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1]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1]

En Hakkore 2024. 5. 28. 16:16

그리스도의 견인 5(히 10:23,24)

위에서 인용한 두 진술로부터, 우리가 여기서 싸우고 있는 그 악이 - 성경이 어디서고 보증하지 아니하는 육신적인 안일 - 저 의기양양한 퓨리탄 시대에도 존재했었음을 지각할 수 있다. 참으로 해 아래 새 것이란 없다!

거의 삼백 여 년 전에 저 신실한 교사요 가장 훌륭한 강해자라 불리우는 오웬이, 성도들에 대한 신적 보존이라는 보배로운 진리를 한쪽으로 치우쳐 부패케 하는 악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귀는 그리스도를 향해서도 그 방법을 썼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네 발이 닿기 전에" 받쳐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이대며 그 약속을 믿고 뛰어내리라고 했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가차 없이 자신을 지킬 필요성을 아시고 그 사단의 간계를 물리치셨다!

죤 칼빈(J. Calvin)은 요한복음 8:31의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기 제자들로 여겨 주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열심히 믿음을 지켜야 한다."

논리적인 것이 아닌 성경이 우리 믿음의 법칙이다. 문맥에서 한두 진술만을 뽑아내지 말고 믿음의 전체 유추를 취해야 한다.♥ 진리가 왜곡되고 부패하고 그 마땅한 자리를 벗어나게 되면 오류가 된다. 통찰력이 부족한 인간의 이성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긍휼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령에 의해서 진실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그들 사이의 완전한 조화를 분변해 낼 수 있다.♥ 육신의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고후 6:10)란 말이 풀리지 않는 역설로 보일 것이다.

아들이 자기 백성들을 "자유케"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이 백성들더러 자기 멍에를 메라고 하시는 말씀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떨며 기뻐하라"(시 2:11)는 말씀도 트집잡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어구상에 모순이 나타난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백성들더러 영원한 정죄의 고통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라" 고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는 적잖은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언급된 것들은 이 문단 전체를 통해서 언급되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모순되지 않는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언뜻 보기에는 이 말씀과 앞에서 한 권고의 말씀 사이에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분간해 내기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그 말씀들이 격려하기 위해서 부연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우리가 영적으로 약속하신 이의 순전함을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의 믿음은 더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말 하실 수 없는 자와 상종하고 있음을 인식하면 할수록 그 분의 말씀을 신뢰하는 우리의 확신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길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에 신중치 못하게 사로잡히지 말고,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말씀들" 을 은혜롭게 주신 그 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우리가 힘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차원에서 보는 것으로 이 구절의 두 부분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설명하기에 곤란하다. 또한 여기서 어떤 특별한 약속을 언급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문제도 대답해 주지 못한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아마 이 말씀이 앞에 나온 권고에 대해서 가진 관계를 반스(A. Barnes)가 어느 누구보다 잘 밝힌 것 같다. "사도는 그들이 믿는 도리를 굳게 잡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이 요점을 더 생각하게 만든다. 영생을 그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모든 일에 대하여 미쁘시다.

여기서의 논증은 이러하다.

1)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처럼 미쁘시니 마땅히 우리도 하나님께 미쁘게 대하여야 한다.

2) 그가 미쁘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우리는 우리의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은혜를 위하여 그 분을 의존한다. 만일 그 분이 신실치 못한 것이 드러나면 우리는 그렇게 할 만한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분은 결코 불신실하지 아니하시다. 그가 약속하신 모든 것을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우리는 움직이지 말고 바싹 붙어 있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4:1과 6:15을 비교해 보면, 여기서 특별히 어떤 "약속"을 염두해 두고 있는지에 대한 빛을 얻게 된다. 4:1에서는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하노라".

또 6:15에서는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고 말한다. 이 서신 전체에서 "구원"을 "장래"에 속한 일의 차원에서 다루고 있음을 세심하게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설교와 가르침 속에서 거의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구원의 국면이다(참으로 이 국면은 놀라운 요점이다).

히브리서에서는, 베드로 서신들과 같이, 성도들더러 아직 광야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라고 일러 준다. 그 광야는 시험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장소이다. 끝까지 이기는 자는 3:12의 엄숙한 경고를 부지런히 주목하는 사람들뿐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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