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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복음이 요구하는 거룩은 지속적인 갈등이나 전쟁, 다툼이 없이 우리 마음에서나 사람들의 삶 속에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성실함과 주의함 및 인내심과 함께 늘 내적 다툼이 존재한다. 그것이 성도의 영적 전쟁이다. 우리가 직면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이 많이 있음을 성경이 말씀한다. 그들의 권능과 교활함이 어떤 것인지도 말해 준다. 동시에 그들의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지침들과 격려의 말씀들도 있다. 이처럼 원수들의 공격에 대항하는 격렬한 영적 전쟁을 지속적으로 직면함이 없이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복음적 순종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성경을 부정하는 것이요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모든 이들의 경험을 부정하는 것이다. 사단과 죄와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한다. 우리 안에 있는 계명 순..
그리스도인의 이중적 경험은 바울의 진술과 매우 닮은 것이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 그러나 혹자들은 그 다음 장의 서두에서 말씀하는 것으로 답변을 주고자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4). 왜냐하면 그들은 "육체를 좇지 아니하고 성령을 좇아가기" 때문이다. 성경의 정확한 표현을 주목하라. '육체를 따라 행하지 아니하는 자'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절망하며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분명한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좇는다'(walking)는 말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삶의 여정인 신중한 걸음을 말한다. 거기엔 강요나 번민함이 없는 여정이다. 그것은 질질 끌려가..
욕망과 두려움에 대한 깊은 좌절감은 결코 회심한 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는 자에게 줄 수 있는 두 번째 답변은 이것이다. 사실 거룩한 사람이 되면 될수록, 그의 마음이 더욱 성결케 되면 될수록 자신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서 더 선명하게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그의 심령의 부패함을 더 깊이 자각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 그리하여 신자는 강한 언어구사를 하면서 자신의 속상함을 표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빛 안에서 우리는 그 빛을 본다. 죄가 그 전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죄의 가공할만한 활동이 어떠한지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우리를 통제하고자 하는 죄의 힘을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이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의 양심은 그 죄책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
앞의 표현들은 상당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정확한 것들이다. 성화의 규범에 대해서 우리가 사려깊이 숙고하고 있듯이 그런 고민을 가지지 않은 신자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한 고민을 반박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리의 말씀에 비춰보면 사실임을 느끼고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사실이 그들을 정죄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 기준에 너무나도 많이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측면에서든 어떤 차원에서든 그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임이 명백히 드러나는 것이다. 자신들의 행함이 그 율법의 기준과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며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그 율법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하고서 애통한 마음으로 울부짖는다: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하나님의 불변하는 도덕법은 신자들의 삶의 규범이요 신자들의 성품과 행위가 그에 순응하는 것이어야만 하는 거룩의 표준이다. 그리고 신자의 내적 욕구와 생각들 및 외적 행동이 어떠한지를 측정하는 다림추이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과 같이 우리가 그 율법에 적합한 자가 되는 것은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역사하심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모든 죄의 사악성을 보게 하고 느끼게 하심으로 성령께서 이 일을 하신다. 그리고 그 죄의 통치권으로부터 건져주시고 심령의 성향과 기질을그 율법의 요구에 적합하게 소통케 하심으로 하신다. 그리하여 우리가 순종의 삶을 실제로 살아가도록 도우신다. 모든 중생치 못한 심령들에게 벌어지듯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대감이 ..
복음은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가 율법을 어긴 죄인임을 깊이 발견하고 자각하기 전까지는 참된 회개를 할 수 없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전인이 다 그 율법에 순응하는 삶을 전적으로 살지 못하여서 정죄받기에 합당한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기 전까지는 참된 회개를 할 수 없다. 그 깨달음은 우리의 행함들과 종교적인 행사들의 참여조차도 아무런 효과가 없고 다만 우리는 진정으로 정죄 받아야 마땅한 자였음을 실감케 할뿐이다. 우리의 종교적인 모든 실천들조차도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에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거나 그의 영광에 깊은 관심을 두고 실행할 것이 아니라 형식적이었고 위선적으로 행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기가 좋아서 혹은 지옥에 갈까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
이제 복음의 관계성에 대해서 몇 마디 더 하고자 한다. 첫째로 복음의 은혜는 율법의 엄격한 집행을 누그러뜨리거나 혹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다스리심을 포기하게 하여 그가 몹시 싫어하는 원수들의 마음을 달콤하게 하는 일을 결코 하지 않는다. 율법은 그 자체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이다. 그 특징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시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은 폭군이 아니며 그의 아들이 잔인한 율법의 가혹함으로부터 상처받은 그의 백성들을 회복하기 위하여 폭군의 횡포에 희생하게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불의한 계명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죽으신다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둘째로 성령에 의해서 적용된 율법은 복음을 받아드리는 심령을 마련한다. 율법은 내게 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하..
그 다음에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율법에 있는 하나님의 의의 영광을 경험하는 것과 복음 안에 있는 그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 때문이다. 죄인은 중보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계신 집으로 나아가는 모험을 하게 되고 그의 은혜를 향한 영원한 관심을 내비친다. 그리고 영원히 주님의 것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포기한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며 하나님을 최상으로 즐거워한다. 그로 인하여 그의 마음은 이웃을 향한 사랑을 차별 없이 습관적으로 실천하게 된다. 따라서 그의 마음에 보편적인 순종을 위한 효과적인 토대를 마련하게 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