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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55] 실천적 연합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55] 실천적 연합

En Hakkore 2024. 5. 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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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께 나아온다'는 것은 대다수의 교회 강단과 오늘날 전도집회 강단에서 말하고 있는 방법과는 굉장히 다른 차이가 있듯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 또한 지금 통용되는 일반적인 사상과는 다른 것이다.

우리가 섬김으로써 구원받았다는 한 진리가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너희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긴다"(살전 1:9). 그러나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주로 우리가 '개인적 봉사자'와 '영혼의 전도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를 섬겨야 하는 것이지 친구를 섬기는 것이 아니다. 종이란 무엇인가? 종은 주인에게 복종하는 사람이다. 즉,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가라앉히고 자기를 고용한 사람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이다.

'종'은 예속과 복종의 자리에 있는 자이며 다른 이의 뜻에 따라 그의 행동을 통제받고 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고 그리스도의 명하심을 행하며 그의 계명에 따라 행하고, 모든 것(즉, 농사를 짓거나 탄을 캐내거나 마루를 닦거나 말씀을 전파하거나 간에) 가운데에서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실제적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거룩한 봉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향한 복종의 길에서 우리의 감성과 지성과 의지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실제적 연합은 단지 우리가 구원을 위해 그에게 왔을 때 우리에게 떠맡긴 멍에를 입는 것일 뿐이다. 부부생활이 결혼의 연합 때에 남편과 아내에 의한 엄숙한 맹세를 실제로 이행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그리스도의 요구하심에 복종할 때 영혼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회심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하는 '좁은 문'을 지나왔다. 이제부터는 지상에서 우리의 순례길의 남은 기간 동안에 생명에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아온 후에는 우리의 의무와 특권은 이제 '그 안에 거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써만이 우리가 우리의 책임을 다하고 우리의 행복을 더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영광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진수는 우리가 시작했던 대로 계속하는 것이다. 모든 영적인 타락과 퇴보는 이 점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골 2:6). 세상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서 '받아들이기'를 거절한다. 구약의 바로처럼 중생되지 아니한 자는 여전히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 그 말을 듣겠는가"(출 5:2)라고 이야기한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유대인처럼, 회심치 아니한 자는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됨을 원치 아니한다"(눅 19:14)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로 인하여(요 6:44) 그에게 이끌린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한 싸움의 무기를 내던지고 그리스도에 의해 지배받기 위해 스스로를 포기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히 5:9)이시다. 그리스도의 명령하심에 복종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들였으므로 이제 그리스도인은 그의 주권에 복종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한 그리스도와의 실제적 연합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벧전 2:4)라는 말씀은 주님의 백성에게 선포된 사실이며 단순히 그들이 그리스도께 '왔다'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나아오고 있다!' 는 것을 의미한다. 한 번만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주, 그리고 매일같이 '그리스도께 나아와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시작할 때와 똑같이 계속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가장 깊은 욕구까지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며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공허함을 느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요 1:16)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연약함을 느낄 때 우리는 힘을 위해서 그리스도께 매달려야 한다. 우리가 무지할 때 우리는 지혜를 달라고 구해야 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지금부터 영원히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 쌓여 있다.

만약 우리가 타락한다면 "회개하여 처음 행위"(계 2:4)을 가지자. 즉, 스스로 죄를 고백하는 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자비와 용서를 구하며 또한 그리스도를 섬기며 그리스도께 복종한다는 우리의 약속을 새롭게 하면서 우리의 자신을 그리스도께 다시 한 번 의지하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 15:4).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교제하시도록 하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우리의 감정과 지성과 의지를 복종시킴으로써 그리스도와 교제해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부정의 행로를 따르는 그 누구라도 친교를 이루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명령이 다음 구절에서 다시 나타난다. 1) 저가 내 안에 2)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바로 이 말씀은 매우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말씀이다.

이 말씀을 명심하고 날마다 신실하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요 15:7)이라고 주께서 덧붙여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실천적 연합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알게 된다.

즉 우리 감정 속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소중히 간직하고 우리의 지성으로 그의 말씀을 명상하며 우리의 뜻을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시키며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해서 통제되어짐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실천적 연합이 지속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노라"(요 10:4)고 하시고 또한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신 말씀은 참으로 복된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친히 먼저 모범을 보이신  것 외에는 그의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 가운데 하나님께 자신을 복종시켰으며 하나님께 자신을 복종함으로써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고 자신의 뜻대로 행치 아니하셨으며 자신의 생명을 구하지 않으셨으며 자신의 명분을 내세우려 하지도 않으셨고 자기 스스로 책망하신 일을 갖지 않으셨다. 자아를 결코 생각지 아니하셨으며 유일한 관심사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아버지의 계명에 복종하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하나이다"라는 말씀에 그의 생활이 요약되어 있다.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