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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57]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57]

En Hakkore 2024. 6. 1. 20:08

노아의 믿음 6(히 11:6,7)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매튜 헨리(M. Henry)가 말한 바와 같다. "믿음은 먼저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그 다음에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 2:20). 특히 순종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러하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22). 특권과 의무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편,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의무를 행하는 것도 없다. 믿음이 노아 안에서 그로 하여금 많은 난관과 낙심 속에서도 꾸준히 그 수고를 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가 방주를 짓는 일은 믿음과 인내의 역사였고, 경건한 두려움의 수고였고, 순종의 행동이었고, 그가 보존받는 방편이었다 -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신 약속에서(창 6:18) 그가 방편들을 부지런히 사용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방주를 예비하였듯이, "그의 집이 구원받은 것"도 믿음의 순종을 통해서 왔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기를 존중히 여기는 자들을 존중히 여기신다.♥

노아가 이 홍수에서 구원받은 일은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영원한 구원을 예표하는 것이었으며, 반면에 홍수를 반대하던 사람들의 멸망도 "영원하다"는 것을 반증적으로 나타내는 표증이었다 - 왜냐하면 그들의 영이 아직도 옥에 있기 때문이다(벧전 3:19)!

우리 자신의 구원과 우리에게 맡겨진 자들의 구원을 추구하는 것은 마땅한 우리의 책임임을 기억하라(행 2:40; 딤후 4:16 참조).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여기서는 앞선 모든 것을 가리켜 말하고 있다. 그의 본, 하나님의 경고를 믿는 믿음,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를 경외하는 것, 진심으로 요동치 않고 방주를 예비하는 것 등을 통해서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믿지 아니하고 무관심한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을 "정죄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정죄"한다고 할 때 이러한 경우이다. 그 사람이 경건한 행동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임을 보여 주는 데도 그것을 하지 않으면 그 다른 사람의 죄는 더 커지는 것이다(마 12:41, 42 참조).

주일을 지키는 자가 주일을 지키지 않는 자를 "정죄한다". 세상에 속한 교회를 버리고 영문 밖에 있는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는 자는 타협하는 자를 "정죄"한다. 노아의 부지런한 수고와 값비싼 수고는 거짓된 안일에 빠져서 냉담해 있는 사람들의 죄를 더 크게 만들었다.

우리가 악인들을 회심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핑게대지" 못하도록 인격적 경건의 본을 그들 앞에 보여 주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여기서 언급된 "의"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믿되 구원얻는 믿음으로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가리킨다(렘 23:6; 롬 5:19; 고후 5:21). 이 의는 때로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의"로 불리기도 한다(롬 1:17).

때로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의 선물"로 불리기도 한다(롬 5:17). 어떤 때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께로서 난 의"로 불리기도 한다(빌 3:9).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가 값없이 우리의 것으로 여겨지고 인정되어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을 뜻한다.♡

노아가 이 의의 "후사"가 되었다고 말할 때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첫째, 믿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는 스스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임을 확증한 것이다(창 6:9).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을 때처럼 말이다(약 2:21).

둘째는, 그 의에 대한 "그의 마땅한 자격"을 확증했다. 여기서 그것을 "후사"로 언급한다. 이 점은 자기의 유업을 멸시했던 에서와 대조를 이룬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사놓으신 의를 여기서 "유업"이라 칭하는 것은, 그것의 존영과 탁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며, 그것이 값없이 주어짐을 확대하기 위함이며, 그것의 확실성과 요지부동함을 선언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그 유업을 실제로 받는 것은 미래에 속해 있다.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7). 우리 각자가 정립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는, "내가 후사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질문에 마땅한 답변을 찾으려면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어떤 자의 '영'을 가지고 있는가? 내 주요한 관심이 "생득적인 권리"(중생함으로 얻는 권리를 이름 -역자주)에 있음을 확신하는가?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요구들과 그 의를 위에다 놓는가(마 6:33)?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내 분깃의 축복을 생각하되 다른 어떤 것도 그것을 팔도록 유혹하지 못할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가(히 12:16)? 나의 마음이 그 유업에 사로잡혀 내 속에서 양자 될 것을 기다리고 있는가(롬 8:23)?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믿음으로 행하며, 열심히 그 계명에 주의를 귀울이며, 그럼으로써 세상을 정죄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삼중적인 의미에서 복된 자이다. 나는 곧 "더 이상 죄 짓지 않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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