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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아브라함을 부르심 6(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았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이 구절이 우리가 주목해 온 빛에 비추어 보면 아브라함의 "순종"을 말하고 있다. 구원얻는 믿음은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는 믿음이다. 사랑하는이여! 이 점에 대하여 전혀 실수하지 말라. 그리스도는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주"가 되신다(히 5:9). 아브라함은 지체없이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그에게 주권을 이양하고, 하나님의 지혜야말로 자기를 인도하시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인정했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품"에 이끌림을 받지 못할 것이다(눅 16:22).♥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나아갔다". 여..
아브라함을 부르심 5(히 11:8) 앞에서 지적한 것은 하나님의 측면에서 이미 성취된 사실을 살펴본 것이다. 법적으로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세상"에 속해 있지도 않고 "육체" 가운데 있지도 않다. 그러나 이 점이 인간적인 측면에서 실제로 옮겨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실제적인 체험에서 그것이 활용되어야 한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빌 3:20). 우리는 여기서 "나그네와 행인"처럼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삶을 살라고 요구하신다. 왜냐하면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이기 때문이다"(약 4: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러..
아브라함을 부르심 4(히 11:8)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부르심에 수반되었던 것, 또는 부르심의 '차원'을 숙고해 보기로 하자. 창세기12:1에 그 부르심에 대한 기록이 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는 얼마나 훌륭한 믿음의 시금석인가! 그것은 혈과 육에 대하여 얼마나 큰 시련이었던가! 아브라함은 이미 팔십 고령이 되어 있었다. 긴 여행을 해야 하고 옛 관계들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 나이 많이 먹은 사람에게는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 그가 태어난 고향을 떠나 집과 재산을 버리고, 가족관계를 끊고 사랑하는 자를 뒤에 두고 떠난다는 것, 그리고 장래의 불확실한 것을 위하여(인간적인 지혜로서는 그렇게 ..
아브라함을 부르심 3(히 11:8)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였다"(행 7:2). 이 말씀 속에 내포된 의미를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떻게 나타나셨는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두 가지 요점에 대하여는 확신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삶에 있어서 "살아 있는 실제"가 되셨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하나님이야말로 참으로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깨달았다. 머지않아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들 각자는 바로 그 체험을 개인적으로 하게 된다. 선택한 백성들이 이 세상의 정신 속에서 살아가며 자기를 추구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던 어느 날, 모호한 개념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고 생각 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했던 바로 그..
아브라함을 부르심 2(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이 구절을 연구해 나감에 있어서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이 구절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떠한 의미와 메시지를 가지고 있느냐를 확인해 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여기에 기록된 그 큰 사건을 통하여 예표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잠간 동안만 묵상하더라도 이 구절에서 가리키는 중심적인 요점은 아브라함이 받은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분명히 알게 된다. 이 점은 여기서 암시하는 일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을 발견한다. 사도행전 7:2,3절을 보면 그에 대한 더 뚜렷한 증거를 얻게 된다. 그러니 그 점을 우리의 출발점으로 삼..
아브라함을 부르심 1(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11:8). "사도는 이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교리는 고대부터 있었던 교리이며, 믿음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하여 행사되어 왔으며, 감각이나 이성의 판단에 쉽게 흔들리지 않음을 증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홍수 이전의 조상들의 경우를 통해서 그 두 요점을 다 증거하였다. 이제는 홍수 이후에 탁월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의 실례를 보여줌으로써 그 두 요점을 증거하려 한다. 먼저 그는 아브라함을 제시한다 - 그것은 아주 적확한 경우이다. 그는 믿는 자들의 아버지였고, 히브리 사람들이 자랑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삶은 계속적인 믿음의 실천..
노아의 믿음 6(히 11:6,7)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매튜 헨리(M. Henry)가 말한 바와 같다. "믿음은 먼저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그 다음에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 2:20). 특히 순종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러하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22). 특권과 의무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편,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의무를 행하는 것도 없다. 믿음이 노아 안에서 그로 하여금 많은 난관과 낙심 속에서도 꾸준히 그 수고를 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가 방주를 짓는 일은 믿음과 인내의 역사였고, 경건한 두려움의 수고였고, 순종의 행동이었고, 그가 보존받는 방편이었다..
노아의 믿음 5(히 11:6,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아, 여기에 바로 이 구절을 해석할 열쇠가 있다. 그 열쇠는 그 구절의 현관문과 같은 위치에 걸려 있다. 노아는 하나님의 선택한 다른 모든 백성들과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았다. 그러나 그 믿음이 역사하지 않는 무기력한 믿음은 아니었다. 에베소서 2:10의 말씀이 2:9의 말씀 뒤에 나온 것을 주목하라!."믿음"은 그의 모든 행위의 샘이었다. 그 믿음은 단순한 이지적인 승인 정도가 아니었다.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역사하는 초자연적인 원리가 되는 믿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보내어 악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