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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59] 체험적 연합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59] 체험적 연합

En Hakkore 2024. 5. 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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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와 우리의 친교는 빛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요일 1:5-7).

지금 우리는 이 중요한 구절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 즉 그리스도와의 체험적 친교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만을 설명해 보기로 한다. "어두운 가운데서 행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빛 가운데서 행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 질문이 비록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으로 나누어져 있기는 하나 같은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한 첫째로, 그리고 가장 명백한 대답은 '어두움 속에 행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불경건하게 행동하고, 죄악의 행로를 좇는다는 것이다. 즉 어두움의 일이란 곧 육체의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문제를 보다 더 상세하게 양심에 호소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빛의 주요한 특성을 고찰해보자. 빛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그의 투명성과 반투명성이다. 빛은 그것의 영향이 확산될 수 있는 한 어느 곳에서나 넓게 퍼질 수 있다. 빛이 들어오게 되면 주위의 모든 실체를 비추어준다.

구름과 그늘은 실체가 아니며 그들은 실체가 아닌 것을 낳아 기른다. 그런데 빛은 적나라한 진실이다. 그것은 사물을 나타나게 하고 보이도록 한다. 이와같이 '빛'이라고 하는 이 비유가 전달해주는 주요한 개념은 공개성, 명백성, 투명성, 실체성이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존재하신다.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존재하신다. '어두운 곳을 비추는 빛인' 진리의 말씀도 또한 그렇게 존재한다.♡

"빛이 어두움에 비쳤다"(요 1:5). 빛이신 주님은 "흑암에 앉은"(마 4:16)자들을 찾아 구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엡 5:8). 이 말씀은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즉 우리가 아직 중생하지 않았을 때에 우리는 어두움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두움'에 있었다.

타락시에, 즉 우리가 처음 요소들을 잃었다. 죄악이 들어와 죄와 수치가 있게 되었다. 빛이신 주님의 임재와 그 용모의 명백하고 공개된 빛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화과 잎의 그늘과 정원에 있는 나무의 은신처를 좋아했다.

그때부터 빛은 타락하고 중생하지 않은 사람에게 싫은 것이 되었다. 즉 어두움이 그의 마음 속 깊이 자리를 잡았다. 이제부터는 어두움이 그의 요소이다. "사람들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요 3:19). 그러므로 기만과 불성실과 위선과 숨기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태도의 특징이 되었다.

그러나 중생할 때에 은혜의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빛이 마음 속에 비추이게 되었고"(고후 4:6) 그 결과로 "이제 주 안에서 빛이 되었다"(엡 5:8). 이것의 결과는 혁명적이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빛 안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는 어둠의 일, 즉 '숨은 부끄러운 일'을 버린다.♡

그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주님께 현재의 그에 대해서 솔직하고 진실하게 자백하러 나온다. 더 이상 그는 죄를 숨기려고 하지 않으며, 또한 선하고 의로운 사람의 자세를 취한다. 또한 정직하게 그 자신이 더러운 문둥이이며, 어쩔 도리 없는 반역자며, 상습적인 죄인이며, 지옥에 가야 마땅할 죄인임을 인정한다.♡

이제 "착하고 좋은 마음"(눅 8:15)이 그의 것이 된 것이다. 전에는 스스로 교만하였고 다른 사람들의 아첨을 좋아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사랑하고 위선과 기만을 증오한다. 그리고 앞장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신자는 그가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계속해서 믿음을 유지해야만 한다.

신자가 교제를 나누는 분은 바로 '빛'이신 분이며, 참된 친교를 지속하기 위해서 신자는 개방적이고 진실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위선에도 관대함을 베풀지 않으실 것이며 주님께 어떤 것을 숨기려 하는 것은 미친 짓이며 손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엄한 주인은 아니시며 오히려 사랑과 온유하신 자비로 가득차신 분이다. 성경에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사 42:3)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귀는 잘못을 저지르는 그의 백성의 부르짖음을 향해 언제나 열려 있으며, 그들의 회개의 눈물은 그가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다(시 56:8).

우리가 그와 교제를 나눌 때 완전히 개방적이고 지극히 정직할 것을 그는 요구하신다. 기만과 불성실을 그는 묵인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거짓의 어두움 속에서는 행할 수 없으며 빛이신 분과 교제를 나눌 수도 없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요일 1:7). 여기에서도 "저가 빛이신 것같이"(5절에서처럼)가 아니라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임에 주목해 보라.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똑같이 맑고 투명한 대기가 둘 다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빛 가운데서 행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진리와 본성, 그리고 절대적인 실체의 빛이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빛은 하나님 자신의 빛이다. 그 빛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 빛 가운데의 보좌에 하나님은 앉아 계신다.

즉 그 빛 속에서 모든 일들을 보고 알고 측량하고 판단하신다. 그리고 우리도 빛 가운데서 행해야 하는데 그 빛은 하나님이 계신 빛과 똑같다. 똑같이 순수한 빛 가운데 우리가 있게 된다. 즉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 36:9).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의 순수한 진리로 모든 일을 평가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의 빛 가운데에서 자신을 판단해야 한다. 똑같이 맑게 빛나고, 투명한 거룩과 진리와 사랑의 대기가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의 속사람을 꿰뚫고 우리의 생각과 영혼과 마음의 눈을 깨끗이 하여서 하나님께서 죄를 보시듯이 즉 "나의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렘 44:4)이라고 죄를 보도록 해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룩함을 보시듯이, 즉 그가 사랑하시는 더없이 귀중한 일로서 그것을 보아야 한다. 즉 모든 사물, 모든 사건, 모든 사람, 우리의 모든 동기, 생각, 말, 행동이 하나님께 나타나는 모습과 똑같이 우리에게도 보여져야 한다.♡

우리는 빛의 교제를 나누도록 초대받았다. 만약 참된 교제가 있으려면, 어떤 타협이나, 기만, 불성실함이 없는 빛의 교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죄와 부패로 가득차 있는 내가 그렇게 순수하고 꿰뚫는 빛 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의 깨끗케 하시는 피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나님 은혜로 완전하고 언제나 효력이 있는 대책을 세워 주셔서 나의 타락으로 인하여 빛 가운데의 행함을 막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 주심에 대해 감사하라.♡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