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2]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2]

En Hakkore 2024. 5. 28. 16:17

그리스도의 견인 6(히 10:23,24)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또한" 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말이다(우리말 개역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음-역자주). 그 말은 이 구절의 내용이 방금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과 긴밀하게 연관되었음을 명백히 시사했음을 보여 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적인 덕성에 사려깊게 주의를 기울이듯이 다른 성도들에 대하여도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지적하여 시사해 준다. 그래서 여기서는 두 가지 요점을 생각해야 한다. 곧 명령된 의무의 정확한 본질과, 그 권고와 23절의 권고 사이의 관련이다.

"서로 돌아보아".

영어성경에서 "생각하다"(consider)라는 어휘로 모두 다 번역하고 있는 말이 신약 헬라어로는 열 한 가지이다. 그들 중 넷은 단순동사들이고 그 중 일곱은 특별한 강조를 목적으로 한 합성동사이다.

그 동사의 첫번째 의미는 어떤 일을 심각하게 관찰하는 것이다(행 15:6). 두번째 의미는 면밀하게 어떤 일을 의도하는 것을 의미한다(히 7:4). 세 번째 의미는 파수꾼으로서 정탐하거나 은밀히 탐사하는 것을 의미한다(갈 6:1). 네 번째 의미는 어떤 일을 마음 속에서 뒤집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딤후 2:7).

첫번째 단순동사는 사도행전 12:12에서 합성되어, 어떤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을 의미한다. 두번째 단순동사는 히브리서 13:7에서 합성된다. 그래서 어떠한 일을 열심히 살펴보는 일을 의미한다. 네번째 단순동사는 사도행전 11:6에서 합성되어 어떤 일을 온전히 알기까지 철저하게 가늠해 보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 우리가 다루는 본문에서 그 말이 사용되었다.

마가복음 6:52에는 다른 합성어가 나온다. 제자들은 일들을 함께 통합 비교하는 것을 하지 못했다. 히브리서 12:3에서 또 다른 합성동사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신 '모든' 것을 계산해 보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1:50에서 유사한 합성동사가 나타난다. 그리하여 철저하게 회계하는 의미로 쓰여진다. 마태복음 6:28에서 "백합화를 생각해 보라"는 말은 그 백합화를 통해서 가르침을 받기까지 철저하게 배우라는 의미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배워야 하는 실제적인 교훈은, 하나님께 속한 일들은 우리의 가장 면밀한 주의를 요한다는 것이다.

"서로 돌아보아".

우리 동료 순례자들의 유익을 부지런히 마음에 두고 부단하게 도모하도록 하라는 말이다. "돌아 보다"는 말은 매우 강조적인 말이다. 3:1에 나오는 말과 같은 말이다. 3:1에서는 "우리 믿는 도리의 사도시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생각하라" 고 명하고 있다.

여기서 그 말은 다른 제사장들의 영적인 상태와 복락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탐사해 보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들이요 같은 가족들이다. 지상에 있는 어떤 끈보다 더 가깝고 더 사랑스러운 끈으로 그들을 매며 너희도 그들에게 매이라는 말이다.

그들의 말과 너희의 복된 관계를 '생각할 뿐' 아니라 그들의 환경과 처지와 시련과 시험과 연약과 필요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그들을 도와 주고 봉사하고 그들에게 복된 것을 행할 은혜를 구하라. 그들도 그들 나름의 갈등과 좌절과 낙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은 일으켜 세우라"(히 12:12).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여기에 서로 생각하며 돌아보는 목적과 주요한 의도가 표현되어 있다. 그것은 의무들을 수행하도록 격려하고 자극하려는 것이다. 열심을 내게 하고 열정을 가지고 거룩한 삶을 힘있게 살아가도록 자극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경건한 본을 통해서 서로간에 자극하며 합당한 권고와 이기적이지 않은 자비의 행동을 통해서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서로간에 "사랑"의 불꽃을 붙여야 한다. 그 사랑의 불꽃은 단순한 감상이나 육신에 속한 정이 아니다. 오히려 거룩한 행동 원리로서 상대방을 위하여 가장 높은 선을 이루어 주려는 것이다.

기독교 사랑은 의롭고, 결코 죄에 대하여 여유를 주지 않는다. 기독교 사랑은 신실하고, 사랑이 필요한 곳에 비난과 경고를 무서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 "선행" 은 경건한 삶의 열매요 소산이다.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요이 6).

24절의 권면과 23절의 권면 사이에는 매우 친절한 관계가 존재한다. 사랑과 선행은 둘 다 구원얻는 믿음의 진지한 신앙고백의 열매요 표증들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열심히 주목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을 지속시킬 수 있는 진수가 되는 방편이다.

그리스도인의 견인은 다름 아닌 실천적인 경건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요.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리스도의 형제들을 사랑하는 일을 끊임없이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돌아보면서 믿음을 견고히 하며 우리 삶의 열매가 있도록 하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어떠한 그리스도인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롬 14:7). 우리 각자는 우리가 관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않으면 장애가 되고 축복이 되지 않으면 저주가 된다. 그 중 어느 것에 "속하는가"?

주께서 본 강해서 저자와 독자를 다 분발시켜 보다 비이기적이고 같은 몸의 지체되는 사람들의 영적인 선을 위한 사랑스러운 배려를 하도록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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