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Exodus 130]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30]

En Hakkore 2024. 6. 19. 11:31

광야에서(출애굽기 15장).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출 15:25, 26).

여기에서의 내용을 주의해 보면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애굽에 있었을 동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법도와 계명' 에 대하여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속함을 받았고, 이제 그분을 위하여 속량되었으니 하나님의 통치상의 요구사항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여호와는 그들을 놀라운 은혜로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은혜란 무법함이 아니다. 은혜는 우리들을 다만 하나님께 더욱 빚지게 한다. 그로 인한 우리들의 의무는 더욱 증가되는 것이지, 취소되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의로 말미암아 다스리는 것'이지 그것을 폐하는 것이 아니다(롬 5:21).🎵

순종의 의무는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 한은 결단코 일소될 수 없다. 은혜는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속함을 받은 피조물로서 그에게 단연코, 확실히 완전하게 빚졌음을 시인하는 보다 높은 근거 위에서 성립될 뿐이다. 이러한 원칙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계속되고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것이다.

즉 축복은 순종에 달려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질병으로부터 면함을 받음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부지런히 청종하고, 그가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행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 점을 분명히 하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은 우리들의 구원과는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이미 피 아래 있었고, 그리고 상징적으로 죽음을 지나 부활의 근거 위로 옮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계명과 법도를 회상하게 하셨다.

그렇다면 율법이 그리스도인과 아무 연관이 없다는 말로 만족하는 자들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그것이 그들의 구원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행실에 대한 통제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해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하나님의 법도와 일치하지 않고, 그리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지 않아도 구원이 박탈되지는 않을 것이나 의로우신 하나님의 징계의 '재앙들' 이 우리에게 닥치게 될 것이다(요 17:25).😎

26절을 마무리하는 문장에서 개별적인 하나의 단어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for)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어떤 선의에서 그러긴 하겠지만 그들의 열심이 '지식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 의하여 강탈되고 있다.

그들은 이 구절만 떼어 내어 주님을 그들의 치료자로 '공언' 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적절한 믿음에 반응하여 그들을 아무런 약초나 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치료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 구절에 근거하여, 신자들이 의사나 어떤 의학적인 방편에 의존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원리를 추론해낸다. 주님이 그들의 의원이 되시므로 세상의 의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그를 불신하는 소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구절에 연관된 말씀을 고찰해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치료함에 있어서 의학적 수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도록 가르친 것을 볼 수 있다.🎵 마라의 쓴 물은 이유를 불문하는 하나님의 엄명에 의하여 고쳐진 것이 아니라 물속에 한 '나무'를 던짐으로써 고쳐졌다.

이와 같이 성경의 '치유' 에 대한 첫 번째의 언급에 있어서, 하나님은 물을 고치고 그의 백성을 치료하는 수단을 고의적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비근한 예로서 그는 엘리사에게 여리고에 있는 물을 고치기 위한 수단(소금)을 사용하도록 명하셨다(왕하 2:19-22). 또한 하나님은 그의 종 이사야에게 히스기야를 고칠 때 그 수단(무화과 반죽)을 사용하도록 지시하셨다.

뿐만 아니라 시편 104:14에 보면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라고 하셨다. 또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했다(딤전 5:23).

심지어 하나님은 새 땅에서도 천년 통치를 통하여 죽지 않고 신령한 몸으로 살아난 만국에 속한 자들의 몸을 치료하는 데 모든 방편을 사용하실 것이다(계 22:2).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출 15:27).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내용과 대치되지 않는다. 엘림은 마라의 완성이니, 이는 우리가 그 순서를 관찰해 보면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먼저, 마라의 쓴 물이 나뭇가지에 의하여 단물로 변했고 그 후에 깨끗한 우물과 종려나무가 그늘과 휴식을 제공했다.

이것이야 말로 참으로 명확한 해석이다  - 즉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제하면서 그의 십자가의 원리를 일상생활에 성실히 적용할 때에 그분을 위한 고난의 쓴 맛은 달게 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곳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위하여 마련하신 순전한 즐거움 안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엘림' 은 하나님이 그와 더불어 순종의 길을 걷는 자들에게 주시는 만족을 말한다. 이 심령의 즐거움, 영혼의 만족은 말씀의 사역을 통하여 우리에게 온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열둘의 '물 샘'과 칠십 주의 '종려나무'의 의미가 깊음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도들을 내보내실 때에 선택된 바로 그 숫자라는 점이다(눅 9:1-10  참조)!

엘림이 우리에게 행복한 장소가 되도록 마라의 교훈에 유념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229

'강해시리즈 > 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odus 132]  (0) 2024.06.19
[Exodus 131]  (0) 2024.06.19
[Exodus 129]  (0) 2024.06.19
[Exodus 128]  (0) 2024.06.19
[Exodus 127]  (0) 2024.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