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6/19 (15)
En Hakkore
만나(출애굽기 16장). 우리의 첫 번째 필요는 자기 것으로 삼아 즐기는(전유 appropriate)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자신에게로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과 연관되는 최초의 교훈이었다.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하는 방법 여하에 달려있다. 불신자는 '그 구세주'(the Saviour)라고 말하지만, 신자는 오직 신실한 마음으로 '나의 구주' 라고 말할 것이다. 믿음이란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것이고 또 믿음은 개인적으로 전용하는 것이다. 이사야 53장에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한 말씀을 읽을 때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고 하셨으나 믿음은 그 말씀을 개인화하여" 그가 상함은 나의 죄악 때문이라"고 고백하게 한다. 이것이 곧 전유가 의미하는..
만나(출애굽기 16장). 3) 만나는 그 크기가 작았다.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출 16:14).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from God and of God) 완결된 계시가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음을 누가 감히 상상하랴? 하나님의 드러난 진리를 한 권의 책에 총망라하여 호주머니 속에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구원에 이르는 지혜에 필요한 모든 것, 이 땅을 순례하는 동안 우리 영혼이 습득해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함에 필요한 모든 것이 성경의 범위 안에 있다! 만나의 크기만 생각하지 말고 그 주어진 형태도 관찰해 보라. 그것은 '작고 둥근 것'이었으며, 모가 나지 않았..
만나(출애굽기 16장). 여기 출애굽기 16장에 이어지는 사실들은 매우 중요하다. 만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귀만 가지고 있다면, 그 속에 있는 상세한 내용들이 우리를 향하여 크게 말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예비하신 만나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예비한 양식의 아름다운 상징이 된다. 이 양식은 곧 그의 말씀이다. 이 양식은 기록된 그의 말씀과 성육신한 말씀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분리하여 생각해 보자. 본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만나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하늘의 양식으로서의 성경의 많은 유사점 가운데 몇 개를 더듬어 보도록 하겠다. 이어지는 장에서 하늘에 계신 자로서 땅에 오신 자이신 주 예수의 한 모형(type)으로서 만나를 보도록 하겠다. 1) 만나는 초자연 산물이었다. "그 ..
만나(출애굽기 16장). 이스라엘에게 은혜로운 휴식과 샘의 그늘과 엘림의 나무를 즐기는 것은 그리 오래 허락되지 않았다(출 15:27). 이제 다루게 될 새로운 장의 첫 구절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라고 말한다. 민수기 33장에 있는 이스라엘의 여정의 여러 가지 여건 또는 머물었던 장소에 대한 기록과 비교해 보면, 그들은 "엘림을 떠나 홍해 가에 진 쳤음"(민 33:10)을 알 수 있다. 거의 확실하게 이곳은 그들이 당시에 잠시 진을 친 홍해의 어떤 연안이나 지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도는 이스라엘이 마른 상태로 통과했을지라도, 그 대적들은 그 속에서 궤멸되었던 그 바다를 다시 한 번 내려다보게 의도하신 것 같다. 분명히 그들이 그곳..
광야에서(출애굽기 15장).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출 15:25, 26). 여기에서의 내용을 주의해 보면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애굽에 있었을 동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법도와 계명' 에 대하여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속함을 받았고, 이제 그분을 위하여 속량되었으니 하나님의 통치상의 요구사항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여호와는 그들을 놀라운 은혜로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은혜란 무법함이 아니다. 은..
광야에서(출애굽기 15장). 이 경우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형태 또한 매우 의미가 깊고 교훈적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나무' 를 보여주셨다. 그 '나무' 는 분명히 그곳에 항상 있었지만, 모세는 그것을 보지 못하였거나 아니면 그 나무의 달게 하는 특성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이 그 나무를 '그에게 보여주시기' 전까지, 모세는 하나님의 은총의 예비하심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도 스스로 얼마나 무지몽매한지를 보여준다. 하갈에 대하여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창 21:19)라고 하였다. 또한 열왕기하 6:17에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고 하였다. 분명히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
광야에서(출애굽기 15장).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출 15:25). 모세는 이스라엘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대신했기에, 그는 기도로 하나님께 이 사실을 맡겼다. '마라의 ''시험' 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몰아가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몰아가다'(drive) 라는 단어를 쓴 것은, 매우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거의 모든 시간에 육신의 영향력 아래 사로잡혀 친히 복주시는 그분 대신에 그분의 복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가 전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기도 가운데 진실한 마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 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게 해 준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
광야에서(출애굽기 15장). 우리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광야' 는 이 세상을 정확히 상징하고 묘사하며, 그리고 여정의 맨 처음에 겪은 일은 전체의 여정을 예고한다!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은 곳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메마름과 쓰라림이다. 어떻게 그 반대가 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미워하고 그 사랑하는 아들을 배척한 이 세상에 우리가 정착하여 만족하게 하겠는가?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중대한 사실이 있다. 우리는 광야의 여정에서 오직 기근(dearth)을 예상하면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박해 대신에 평화를 원한다면, 즉 우리가 신음하는 것보다 오히려 즐겁게 되는 것을 기대한다면, 이루어지기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실망과 낙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