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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3 우리는 앞에서 이야기된 내용을 다시 반복하여 보자. 구원의 큰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단지 명목상의 교제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이성적이며 기쁨의 교제로의 회복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는가?" 즉, 거룩하고 영적인 교제의 길에서 어찌 동행하겠는가? 참으로 그렇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계명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 계명과 함께 즐거워해야 하며 그 계명의 통제의 영향 아래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
2 전장(前章)에서 우리는 구원의 연합과 생명의 연합을 구별하는 주요 특징들 중 한 가지를 지적했다. 즉, 생명의 연합은 능동적인 반면에 구원의 연합은 수동적이었다. 말하자면, 중생시에는 우리 안에서 무엇인가 이루어졌지만 구원에 있어서는 무엇인가가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께 인도되고 그리스도를 꼭 붙잡고 충실히 붙어있는 우리의 자발적인 행동을 필요로 한다. 또한 구원자와 구원을 받은 자 사이에 존재하는 실천적 연합에 있어서도 무엇인가가 요구되고 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그냥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나의 멍에를 메고'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우리가 맡아야 할 자발적이고 지각있는 행위이다. 그 비유는 매우 명백한 비유이다. 전에는 소가 넓은 들판을 마음껏 다녔지만 이제는 자..
장문 하나님의 '구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구조나 해방을 말한다.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인가? 죄의 형벌과 세력과 실제로부터의 구원이다. 구원은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인가?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과 성령의 연합적 사역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참그리스도인이 그 자신을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고 또 다른 의미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무슨 뜻인가? 이것은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세 가지 시제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구원받았다.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구원되어가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구원에 이르는 이 연합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아마도 야곱의 세 아들에게 붙여진 이름의 의미를 통해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르우벤은 '보라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바로 복음 자체가 그리스도를 말하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신령한 복이 우리의 영혼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적이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이기 때문이다. 시므온은 '들으심'을 뜻하는데 우리의 양심에 평안이 찾아오고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가득차게 되는 것은 바로 복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의 목소리를 우리가 들을 때뿐이다. 레위는 '연합함'을 뜻한다. 즉 우리가 아들을 응답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의 말씀을 믿으면서 ..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다른 모든 것에서 떠나 오직 그리스도만을 굳게 붙잡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소생시키시는 의도는 우리로 그에게로 돌아서서 그를 믿게 하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야 우리는 구원되기 때문이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 2:8). 사실 우리는 우리의 믿음 때문에 구원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것이 없이는 구원될 수 없다. 청교도인 토마스 브록스는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적절한 것과 같이 믿음도 역시 그러하다"고 올바르게 단언하였다.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 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43).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는 "..
우리가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느끼며 그에게 우리 자신을 맡기는 일의 근거는 바로 생명의 새로움으로 성령께서 우리를 소생시키시는 일이다. 죄인이 중생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생명에 이르는 회개와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부끄러워하지 않을 소망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 사이에 존재하는 연합은 그가 생각하고 추리하고 말하고 자연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을 할 수 있기 위해서 절대로 필요하듯이, 영혼과 그리스도 사이의 생명적 연합도 우리가 영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생명적 원리가 우리에게 전달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믿음의 생명적 행위를 발휘할 수 있다. "무릇 1) 살아서 나를 2)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
신자를 그리스도에게로 연합시키는 것을 간단히 표현해 보자면 여러 개의 서로 다른 고리들로 이루어졌으면서도 뗄 수 없게 서로 굳게 결합된 황금 사슬에 비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첫번째의 것을 우리는 '신비적' 고리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을 때의 그리스도와 우리의 근본적 연합과 관계가 있다. 그 두번째는 우리가 '일체적' 고리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우리의 그리스도와의 계약적 일체성과 관계가 있는데,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보증자가 되시고 그는 우리의 대표적 존재 또는 법적 존재가 되신다. 세번째의 것은 우리가 '생명적' 고리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성령께서 우리를 소생시키는 일과 관계가 있으며 이로 인하여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의 머리와 생명적으로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