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5/09 (15)
En Hakkore
5 그리스도와의 체험적 연합과 교제의 본성과 성격을 정의하고 묘사하고자 할 때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그것은 주님으로서의 그리스도께 기꺼이 복종하는 것이고, 친구로서의 그리스도와 친밀한 영적 교통을 하는 것이다. 즉 주님께서는 무관심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체해서는 안된다. 둘째로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빛 가운데에서 행하는 것이다. 그 빛 속에서는 모든 것이 어떤 숨김이나 거짓이 없이 공개적이고 참되고 진실한 가운데 행해져야 한다. 세째로 그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이고 그와 더불어 숨김없이 실제적으로 개인적인 교제를 하는 것이다. 네째로 그것은 우리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 관한 믿음의 실현에 근거를 둔다. 즉 믿음의 ..
4 그리스도와의 체험적 친교는 다른 모든 연합이 향하여 나아가는 거룩한 목표이다.♡ 이 친교는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주시는 분과 주님의 백성이 개인적이고 의식적이고 친밀하고 즐거운 연합을 가지는 것이며, 이런 생활에서 시작하여 영원까지(좀더 완벽하게) 지속해가는 체험인 것이다. 우리의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구원적, 실천적 연합의 큰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와 체험적으로 일체가 되게 하는 데에 있다. 즉 우리로 그의 영을 들이마시고, 그의 마음을 가지고 그의 기쁨을 누리도록 하는데 있다.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성도의 모든 체험 중에서도 이것이 하늘의 큰 기쁨에 가장 흡사하다. 체험적 연합은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즉 그와 분명하고 실천적이며 개인적 교제를 나누는 것이..
3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와 우리의 친교는 빛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요일 1:5-7). 지금 우리는 이 중요한 구절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 즉 그리스도와의 체험적 친교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만을 설명해 보기로 한다. "어두운 가운데서 행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빛 가운데서 행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 질문이 비록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으로..
2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와의 체험적 연합과 친교의 본질, 또는 특성을 정의해 보자.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잠 18:24)라는 말씀은 이 연합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측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 13:23)는 말씀은 이 교제에서의 우리의 측면을 잘 설명해준다. 이 주목할 만하고 말로 형언할 수 없이 복된 성경 구절의 첫 부분은 어떤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체험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진리의 한 측면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의 높으신 위엄을 강조하지만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친밀한 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려운 것과 마음..
1 이제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주체 중 가장 축복된 면을 해보게 된다. 왜냐하면 마음이 그리스도와 체험적으로 친밀함을 느끼지 못하고 귀중한 일체감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법적으로, 생명적, 구원적, 실제적으로 연합한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말로 우리가 다루고 있는 여러 가지 측면을 가진 주체의 가장 단순한 부분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지적인 복잡성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믿기가 어렵기 때문이며, 더우기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실이기에는 너무나 선하고 이 세상에서 실현되기에는 너무 복된 것이며 진창 속에서 뒹구는 가련한 벌레들이 도달하기에는 너무나 높은 것처럼 보인다. 자기가 죄인이..
6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를 이루어 동행하신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한 마음, 한 뜻이었다. 그리스도의 관심과 기쁨은 아버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다' 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것이 신성에서의 일치와 같이 지상에서의 그의 인성의 사역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아버지를 감동시키는 것이면 무엇이나 똑같이, 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감동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 2:17)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기쁘게 하려 하시지 않고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롬 15:3)라고 기록된 바와 같이 하신다. 그리스도와 아버지 사이에는 마음이 완전한 일치를 이루며 소망이 하나되며 목표가 일치한다. 어릴 적..
5 이제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께 나아온다'는 것은 대다수의 교회 강단과 오늘날 전도집회 강단에서 말하고 있는 방법과는 굉장히 다른 차이가 있듯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 또한 지금 통용되는 일반적인 사상과는 다른 것이다. 우리가 섬김으로써 구원받았다는 한 진리가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너희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긴다"(살전 1:9). 그러나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주로 우리가 '개인적 봉사자'와 '영혼의 전도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를 섬겨야 하는 것이지 친구를 섬기는 것이 아니다. 종이란 무엇인가? 종은 주인에게 복종하는 사람이다. 즉,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가라앉히고 자기를 고용한 사람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이다. '..
4 우리의 실천적 연합과 그리스도와의 친교는 우리가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붙잡음으로써 성장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께로의 연합은 그의 아들의 형상을 실제로 닮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다.♡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도록"(예속되고 복종하도록) 우리는 "원수(즉 죄, 사단, 세상, 율법의 저주, 하나님의 진노)의 손에서 건져졌다"(눅 1:74, 75).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우리로 두려움이나 육욕에 빠져도 좋게 하기 위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지 아니하고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로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리스도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살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오게 하셨다. 우리 구원의 첫 시작은 한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