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75]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75]

En Hakkore 2024. 6. 3. 11:22

믿음의 견인 1(히 11:13,14)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11:13,14)

사도는 초기 하나님의 자녀들 몇 사람이 보여준 탁월한 믿음의 행동을 몇 가지 묘사하여 왔다. 이제 잠시 멈추어 서서, 그가 이미 열거한 사람들과(39,40절을 보면 명백해지듯이) 앞으로 더 소개될 사람들의 믿음이 지닌 보편적 특성을 소개한다.

13절에서 이 특성을 제시한 다음에 연이어 세 구절을 통해서 그것을 확대설명한다. 이 일을 통해 성령께서 목적하시는 명백한 의도는, 끝까지 지치지 않고 장애들을 견디어 내며 지속되는 믿음이 절대로 필요함을 히브리 사람들에게 강하게 심어 주려는 것이다.♥

육신에 속한 사람도 "선한 결심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는" 바로 그 원리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부족하다(고전 13:7).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들의 믿음은 몇 가지 국면에서 그 믿음을 주신 하나님과 닮은 데가 있다. 곧 그 믿음은 살아 있으며, 썩지 않고, 마귀에 의해서 정복당할 수 없다. 족장들의 삶의 내력에서 그 점은 두드러지게 예증된다.

그들은 자기의 본토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우상 숭배자들로 가득한 땅에 거하며, 그곳에서 자기의 소유를 전혀 가지지 못했다. 또한 장막 안에 거하면서 많은 난관과 시련을 겪어야 했다. 또한 주께서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특별한 은총과 부합할 수 있는 어떤 특이한 이점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믿음 안에서 죽었다". 그들의 마음의 눈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들을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복들은 자기들의 것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장래에 주어질 분깃을 기쁨으로 내다보면서 그것을 위해서 현재의 이익들을 포기했다.

사도는 우리가 살펴보려는 구절들에서 끝까지 견뎌내는 믿음을 추구하고 소유하는 것이 크게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사도는 구약의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는 자들이었음을 언급한다.

여기서 사도가 드러내 보이며 칭찬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믿음의 인내와 부단성이다. 그들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신앙의 작용들과(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경우에 나타난 불신앙의 작용들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밖에서 오는 모든 시험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부여잡았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으로 죽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가 따라야 할 발자취의 본을 남겨 주었다. 존 칼빈(J. Calvin)은 그 점을 아주 아름답게 지적하였다.

"여기에 우리와 그 조상들 사이의 차이가 밝혀져 있다.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는 우리가 크게 넘치도록 받은 은혜의 맛만 보게 하셨고, 지금 우리 눈앞에 밝히 보이는 그리스도를 멀리서 희미하게만 그려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했고 그들의 믿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믿음을 지켜야 할 이유가 얼마나 더욱 큰가! 만일 우리가 갈수록 믿음이 약해진다면 두 배나 더 핑계할 수 없게 된다. 그 조상들은 오늘날 우리들이 그처럼 가까운 데서 보는 그리스도의 영적 왕국을 멀리서 바라보았고, 우리가 마땅히 믿음을 지켜야 할 처지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조상들이 그러한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죽기까지 믿음을 지켰다면, 주께서 그렇게 많은 도움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데도 믿음에 있어서 유약해지는 것은 얼마나 큰 게으름인가. 어떤 사람은 이러한 반대 의견을 제시할지 모른다.

곧 '그들은 믿음의 필연적인 귀추가 되는 약속들을 받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 의견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답한다. 그 표현은 상대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올려 세운 그 높은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이 약속을 통해서 우리들과 동일한 구원을 가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나라를 통해서 우리에게 밝혀진 것처럼 그렇게 분명하게 밝혀진 약속들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만족해 하였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보다 문자적으로 옮기면 "믿음 안에서('따라') 죽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우리는 거의 모든 주석가들과는 달리 그 말이 지금까지 언급된 아벨 이후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믿는다.

"이 사람들은" 문법적으로 말해서 다음에 나오는 사람들뿐 아니라 앞에서 소개된 사람들은 다 함축한다 - 관계대명사("이 사람들")는 나열된 모든 사람들, 젊은이나 늙은이나, 남자나 여자나,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열거된 사람들을 함축한다.

"같은 성령께서 모든 사람들 안에서 역사하며 모든 사람들 안에서 그 능력을 보여 주신다(고후 4:13)"(W. Gouge). 이 점에 대해서, 에녹은 죽지 않았다는 반대 의견을 제시할지 모른다. 에녹이 죽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지만, 사도는 죽은 사람들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창세기 46:7을 이미 애굽에 있었던 요셉은 제외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과 같다. 더구나, 에녹이 다른 사람들처럼 죽지 않았지만 그는 땅에서 하늘로 옮겨졌다. 그는 옮기우기 전에 끝까지 믿음으로 살았다, 바로 그 점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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