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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66]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66]

En Hakkore 2024. 6. 2. 09:18

아브라함의 삶 2(히 11:9,10)

창세기 11:31은 12:5로 연결된다.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아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정착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무한정 거기에 있도록 하시지는 않으셨다. 주께서는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할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목적을 포기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 만든 보금자리에서 빠져나오도록 그를 어지럽히셨다(신 32:11).

하나님이 사용한 방편을 주목하는 것은 매우 엄숙하다. "데라는 하란에거 죽었더라"(창 11:32; 행 7:4은 참조) - 중간의 여인숙을 아브라함이 떠나기 전에 죽음이 찾아왔다. 죽음이 아브라함을 뒤에서 붙잡고 있는 혈육의 끈을 끊기까지는 그 광야를 가로질러 출발하지 않았다.

우리가 특별히 이 시점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의 실수하는 자녀들에 대한 기이한 사랑이다.

"나 여호와는 번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말 3:6). 이 말씀은 정말 복되다. 비록 개들이 자녀들의 떡을 다 먹어 치워 자녀들이 패망케 하기 쉬운 정황에 있다 할지라도, "자녀들의 떡"의 복된 분깃을 자녀들에게서 빼앗지는 않는다.

신의 성품의 불변성은 성도의 보장이다. 하나님의 변치 않으심은 약속들에 대한 하나님의 미쁘심을 보증하는 가장 온전한 확증이다.♥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변화도 하나님의 마음을 다르게 할 수 없다. 우리 편의 어떠한 신실치 못함도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기의 말씀을 취소케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견고하지 못하고, 자주 시험을 받으며, 넘어지는 일들이 자주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너희를...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8,9).

사단과 세상의 권세가 우리를 거스리고, 고난과 죽음이 우리 앞에 있고, 우리 속에 배역무도하고 두려운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견고케" 하실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그러하셨다. 우리에게도 그리하실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미할지어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 구절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두 번째 효력 또는 증거를 밝혀 준다. 8절에서 사도는 아브라함이 어디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말하였다. 여기서는 어디를 향하여 나아가라는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보여준다.

8절에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한 믿음의 권능이 무엇임을 보여 주었고, 여기 9절에서는 그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기다리는 믿음의 인내와 부단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 자체만 읽으면 그렇게 많은 인상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의 진정한 의도를 이해할 처지에 서기 위하여 다른 성경구절들을 찾아 보고 주의깊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창세기에서 이러한 말씀을 듣는다.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마므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때가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서 초자연적인 은혜의 역사가 있어 그의 육신적인 소원과 생각들을 제어하지 아니하였으면(완전하게 그 소원을 뿌리뽑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틀림없이 가나안에 머무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이미 그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듣는다.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행 7:5). 다만 양떼와 소떼를 거느리고 먹일 소유권이 없는 토지만을 이용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한 평의 땅도 갖고 있지 않았다. 죽은 아내 사래를 묻을 장소를 위하여 적은 넓이의 땅을 "사야만" 했기 때문이다(창 23장). 이 일은 얼마나 큰 믿음의 시련이었던가! 왜냐하면 히브리서 11:8이 아브라함이 그 후에 "기업으로" 그 땅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점은 하나의 난제를 일으키기는커녕 그 모형의 아름다움과 적확함을 돋보이게 할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역시 "기업"을 받도록 되어 있다(벧전 1:4). 그러나 그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순간에는 그 기업을 온전히 차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매우 여러 해 동안 적대적인 세상과 반대하는 마귀를 대항하여 싸우면서 그 길을 나가도록 이 세상에 남아 있게 된다(매우 자주).

그 싸움을 하는 동안 그는 많은 좌절을 맛보게 되며, 수도 없이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에게 분여된 그 기업에 온전히 들어가려면, 먼저 어려운 의무들을 감당해야 하며, 난제들을 극복해야 하며, 시련들을 견뎌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고 하나님께서 유지시켜 주시는 믿음이 아니고는 이러한 일들을 족히 감내해 낼 수 없다. 그 믿음만이 여러 손실과 비방을 만나도 마음을 지탱해 줄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도 그러하였다.

그가 태어난 고향을 떠나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하는 여행을 시작하여 무서운 광야를 건너 낯선 땅에서 과반세기 동안 장막 생활을 했던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았던 것이다. 청교도인 맨튼(Manton)은 다음과 같이 아주 잘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려운 난경에서 훈련시키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하늘에 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신자로 하여금 세상으로부터 떠나 안주하지 못하게 격동시키는 것이 참으로 많다. 그리고 하늘을 기대하며 마음을 고정시키는 일을 요동하는 것이 대단히 많다.

세상에서 나오는 데는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우리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죄로부터 우리 자신을 이격시켜야 하고, 가장 큰 이해관계를 떠나야 한다. 영생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인내를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행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여기에 바로 우리의 연단의 시기가 있다. 믿는 자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그 약속을 기업으로 물려받기 전에 그처럼 훈련받았으니 우리도 그 연단받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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