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하나님의 주권 34] 본문

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주권 34]

En Hakkore 2024. 5. 19. 07:54

유기(遺棄)와 하나님의 주권 7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롬 9:23).

하나님은 각 사람을 다르게 대하신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어떤 사람들은 완악하게 대하신다. 어떤 사람으로는 '귀히 쓸' 그릇을, 어떤 사람으로는 '친히 쓸' 그릇을 만드신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이 하시는 이유를 두 번째 말한다.

22절과 23절에서 바울은 먼저 '진노의 그릇'을 언급한 후에 '긍휼의 그릇'을 언급한다. 왜 이렇게 하는가? 이 질문의 답이 아주 중요하다. 바울이 이런 순서로 말하는 이유는, 19절과 관련된 것이 '진노의 그릇'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로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시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는 '그의 진노를 보이시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그의 능력을 알게 하기'(알리기) 위해서다. 두 이유 모두 바로의 경우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로마서 9장 22절의 한 부분은 따로 살펴보아야 한다.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KJV)이라는 부분이다. 진노의 그릇들이 자신을 멸하기에 합당하게 만든다는 것이 일반적인 가르침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자신의 사악함을 통해 자신을 준비한다(합당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이란 표현은 하나님이 '이들을 멸하기에 합당하게 하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진노의 그릇들은 자신의 사악함을 통해 멸하기에 합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주 제기되는 주장이다.

멸하기라는 단어는 단순히 형벌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이것은 옳은 주장이다. 불택자들은 자신을 준비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게 이것인가? 분명히 아니다.

11~13절로 돌아가 보자. 에서가 자신을 하나님의 미움의 대상으로 합당하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태어나기 전에도 미움을 받았는가? 바로가 자신을 멸하기에 합당하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재앙이 애굽에 내리기 오래 전에,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는가?

로마서 9장 22절은 21절과 이어지는 게 분명하며, 21절은 20절에서 제기된 물음에 대한 답변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사용된 은유를 끝까지 추적해 보면, 진노의 그릇을 '멸하기로 준비되는' 분은 하나님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이렇게 하시는가? 자신의 객관적이며 미리 계획된 결정을 통해서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시는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여기 제시된 사도의 답변을 종합해 보면, 택하심과 버리심 양쪽 모두에서, 하나님의 광대한 목적은 인간 창조에서 다른 모든 것보다는 뛰어난 바로 그것, 자신의 영광이다"(Robert Haldane, 1762-1842).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심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롬 9:23).

23절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은 하나뿐이다. '긍휼의 그릇'은 '영광을 받기로 예비' 되었다는 것이다. 22절은 진노의 그릇이 멸하기로 미리 준비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를 토대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불택자들 멸하기로 영원 전에 작정하였던 게 아니라 불택자들이 시간 속에서 스스로 무자격자가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문맥에 맞지 않는다. 21절로 돌아가 여기에 사용된 은유를 주목하라. '진흙'은 타락한 인간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물질이다. 진흙은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처리를 타락에 비추어 논의하면서, 진노의 그릇들이 본래 말하기로 준비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진노의 그릇들이 생명을 잃고 상징적인 '진흙'이 된 것은 타락 후였기 때문이었다. 앞의 결론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진노의 그릇들이 멸하기에 '합당한' 게 아니라는 데 주목하라. 만약 진노의 그릇들이 자신의 사악함을 통해 자신을 준비했다면 '합당한' 이라는 단어가 사용될 것이다.

본문은 진노의 그릇들이 멸하기로 '준비된다'라고 말하는데, 문맥에 비춰볼 때, 이것은 창조자께서 진노의 그릇들이 멸망에 이르도록 미리 계획하고 작정하셨다는 뜻이 분명하다. 이 구절에 대한 칼빈의 말을 인용해 보자.

멸망에 이르도록 준비된 그릇들이 있다. 다시 말해 멸망에 이르게 버려지도록 정하신 그릇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진노의 그릇들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들이 빚어지는 목적은 하나님의 징벌과 진노의 예가 되기 위해서다.

바울은 22절에서 타락한 자들은 멸망에 이르도록 준비된 그릇들이라고 말했으나 23절에서는 하나님이 영광을 위해 택자들을 준비하셨다고 말한다. 그렇더라도 양쪽 모두 하나님의 비밀한 계획과 관계가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게 아니라면 바울은 유기된 자들이, 멸망에 이르도록 자신을 버리거나 준비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이들의 운명이 정해졌다는 암시를 준다.

우리는 칼빈의 요약에 완전히 동의한다. 로마서 9장 22절은 진노의 그릇들이 자신을 멸망에 이르도록 '준비했다'고 말하지 않으며, 이들이 멸하기에 적합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이들이 '멸하기로 준비된다'(멸망에 이르도록 준비되어 있다)고 말한다.

문맥은 이들을 '준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객관적이며, 미리 계획된 결정에 따라 이렇게 하신다.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151

'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주권 36]  (0) 2024.05.19
[하나님의 주권 35]  (0) 2024.05.19
[하나님의 주권 33]  (0) 2024.05.19
[하나님의 주권 32]  (0) 2024.05.19
[하나님의 주권 31]  (0) 2024.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