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5/19 (15)
En Hakkore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수 6:8). 여기서 다음을 주목하라. 첫째, 제사장들의 행동의 시점이 얼마나 정확한지 모른다. 그들은 여호수아에게서 받은 지침을 따라, 백성들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위치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행동의 연합이 있어야 했다. 곧 제사장들에게 백성들이 함께 했는데, 위의 문단에서 말씀한 바를 실제 모범으로 보인 것이다. 둘째, 성경에 언급되는 내용에는 무의미하거나 피상적인 것이 없으므로, 성령께서 제사장들의 나팔의 자연 그대로의 특성을 다시 강조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이 장에서 다섯 차례나 이때에 사용된 나팔들이 "양각 나팔"이었음이 명시되고 있다. ..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수 6:6, 7). 앞에서는 지면의 부족으로 인해서 이 두 구절에 대한 설명을 완결 짓지 못했다. 거기서는 앞절에 대해서 길게 다루면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복음 사역자들의 그림자였음을 제시했고, 또한 그들에게 지정된(영적) 무기들이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고후 10:4)임을 말씀했다. 그 표현을 '믿음의 유비'(the Analogy of Faith)의 원리에 합당치 않은 방식으로 취하여 육신적으로 이해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
유기(遺棄)와 하나님의 주권 9 지금까지 유기 교리를 성경이 제시하는 대로 살펴보았다. 유기 교리의 오용과 그릇된 추정을 막기 위해 깊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유기 교리는 하나님이 무죄한 피조물을 취하여 악하게 만들어 멸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전 7:29). 하나님이 죄악된 피조물을 창조하신 것은 이들을 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죄를 하나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죄에 대한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하나님의 유기 계획은 타락하고 죄악되며, 부패하고 유죄한 인류를 고려해 세워졌다. 타락한 인류로부터, 하나님은 소수를 구원하기로 정하셨는데, 이들을 자신의 주권적 은혜의 기념비로 삼기 위..
유기(遺棄)와 하나님의 주권 8 로마서 9장이 유기 교리를 가장 분명하게 말하지만, 유기 교리를 말하는 구절은 이 외에도 또 있다. 그 가운데 한두 구절만 간략하게 살펴보자.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롬 11:7). 여기서 두 그룹이 날카롭게 대조를 이룬다. '택하심을 입은 자'와 '남은 자들'이다. 한 그룹은 '얻었고' 나머지 그룹은 '우둔하여졌다'. 존 번연(Jhon Bunyan, 1628-1688)을 인용해 보자. "엄숙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사람과 사람을 나누며, 택자와 남은 자들을 나누며, 선택한 자들과 버려진 자들을 나누며, 품에 안긴 자들과 거부당한 자들을 나눈다. 여기서 '남은 자들'은 불택자..
유기(遺棄)와 하나님의 주권 7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롬 9:23). 하나님은 각 사람을 다르게 대하신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어떤 사람들은 완악하게 대하신다. 어떤 사람으로는 '귀히 쓸' 그릇을, 어떤 사람으로는 '친히 쓸' 그릇을 만드신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이 하시는 이유를 두 번째 말한다. 22절과 23절에서 바울은 먼저 '진노의 그릇'을 언급한 후에 '긍휼의 그릇'을 언급한다. 왜 이렇게 하는가? 이 질문의 답이 아주 중요하다. 바울이 이런 순서로 말하는 이유는, 19절과 관련된 것이 '진노의 그릇'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로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시는 ..
유기(遺棄)와 하나님의 주권 6 이제 19절 나머지 부분을 살펴보자. 사도 바울은 동일한 반론을 조금 다른 형태로 다시 제기하는데 그것은 그 의미를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여기서 존의되는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뜻'(하나님의 주권적인 방법)과 관련된 게 분명하다. 이것은 우리가 17~18절에 관해 했던 말이 옳음을 확인해 준다. 즉 이것은 단순히 형벌로서의 완악하게 하심 - 다시 말해, 먼저 진리를 거부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완악하게 하심 - 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적으로, 완악하게 하심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타락하고 죄악된 피조물을 완악하게 하시는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다. 바울이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라고 묻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
유기(遺棄)와 하나님의 주권 5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8). '그런즉' 이라는 접속사는 바울이 앞의 세 절에서 말한 내용을 근거로 일반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바울은 이런 구절을 토대로 하나님이 바로를 다루시는 경우에서 실증된 원리를 보여준다. 모든 것이 창조자의 주권적인 뜻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분은 어떤 사람은 사랑하시고 어떤 사람은 미워하신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어떤 사람은 완악하게 하시는데, 그 무엇과도 관계없이 오직 자신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하신다. 앞 구절에서 육신의 생각에 가장 큰 혐오감을 주는 부분은 완악하게 하심 -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 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
유기(遺棄)와 하나님의 주권 4 또 하나의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가 깊다. 하나님이 바로를 견제했을 법한 유일한 억제 수단을 단호히 제거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무제한의 권력을 주셨다. 그리고 그를 법과 영향과 지배를 완전히 초월하는 자리에 앉히셨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 앞에서, 애굽에서 제거하셨다. 모세는 애굽의 지혜에 능통했으며 바로의 궁정에서 자랐다. 이런 모세를 왕좌 가까이에 남아 있게 하셨다면, 그의 영향력이 바로의 악을 틀림없이 견제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이 모세를 미디안으로 보내신 이유 가운데 하나인 게 분명하다. 바로가 가장 악했던 시기는 모세가 없을 때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영향력을 제거함으로써 바로에게 무제한의 기회를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