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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31]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31]

En Hakkore 2024. 6. 19. 11:32

만나(출애굽기 16장).

이스라엘에게 은혜로운 휴식과 샘의 그늘과 엘림의 나무를 즐기는 것은 그리 오래 허락되지 않았다(출 15:27).

이제 다루게 될 새로운 장의 첫 구절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라고 말한다.

민수기 33장에 있는 이스라엘의 여정의 여러 가지 여건 또는 머물었던 장소에 대한 기록과 비교해 보면, 그들은 "엘림을 떠나 홍해 가에 진 쳤음"(민 33:10)을 알 수 있다. 거의 확실하게 이곳은 그들이 당시에 잠시 진을 친 홍해의 어떤 연안이나 지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도는 이스라엘이 마른 상태로 통과했을지라도, 그 대적들은 그 속에서 궤멸되었던 그 바다를 다시 한 번 내려다보게 의도하신 것 같다. 분명히 그들이 그곳에 거한 기간은 잠시였으며, 아무런 중요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홍해라는 장소 표기는 출애굽기 16장에서는 생략되었다.

이스라엘을 신 광야로 인도하는 일로 인혀, 모세의 강건한 믿음은 확실하게 발휘되었다. 백성들은 여기서 처음으로 먹을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광야생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들은 일찍이 거했던 땅으로부터 점점 더 먼 곳으로 인도되었고 황량함과 죽음만이 존재하는 땅으로 점점 깊이 들어갔다.

이제 그들은 완연히 광야에 고립되었으며, 최소한 이백만이 넘는 무리들을 그러한 황량한 벌판으로 인도하는 그들의 지도자 모세의 용기와 신앙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견고한 신념을 나타내었다.

모세는 광야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하여 무지하지 않았다. 그는 사십여 년이나 근접한 곳에서 살았으므로(출 3:1) 오직 기적, 날마다 연이어 일어나는 기적만이 그러한 무리의 막대한 필요를 채울 수 있으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믿음은 아브라함보다 탁월했다(창 12:10)😎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출 16:1).

왜 여기에 특이하게 시간을 기록하였는지 묻는 자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면에서 어떤 중요성이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신 광야에 들어간 때가 어느 달 며칠이란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여간 이스라열이 애굽을 떠나 이 광야에 이르는 때가 "둘째 달 십오일이라" 고 하였다. 성령께서 이렇게 상세한 내용을 기록하였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충분한 증거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찮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비단 숫자라 할지라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중대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들의 질문에 대한 답견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둘째 달' 이었으니, 성경에 기록된 '둘' 이라는 숫자는 증거 또는 증인을 말한다(비, 계 11:3). 또 달의 '십오일' 이라 함은 5의 3배가 되는 수이다.

성경에 '5' 라는 숫자는 은총(grace) 이나 은혜(favour)를 나타내며(창 43:34) '3' 은 나타남 - 생명의 완전히 드러난 부활 - 의 숫자이다. 이 정의를 결합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의 은혜를 증가함과 그 나타내심을 알 수 있다. 그 뒤에 이어지는 결과가 이 사실을 분명히 나타낸다.

은혜가 그 빛을 발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죄의 어두운 배경이 있어야만 한다. 은혜는 받을 만한 공적이 없는 혜택이기에, 그 영광읏ㄴ 더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결점이 노출되어야만 한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풍성하다(롬 5:21). 여기서도 그러하였다. 우리가 이러한 점을 바로 다음에 읽을 수 있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 16:2, 3).

이로써 어두운 배경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애굽의 열 가지 재앙으로부터 거룩하게 모면함을 받았고, 속박의 땅으로부터 이끌려냄을 받았으며, 기적적으로 홍해에서 건짐을 받고, 구름과 불기둥으로 밤낮 할 것 없이 인도함을 받았으나 지금 와서 투덜대고 불평하며 '원망하는' 똑같은 백성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행한 자들이 소수가 아니라, '온 회중'이 그 죄를 범하였다. 그들의 투덜거림은 단순히 그들 중에서 행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택함을 받은 지도자를 대항한 것이었다.

그들의 죄는 또한 맹세로 인하여 더욱 무겁게 되었는데, 그들은 "애굽 땅에서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말함으로 거룩한 이름을 '망령되게 하였다.'

또한 그들은 성급하게 불순종하면서 거짓말을 한 것이 명백하니, 그 이유는 그들이 무자비한 애굽 사람들의 노예로 있으면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었다' 거나 떡을 '배불리 먹었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에 그들의 입에서 사악한 불신앙이 나왔으니, 그들은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라고 말하였다.

그들을 이끌어 내신 이는 단지 모세와 아론이 아닌 여호와였으며, 그리고 여호와는 그들이 시내 산에서 그를 경배할 것이라고 약속했었다(출 3:1). 그렇다면 그들이 광야에서 굶어 죽는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반항적 불신앙의 끔찍한 반란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은 무엇이었나?

출애굽기 16:4은 우리에게 말한다. '보라, 내가 비같이 내리리라.'  무엇을 비같이 내리리라고 하셨는가? '너희를 소멸하려고 유황불을 내리리라' 고 하셨던가? 아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라고 하셨다. 이는 놀라운 은혜로서 모든 것을 능가하는 공력이 없이도 받는 혜택이 아닌가! '보라' 라는 말은 성령님의 감탄사요 경이로운 기사를 주목하라는 표시이다.

그렇다면, 1절에서 시간을 표기한 것에 대한 반가운 진의가 여기에 있다. 이들 투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로부터 양식을 비(풍성한 공급을 말함)처럼 내림은 사실상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하게 증거하는 증거였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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