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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그리스도께서 때가 되면 속죄제물로 드려지도록 하나님이 창세 전에 미리 작정해 놓으셨다면, 하나님이 죄가 세상에 들어오도록 미리 작정해 놓으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담이 죄를 짓고 타락하도록 미리 작정해 놓으신 것 또한 분명하다. 이와 완전히 조화롭게도,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친히 에덴동산에 두셨으며, 또한 뱀에 들어와 하와를 속이도록 허용하셨다. 우리는 바로 여기서 난제를 만난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도록 하나님이 영원 전에 작정하셨다면, 어떻게 그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아야 할 책임을 지울 수 있는가? 이 문제는 굉장히 어려워 보이지만 해법이 있으며, 유한한 인간의 지성으로도 그 해법을 이해할 수 있다. 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책임을 재는 잣대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다...
우리는 8장에서 을 살펴보면서, 타락한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책임만을 다루었다. 그때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인간의 책임은 개인에 따라, 각자가 받은 은사와 누린 특권에 따라 그 정도와 범위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었다. 이 진리는 누가복음 12장 47-48절에서 기록된 주님의 선언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엄밀히 말하면 이 땅을 거닐었던 자들 중에 완전하고 훼손되지 않은 책임을 부여받은 자는 둘 뿐이었다. 첫 번째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다. 아담의 후손들 각자의 책임은 이들에게 자신의 창..
결론을 정리하며, 부록은 싣지 않고 참고만 할려고 했습니다만, 지난 3개월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여운이 계속 머리속에 맴돌아 5회에 걸쳐 추가 연재합니다. 조금 긴 장문이지만, 우리 안에 하나님의 크신 위엄과 오묘하신 주권을 분별하고 이해하는 믿음의 폭이 더 깊어지기를 기도합니다♡ ****************************************** 하나님의 뜻(will, 의지)을 다룰 때, 어떤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작정된 뜻과 허용된 뜻을 구분하면서, 하나님이 단호하게 예정하신 것들이 있는 반면에 단순히 존재하거나 일어나도록 허용하시는 것들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맞는 것만 허용하신다는 점에서, 이런 구분은 실제로 전혀 아무런 구분도 아니다. 이러한 신학자들이 ..
이제 마지막으로 몇 가지만 생각하고 우리의 행복한 작업을 마치겠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택하셨다. 하나님은 이러한 주권적 선택을 통해 자비를 베푸셨다. 예정 교리는 무자비하고, 잔혹하며, 불의하다는 악한 비난에 대해서는 이것이 적절한 대답이다. 만약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택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기"(롬 3:11)때문에 아무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서 나온 모호한 추론이 아니라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이다. 바울은 로마서 9장에 이 주제를 충분히 논의하는데, 여기서 그가 하는 말에 주목하라.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또한 이사야가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인의 섬김 하나님이 구원받을 자들의 정확한 수를 창세 전에 결정하셨다면, 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왜 그리스도인으로서 열심히 섬겨야 하는가? 하나님의 주권 교리와 이에 상응하는 예정 교리는 주님의 종들에게서 열심히 전도할 마음을 빼앗지 않는다?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식은 그분의 종들을 낙담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용기를 준다. 의지의 자유를 믿으며, 죄인이 스스로 그리스도께 나올 능력이 있다고 믿는 어느 전도자를 예로 들어 보자. 그는 자신이 아는 방식대로 신실하고 뜨겁게 복음을 전한다. 그러나 그가 복음을 전한 사람들 대다수는 전혀 무관심하며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이 전혀 없다. 그가 보니 사람들은 대다수 세상 것들에 깊이..
요한계시록 17장 17절과 밀접하게 연결된 구절은 미가서 4장 11~12절이다. "이제 많은 이방 사람들이 모여서 너를 치며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의 계획을 깨닫지 못한것이라 여호와께서 곡식 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 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특히 세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1. '많은 이방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욕스럽게 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모여서' 그를 '칠' 날이 다가오고 있다. 2. 이들은 자신들도 전혀 모르게 -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하나님에 의해 '모인다.' 하나님이 '이들을 모으실 것이기 때문이..
우리 시대의 가장 악한 죄 가운데 하나는 불경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높은 위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돌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님의 능력과 역사를 보지 못한다. 그분의 존재와 성품에 대한 개념의 수준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우리에게 인간의 영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신을 믿으라고 요구한다. 이 시대는 창조자를 피조물의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그분의 전지를 의심하며, 그분의 전능을 더는 믿지 않으며, 그분의 절대 주권을 단호히 부정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기 미래의 건축자요 자기 운명의 결정권자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생명이 절대 능력을 가지신 통치자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벌레가 코끼리의 발을 막지 못하듯이, 자신..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요한계시록 19:6). 이 책의 제2판 서문에서, 진리의 균형을 유지할 필요성을 인정했다. 두 가지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주권적이며, 인간은 책임이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전자에 대한 탐구를 전개했다. 그리고 다른 연구들에서 후자를 빈번하게 강조했다... 두 진리 가운데 한 쪽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다른 쪽을 무시할 위험이 있다. 우리는 이점을 당연히 인정한다. 사실 역사 속에는 각각의 예가 무수히 많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책임을 소홀히 하면 방관적인 숙명론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인간의 잠재력과 책임에만 집중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놓쳐 버리는 것은 피조물을 높이고 창조자를 낮추는 것이다. 거의 모든 교리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