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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27]

En Hakkore 2024. 6. 19. 11:29

광야에서(출애굽기 15장).

우리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광야' 는 이 세상을 정확히 상징하고 묘사하며, 그리고 여정의 맨 처음에 겪은 일은 전체의 여정을 예고한다!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은 곳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메마름과 쓰라림이다.

어떻게 그 반대가 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미워하고 그 사랑하는 아들을 배척한 이 세상에 우리가 정착하여 만족하게 하겠는가?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중대한 사실이 있다.

우리는 광야의 여정에서 오직 기근(dearth)을 예상하면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박해 대신에 평화를 원한다면, 즉 우리가 신음하는 것보다 오히려 즐겁게 되는 것을 기대한다면, 이루어지기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실망과 낙담이 우리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

경험이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광야에서의 거의 모든 실패의 원인은 광야에 대한 잘못된 견해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라고 증거할 것이다. 광야에서 안일함과 휴식이란 찾아 볼 수 조차 없기에, 이러한 것을 찾으면 찾을수록 절망만 더해질 뿐이다.

여정의 첫 단계는, 여정의 진정한 본질이 이스라엘에게 무엇이었는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준다. 그것은 마라이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출 15:24).

이런 상황은 참으로 침통한 것이다. 삼 일 전만 하더라도 노래를 부르던 백성이 이제와서는 투덜대고 있는 것이다. 홍해 앞에서 한 찬양이 마라에 와서 불평의 여지를 준 것이다!

이는 정말 하나의 시련에 불과했건마는 이스라엘은 매우 슬프게도 그 시련으로 인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앞에 있었던 것과 같이, 그들이 비하히롯에서 애굽 사람들이 자신들을 압도한 것을 보았을 때와 같이, 여기서도 다시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고 모세를 비난하였다.

그들은 구름 기둥에 의하여 마라로 인도된 것을 완전히 간과하는 것 같았다(출 13:22)! 모세를 향한 투덜거림은, 사실상 여호와를 향해 투덜거리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환경에 대한 불평이나, 날씨에 대한 중얼거림이나, 사람들이 나에게 대하는 태도나 나날의 삶의 시련에 대한 불평은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엡 1:11)의 반대로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여, 여기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음"(고전 10:11)을 명심하자. 이스라엘 가운데 있었던 동일한 불신앙의 악한 마음과 거역하는 의지가 우리들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그 하나를 굴복시키고 다른 하나는 꺾어지도록 진지하게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불평하는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여기에는 단 한 가지의 대답이 있을 뿐이다. 그들의 눈이 더 이상 하나님께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애굽에서 그들 앞에 증거된 여호와의 능력으로 행한 이적과 홍해에서의 영광스런 인도함은 사실상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시고 또 함께 하심을 여실히 증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기는커녕 여호와에 대한 생각조차 없었다. 그들은 오직 모세에게만 상관하는 것처럼 말했다.

우리도 종종 이와 같지 않은가? 우리도 때로 마라에 이를 때 이러한 처지를 다른 이들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가?

우리가 믿어 왔던 친구들, 그 조언을 존중했었던 상담가, 우리가 의지해 왔던 육신적인 팔이 실패할 때면, 그 '쓴 물' 로 인하여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가!

Arthur W. Pink 출애굽기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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