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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주권 32]

En Hakkore 2024. 5. 19. 07:53

유기(遺棄)와 하나님의 주권 5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8).

'그런즉' 이라는 접속사는 바울이 앞의 세 절에서 말한 내용을 근거로 일반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바울은 이런 구절을 토대로 하나님이 바로를 다루시는 경우에서 실증된 원리를 보여준다. 모든 것이 창조자의 주권적인 뜻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분은 어떤 사람은 사랑하시고 어떤 사람은 미워하신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어떤 사람은 완악하게 하시는데, 그 무엇과도 관계없이 오직 자신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하신다.

앞 구절에서 육신의 생각에 가장 큰 혐오감을 주는 부분은 완악하게 하심 -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 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부분에서 진리에 물을 탄다. 가장 일반적인 잘못된 견해는 이것을 형벌로서의 완악하게 하심으로만 보는 것이다(다시 말해, 먼저 하나님을 거부한 자들이 하나님에게 거부당한다는 것이다).

이 해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로마서 1장 19~26절과 같은 구절을 근거로 제시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자들을 '내버려두셨다'(21,24절). 이들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10~12절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완악하게 하다' 라는 단어가 이 두 구절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게다가 로마서 9장 18절은 형벌로서의 완악하게 하심을 말하지도 않는다.

사도 바울은 이미 하나님의 진리에 등을 돌린 자들을 말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에,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을 다루고 있는데,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이 자기가 뜻하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데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가 뜻하는 자들을 완악하게 하시는 데서도 나타난다.

바울은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자를'(그분이 뜻하는 자들을) 완악하게 하신다고 말할 뿐 '그분의 진리를 거부한 모두를' 완악하게 하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구절은 바로에 관한 언급에 곧바로 이어지는데, 이런 사실이 이 구절의 의미를 명확히 해준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럴듯한 해석을 붙이려 했으나 바로의 경우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아주 분명하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8). 하나님이 주권적이고 계획적으로 - 그리고 형벌로서 완악하게 하심과는 다르게 - 죄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구절은 이것만이 아니다. 다음 말씀에 주목하라.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요 12:37~40).

이제 문제는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에서 주신 계시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이다. 믿음은 오랜 탐구와 연구에서 나오지 않고 어린아이같은 마음에서 나온다. 유기 교리를 이해하려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롬 9:19).

이것이 우리 시대에 제기되는 반론이 아닌가? 여기서 바울의 문제는 이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달렸고 하나님의 뜻이 취소될 수 없다면, 하나님이 주권자로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면, 하나님은 자비를 베풀고 싶은 자에게 베푸실 수 있다면,

하나님은 자신이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대신에 벌을 내리실 수 있다면, 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 자비를 베풀지 않으시는가? 모든 사람에게 다 자비를 베푸시면, 모든 사람이 다 순종하게 하실 수 있고 아무도 비난받지 않게 하실 수 있지 않겠는가?

사도 바울은 제기되는 반론의 전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하지 않는다. 바울은 하나님이 허물하지(책망하지) 않으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더 나아가 바울은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자를 친절하게 대하시고, 자신이 원하는 자를 엄격하게 대하신다."는 제 말을 오해하셨네요!"라며 반론에 대해 교묘하게 발뺌하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첫째, 당신은 이런 반론을 제기할 권리가 없습니다. 둘째, 당신은 이런 반론을 제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반론은 전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반론 제기는 하나님을 욕하는 행위이며 하나님이 하신 일을 불평하고 반대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롬 9:19).

이 구절의 분명한 의미를 오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이 말이 어떻게 다른 뜻일 수 있겠는가? 바울의 물음이 다음과 같은 뜻 외에 다른 뜻일 수 있는가?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풀고 자신이 원하는 자를 '완악하게 하신다'는게 사실이라면, 인간의 책임은 어떻게 되는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은 꼭두가시에 불과해 보이며, 하나님이 힘없는 피조물을 '허물하는' 것은 불의하다. '그러면' 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묻기를) 그러면..."

그는 마음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분명한 물음을 던진다. 주목하라.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 교리가 바로 이런 반론을 불러일으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본서가 적어도 몇 몇 사람에게서 이와 똑같은 반론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이유는 분명히 둘 중 하나다.

우리가 로마서 9장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주권 교리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인간의 본성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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