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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29]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29]

En Hakkore 2024. 6. 19. 11:30

광야에서(출애굽기 15장).

이 경우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형태 또한 매우 의미가 깊고 교훈적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나무' 를 보여주셨다. 그 '나무' 는 분명히 그곳에 항상 있었지만, 모세는 그것을 보지 못하였거나 아니면 그 나무의 달게 하는 특성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이 그 나무를 '그에게 보여주시기' 전까지, 모세는 하나님의 은총의 예비하심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도 스스로 얼마나 무지몽매한지를 보여준다.

하갈에 대하여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창 21:19)라고 하였다. 또한 열왕기하 6:17에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고 하였다.

분명히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잠 20:12)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보여주신' 것은 무엇이었는가? 이것은 '한 나무' 였다. 그렇다면 '이 나무' 가 쓴 물을 달게 했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것은 분명히 우리의 복되신 구세주의 인격과 사역인데, 이 둘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성경에 그를 '나무'의 형상으로 나타낸 것이 몇 군데 있다.

시편 1편에서 이르시기를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라고 하셨다.

또 아가 2:3에서 이르시기를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라고 하셨다. 여기에 광야 생활에 대한 두 번째 위대한 교훈이 있다.

즉 그리스도의 그늘 아래에서 쉬는 것 이외에는 지상에서 우리가 당면한 쓴 잔을 달게 할 어떤 것도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여, 그의 발아래 앉으라. 그리하면 여러분은 주님의 과실이 입에 '달다는 것'을, 또한 주님의 말씀이 꿀, 곧 송이 꿀보다 더 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나무' 는 역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말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벧전 2:24).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당연히 쓴 그것을 우리에게 달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의 고통과의 교제(빌 3:10)이며, 그리고 그것에 대한 지식(즉 어떤 고통도 그것을 달게 할 수 없다는)이다! 우리가 말하는 이러한 고난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들에게 고유한 것임을 여기에서 기억하자.

광야에서 있었던 이 죽음의 '쓴 맛' 은  단지 보통 사람의 무리들이 경험하도록 해당된 체험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육신에 있는 어떤 것의 아픔이 아니다. 말하자면, 육신으로 계승되는 질병들을 참는 그런 괴로움이 아니다.

그것은 현세에서 주님 자신의 고난의 좁은 길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괴로움이다. '만일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당하면 또한 그와 함께 다스릴 것이라.''

마라는 십자가, 그 수치의 십자가, 주님에 대한 세상의 판단의 증표였던, 이 '나무' 로 인하여 달게 변했다. 우리의 괴로운 분투를 달게 만들어 주는 것이 십자가이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것으로서 그를 위하여, 수치와 배척을 참고 견디면, 주님과 연결한 단맛의 본질이 마라 자체를 마실 수 있게 만든다"(Mr. Grant).

사도행전 16장에서 그 아름다운 실례가 제공되고 있다. 거기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힌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잔인하게 채찍으로 맞고 지하 감옥에 던져졌다. 어둠 속에 갇힌 그들의 발은 차꼬에 채였으며 등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물론 그들에게 '마라' 였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마라를 대처했나? 그들은 '찬미하였고', 너무도 힘차게 찬미하였기에 다른 죄수들마저 들을 수 있었다(행 16:25). 여기에서 우리는 그 '나무'가 쓴 물을 달게함을 볼 수 있디.

그러한 여건 속에서 어떻게 그들은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그들이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기 때문이다"(행 5:41).

이것은 곧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십자가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말해 주며 그리스도인의 시련과 고난을 구세주의 고난에 참여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을 가르쳐 준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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