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59]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59]

En Hakkore 2024. 6. 1. 20:09

아브라함을 부르심 2(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이 구절을 연구해 나감에 있어서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이 구절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떠한 의미와 메시지를 가지고 있느냐를 확인해 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여기에 기록된 그 큰 사건을 통하여 예표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잠간 동안만 묵상하더라도 이 구절에서 가리키는 중심적인 요점은 아브라함이 받은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분명히 알게 된다. 이 점은 여기서 암시하는 일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을 발견한다. 사도행전 7:2,3절을 보면 그에 대한 더 뚜렷한 증거를 얻게 된다. 그러니 그 점을 우리의 출발점으로 삼아야겠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성경에 언급된 하나님의 "부르심"은 두 종류로 구별된다.

보편적인 부르심과 특별한 부르심, 외적인 부르심과 내적인 부르심, 효력 없는 부르심과 효력 있는 부르심 등이다. 보편적이고, 외적이고, 효력 없는 부르심은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주어진다. 또는 말씀이 전파되는 소리를 듣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부르심을 받는다. 바로 이 부르심은 모든 사람에게 거부당하는 부르심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잠 8:4). "청함을 입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되게 사양하여"(눅 14:17).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잠 1:24).

특별하고, 내면적이고, 효력 있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선택한 사람들에게만 임한다. 그 부르심의 은총을 입은 모든 사람들은 다 각각 그 부르심에 반응한다.♥ 다음의 구절들에서 바로 그 점을 가리키고 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오되.....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3,4,16).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롬 8:30).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고전 1:26,27).

이 부르심은 마태나(눅 5:27,28), 삭개오나(눅 19:5,6), 다소 사람 사울(행 9:4,5)의 경우에서 예증되고 실증된다.

개별적이고, 내면적이고, 항거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을 살리며, 그들에게 영적 생명을 부여하는 전능한 능력을 수반한다. 이 신적 부르심이 중생 또는 신생이다. 그 부르심을 받아 은총을 입은 사람은 바로 그때 "흑암에서 그의 기이한 빛으로" 옮겨진다(벧전 2:9).

히브리서 11:8에서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점은 히브리서 11장의 새로운 단락이 바로 이 구절로부터 시작됨을 다시 증거해 준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이한 그 부르심이, 성령께서 믿음 생활을 상세하게 묘사하실 때 처음 거론된 것은 필수적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의해서 영원히 살리심을 받기까지는 결코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기까지 아브라함이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자. 성령께서는 옛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이 중생치 못했을 때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강원하신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사 51:1,2). 여호수아 24:2로 돌아가 보면 도움을 얻을 것이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다'" 아브라함은 그때 이교도 가정에 속해 있었고, 70세가 되기까지 큰 도시에서 살았었다. 그는 틀림없이 자기 동료들의 방식과 똑같은 삶을 영위했었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내새에 대한 심각한 생각을 거의 하지 아니하였거나, 하나도 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모든 각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그들에게 임하여, 자기 뜻에 미쳐서 멸망할 길을 가는 그들을 붙잡기까지는 바로 그러한 상태에 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행 7:2).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영광의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빠져서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영예에는 하나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에게 가까이 오셔서 자신을 계시하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셨다.

아브라함의 속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주목할 만한 조금의 가치도 없었다. 하나님의 존귀를 받을 공로는 더 더욱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표적적으로 여기에서 나타났을 뿐 아니라, 그의 은혜의 "주권"이 그 많은 동류들 중에서 그만을 뽑아내신 데서 드러나게 되었다.

이사야 51:2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장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어째서 그의 아버지와 친족은 부르지 아니하셨는지. 그에 대한 이유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사실이다(롬 9:18). 그는 이삭은 부르시고 이스마엘을 버려두셨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외에는 어떠한 것도 알지 못한다"(W. Perkins, 1595년).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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