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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10]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0]

En Hakkore 2024. 5. 28. 16:15

그리스도의 견인 4(히 10:23,24)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오늘날 어떤 학파가 주장하는 일방적인 교훈은 이와 같은 권면이 쓸데없을 뿐 아니라 의미없다고 일축해 버린다. 만일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만 온전히 관심을 기울여 의뢰한다면(오늘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확언하고 있듯이),

그리고 나를 하늘나라로 들이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철썩같이 믿는다면, 내가 내 영혼과 내 영혼의 영원한 구속을 하나님의 손에 의탁함으로써 나를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책임이라면,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은 전혀 불필요한 일이다.

일단 진리를 떠난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증은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 내 몸을 하나님의 손에 위탁시켰고 그가 나의 건강을 지켜주시므로, 건강의 법에 대하여 게을리 하거나 내가 무엇을 먹든지간에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나는 틀림없이 보존받을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내가 독을 마시면 나는 때가 되지 않아 무덤으로 가야 한다. 그와 같이 내가 육체를 따라 살면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사도들은 "기계적인" 구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들은 부지런히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고" 권면하느라 바빴다(행 14:22). 오늘날 많은 교사들의 치우친 논리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더러 "믿음에 계속 거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전혀 불필요하다.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된 것보다 더 지혜로워지려고 하지 말고 사도들보다 자기들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말라. 사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했다"(행 11:23).

아니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했다"(행 13:43). 사랑하는 바울도 자기로부터 전도를 받고 믿은 사람들이 정말 구원받았으니, 이제 그들의 영원한 복락에 대하여 더 이상 관심을 베풀 필요가 없다는 식의 관점을 가지지 않았었다. 오히려 그는 디모데를 보내었다.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얼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살전 3:5).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그렇게 경고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벧후 3:17).

우리가 이러한 질문을 받는자 하자. 그러면 당신은 성도들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구원의 인간성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단 말인가?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도 믿는다. 성경에 밝혀진 대로 믿는다. 그러나 지금 참으로 유행이 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그 곤고한 왜곡된 진리는 확실히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밝혀진 그리스도인의 견인은 믿음이 생기고 중생케 된 얼마 동안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여긴다면 하늘나라에 가는 '길의 문제'는 중간 시기의 도덕적 역사가 필요없게 된다.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인의 견인은 믿음과 거룩 안에 계속 거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의의 모든 열매들을 부단하게 맺어나가는 것이다. 회심한 사람이 일단 그 길에 들어갔으면 그 길을 벗어나지 않고 계속 고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을 행사해 끝까지 참고 경건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자기 자신들의 구원의 안정성에 대한 이기적인 생각을 하나님 여호와의 교훈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 그 이기적인 생각들로 더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전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보존과 인간의 견인 사이의 '균형'을 존 오웬(J. Owen)은 잘 나타내었다.

"요컨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우리 자신의 부지런함에 달린 것이 아님은 사실이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에 변치 않는 사실이 은혜 언약의 성취에 입각하여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계속 거하는 것을 안전케 하며 결국 그 믿음을 끝까지 보존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우리 측의 부지런한 열심은 그 목적을 위한 '불가분의 방편' 이다. 그 방편이 없이는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에 있어서 부지런함과 열심을 내는 것은, 마치 바울이 파선당할 때 타고 있던 배의 사공들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전에 바울에게 그와 함께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의 목숨이 안전할 것이라라고 말씀해 주셨다(행 27:24). 또한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었다. 그처럼 그들의 죽음이 보존된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미쁘심과 능력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함에' 사공들이 배 밖으로 도망쳤을 때 바울은 백부장에게 사람들이 배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31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모든 사람들을 보존하시겠다고 스스로 약속하셨으니 바울이 그 뱃사람들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존하실 것임을 잘 알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방편을 사용하셔서 그들의 목숨을 보존하실 것으로 안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혼의 생명을 주시고 우리의 영혼들을 보존하실 것이라고 스스로 언약하셨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폭풍과 시련이 다가올 때 우리가 부지런히 열심을 내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나님이 지정하신 방편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배도하여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경고로 가득찬 이 서신뿐 아니라 다른 성경 여러 곳에서도 그러한 경고가 많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런즉 조심하라'(고전 10:12),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임을 생각하라. 그 일을 위해서 얼마나 주의해야 하며,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며, 얼마나 열심을 내야 하는지를 생각하라.♡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을, 마치 물을 줄 필요도 없고 거름도 줄 필요도 없고 가지를 칠 필요도 없이 그저 저절로 혼자 번창하는 나무와 같은 식으로 생각한다.

패퇴하며 번창하지 못하는 신앙고백자들이 그처럼 많은 것을 보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 처음 가졌던 믿음의 자세에서 전적으로 이탈된 사람들이 그처럼 많은 일이 이상한 일일까!"

Arthur W. Pnk 히브리서 강해 II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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