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5/28 (15)
En Hakkore
배도 4(히 10:25 -27) "우리가 자원하여 죄를 지으면"(짐짓 죄를 범한즉). 그것은 어떤 억지도 가해지지 아니한 우리 자신의 자원하는 행동이다. 여기서는 분명한 결심을 언급한다. 어떤 개인이 의도적으로 그리스도를 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겠다는 결심이다.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로 유대 율법에서는 부득이함으로 어쩌다 몰라서 죄를 짓는 것과(레 4:2, 13, 22 ; 5:15 ; 민 15:24, 27-29 ; 행 3:17; 17:30 참조),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것 사이를 구별하고 있다(출 21:14; 민 15:30; 신 17:12; 시 19:13). 사도는 여기서 분명히 그러한 구별을 지시하고 있다. 어떤 결심어리고 의도적인 목적으로 기독교의 계약들과 마땅한 의무들을 벗어 던지는 것을 말하려..
배도 3(히 10:25 -27)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것은 25절의 적극적인 국면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신앙고백을 계속 견지하도록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또 다른 방편이다. "서로 권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의무이다. 이 악한 날에 그 의무를 실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적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러한 실패를 이상하게 여기기는 어렵다. 신앙을 고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권면을 받거나 주의를 받는 일보다 위로해 주고 토닥거려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들 대부분은 너무나 예민한 나머지 조금만 비평적인 말을 하여도 마음이 상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미쁘고 참된 "사랑"의 행동을 하기..
배도 2(히 10:25 -27)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 구절은 23절과 24절에서 다룬 그리스도인의 견인의 문제로부터 배도의 문제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형성한다. 그 배도의 문제는 26절 이하에서 다루어진다. 물론 그 주제는 23절보다는 24절에 더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주석가들 거의 대부분은 이 요점에서 방황한다. 그것은 "또" 라는 말이 이 구절 처음에 없다는 것을 주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폐하다" 는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상 이 구절의 내용들은 배도에 대한 신실한 경고를 형성한다. 첫째, 히브리인들은 공적 예배를 폐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둘째, "어떤 사람들"은 이미 그러한 일..
배도 1(히 10:25 -27)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10:25-27) 우리는 이제 히브리서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전체에서 가장 엄숙하고 가장 두렵게 하는 한 대목에 이르게 되었다. 성령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을 주장하사 경건한 떨림으로 이 대목에 접근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 경건한 떨림이란 배도의 씨앗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합당한 것이다. 먼저 우리가 살펴보려는 이 대목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
그리스도의 견인 6(히 10:23,24)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또한" 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말이다(우리말 개역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음-역자주). 그 말은 이 구절의 내용이 방금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과 긴밀하게 연관되었음을 명백히 시사했음을 보여 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적인 덕성에 사려깊게 주의를 기울이듯이 다른 성도들에 대하여도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지적하여 시사해 준다. 그래서 여기서는 두 가지 요점을 생각해야 한다. 곧 명령된 의무의 정확한 본질과, 그 권고와 23절의 권고 사이의 관련이다. "서로 돌아보아". 영어성경에서 "생각하다"(consider)라는 어휘로 모두..
그리스도의 견인 5(히 10:23,24) 위에서 인용한 두 진술로부터, 우리가 여기서 싸우고 있는 그 악이 - 성경이 어디서고 보증하지 아니하는 육신적인 안일 - 저 의기양양한 퓨리탄 시대에도 존재했었음을 지각할 수 있다. 참으로 해 아래 새 것이란 없다! 거의 삼백 여 년 전에 저 신실한 교사요 가장 훌륭한 강해자라 불리우는 오웬이, 성도들에 대한 신적 보존이라는 보배로운 진리를 한쪽으로 치우쳐 부패케 하는 악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귀는 그리스도를 향해서도 그 방법을 썼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네 발이 닿기 전에" 받쳐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이대며 그 약속을 믿고 뛰어내리라고 했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가차 없이 자신을 지킬 필요성을 아시고 그 사단의 간계를 물리..
그리스도의 견인 4(히 10:23,24)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오늘날 어떤 학파가 주장하는 일방적인 교훈은 이와 같은 권면이 쓸데없을 뿐 아니라 의미없다고 일축해 버린다. 만일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만 온전히 관심을 기울여 의뢰한다면(오늘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확언하고 있듯이), 그리고 나를 하늘나라로 들이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철썩같이 믿는다면, 내가 내 영혼과 내 영혼의 영원한 구속을 하나님의 손에 의탁함으로써 나를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책임이라면,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은 전혀 불필요한 일이다. 일단 진리를 떠난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증은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 내 몸을 하나님의 손에 위탁시켰고 그가 나의 건강을 지켜주시므로, 건강의 법에 대하여 게을리 하..
그리스도의 견인 3(히 10:23,24) 오늘날 신앙을 고백하고 하늘나라의 순례길을 막 출발한 어린 그리스도인들에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된다는 식의 말을 해 주는 이들이 있음을 볼 때 참으로 서글프기 짝이 없다. 그들 편에서 불성실하면 '천년 왕국에서' 받을 어떤 면류관을 박탕당하기는 하겠지만,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한, 육체에 빠지거나 세상과 연락하여 돌아간다 할지라도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그처럼 영혼을 파멸시키는 오류의 말을 듣는 사람들 중에 참으로 낮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준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로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안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