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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56] 실천적 연합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56] 실천적 연합

En Hakkore 2024. 5. 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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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를 이루어 동행하신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한 마음, 한 뜻이었다. 그리스도의 관심과 기쁨은 아버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다' 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것이 신성에서의 일치와 같이 지상에서의 그의 인성의 사역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아버지를 감동시키는 것이면 무엇이나 똑같이, 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감동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 2:17)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기쁘게 하려 하시지 않고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롬 15:3)라고 기록된 바와 같이 하신다.

그리스도와 아버지 사이에는 마음이 완전한 일치를 이루며 소망이 하나되며 목표가 일치한다. 어릴 적에 주님은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겟세마네에서는 "아버지 당신 원대로 되어지이다" 라고 말씀하셨으며 마지막에는 "아버지여 아버지 손에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시고 그의 백성들에게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안에 거하시고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심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말미암은 것이다. 물론 상호 내주함은 원리와 본질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모든 완전하신 인생의 순종을 통하여 그것이 성육신이 되기 이전보다 결코 더 충만하고 완전하게 될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렵지만 승리의 종말이 될 하나님의 뜻을 행해감에 따라 그의 인성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더욱 깊어갔고 더욱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체험했음이 틀림없다.

인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하심으로써 복종에 대해 배우신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복종이 인간 안에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 안에 인간이 내주하는 것을 보다 더 강하게 하고 증진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이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떠맡으신 복종이 한결같이 슬픔과 고통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고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즐거움과 기쁨을 보상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고 계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심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하자. 우리의 경우도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복종은 마셔야 할 쓴 잔이며 져야 할 무거운 십자가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처럼 우리는 고난받음으로써 복종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렇게 그리스도가 복종하신 것과 똑같은 복종을 배우도록 하자.♡ 즉, 우리 자신의 뜻을 언제 어디서나 포기하는 것을 배우자.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가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뜻이 그리스도의 뜻에 합해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된다. 우리가 실천적인 길에서 그리스도의 감정과 지성으로 돌아갈 때만이 그리스도께서도 실제로 우리의 감정과 지성으로 들어오신다. 이것이야말로 안식과 평강과 기쁨과 열매맺음과 유익함의 비결이다.♡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실천적 연합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함'은 순종으로 이루어지며 순종에 의해 지속된다. 또한 이것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신다"(요일 3:24)라는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 한다면 상호 내주함은 있을 수 없다. 죄의 길은 거룩한 자와의 친교와 양립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한다 함은 그리스도의 뜻이 아버지의 뜻 안에 있었던 것과 같이 우리의 뜻이 그리스도의 뜻에 합쳐지는 것이다.♡

이리하여 그것은 외적인 활동과 내적인 평온의 결합인 것이다. 즉, 손과 발이 바삐 활동하는 반면 마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얻게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그의 율법과 죄악과 의로움과 거룩함과 은혜에 대해서 하신 것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시는 것이다. 즉, 만물에 대해 그리스도와 같은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

이제 끝으로 우리는 실천적 연합의 또 다른 면, 즉 주님의 백성과 우리와의 교제에 관계된 것에 대하여 살펴보자.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적이고 영적인 연합이 그리스도와의 실천적 친교에 의하여 입증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적이고 영적인 연합은 그들과의 실천적 친교에 의해 나타나져야 한다. 성도들 사이에는 그 어느 것도 갈라 놓을 수 없는 복된 연합이 있다.

그들은 다같이 새롭고 영적인 탄생에 참여한 자들이다. 즉, 그들은 다같이 하늘의 부르심(히 3:1)에 참여한 자이며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벧후 1:1)에 참여한 자이다. 한분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요, 한 분 그리스도가 그들의 주님이며, 한분 성령이 그들의 보혜사이시다.♡

그들은 그들의 한 몸의 지체이며 그들의 부르심에 대한 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고 권고하셨다. 처음부터 그 일치는 명백하였으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볼 수 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행 4:32). 만일 그렇지 아니했다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24)는 일이 어찌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지금 기독교계 안에서 이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나타나 있음을 본다. 즉 누리는 주님의 친 백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는 자들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셈이다.

그들 사이의 분열과 불화와 질투야말로 참으로 극심하다. 교파의 장벽으로 인하여 몇몇 그리스도의 양들이 그의 다른 양떼들을 배척하고 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 15:7)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다.

그것은 교인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니라(로마의 성도들은 이미 그러한 관계에 있었다. 롬 12:3-4 참조). 각자의 그리스도인의 형제 자매가 당신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들의 행복과 관계되어 있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며 그들의 현세적이고 영원한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침례교인들은 오직 '침례교인' 만을, 장로교인들은 '장로교인' 만을, 회중교회 사람들은 그들과 '행동을 같이하는' 사람만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이 종교분파주의에 대한 항의로써 필자가 중립으로 남아 있는 이유이다.

오늘날 형제애와 동정심과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참으로 결핍되어 서로의 짐을 지는 대신에 그들은 남에게 짐을 더하여 주는 것을 즐겨워한다. 우리의 사소한 차이점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온 가족과 실천적 연합과 친교를 구하며, 즉 주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며 그의 소중한 피로 주께서 구속하신 이들과 사랑으로 동행하는 것은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자주 자기부정과 자기희생을 요구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그리스도인의 원칙을 희생함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 드러나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육적인 교만을 억제하는 것이다.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아는 것"(사 50:4)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우는 것"(롬 12:15)과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 것"(히 12:!2)은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다.♡

우리가 그렇게 행치 아니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여전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5)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 4:25)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진실하게 대해야 할 동기가 제시되어 있다. 거짓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의 지체를 이루는 연합과 친교에 해를 가한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내가 나의 형제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마치 나의 왼손을 찌르기 위해 오른손을 사용하거나 더러운 시궁창에 다리를 밀어 넣을 때 눈을 사용한 것처럼 나는 영적으로도 거짓말하는 것이 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참으로 고귀하고 거룩한 이치이다. 그리스도가 그들의 공통으로 머리이시며 사랑과 친교의 정신이 실천적 방법으로 나타나져야 한다. 그러므로 주여! 필자나 독자가 함께 실천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은혜를 기꺼이 주시옵소서. 아멘♡♡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