 요한..
필자는 이 모든 것을 가공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진정으로 애석하게 여긴다. 그러한 사람들은 그들의 눈이 하나님의 법으로부터 나온 '놀라운 일들'을 볼 수 있게 되기 위하여 '안약'을 찾으러 그리스도에게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고찰은 우리에게 있어서 형언할 수 없이 복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요한복음 4:6의 말씀, 즉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라는 말씀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다른 말이 있다. 그 말은 우리가 지금 고찰하고 있는 그림의 상징적인 특성에다 강력한 의미를 덧붙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저 구원의 특성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4:6)..
6. 우리는 출애굽기 2:15-17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을 수 있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떼에게 먹이니라." 이 상징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다. 첫째로, 애굽의 왕 바로는, 믿는 자를 멸망시키려고 애쓰는 사탄을 예시한다. 모세는 그로부터 '도망하였다.' 이 원수는 참으로 빈번하게 우리를 놀라게 하고 도망치게 만든다. 그러나 여기서 다음 구절에 주목하는 것은 매우 복된 일이다. 모세가 바로에게 현재 거주하고 있는 미디안으로 도망친 후 우리가 그에 대하여 읽을 수 있는 최초의 사실은 "그가 우물 곁에 ..
3. 창세기 21장에는 '우물'에 대한 말이 또 다른 문맥과 관련되어 언급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창 21:27-31). 여기서 우리는 '우물'이 '언약'의 장소임을 알 수 있는데(27절) 그 언약은 '맹세'에 의해 보증된 것이다(31절). 우리는 히브리서 7:20-22에서 그와 같은 내용을 읽을 수 있다.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