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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96] 성화론의 규범(완결편)

En Hakkore 2024. 3. 30. 11:54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하나님의 불변하는 도덕법은 신자들의 삶의 규범이요 신자들의 성품과 행위가 그에 순응하는 것이어야만 하는 거룩의 표준이다. 그리고 신자의 내적 욕구와 생각들 및 외적 행동이 어떠한지를 측정하는 다림추이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과 같이 우리가 그 율법에 적합한 자가 되는 것은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역사하심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모든 죄의 사악성을 보게 하고 느끼게 하심으로 성령께서 이 일을 하신다. 그리고 그 죄의 통치권으로부터 건져주시고 심령의 성향과 기질을그 율법의 요구에 적합하게 소통케 하심으로 하신다.

그리하여 우리가 순종의 삶을 실제로 살아가도록 도우신다. 모든 중생치 못한 심령들에게 벌어지듯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대감이 우리 안에 존재하는 동안은 율법이 요하는 것에 순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전장에서 우리는 사람이 참되게 하나님께로 회심하게 되면 그 죄인에게 일어나는 급진적인 놀라운 변화에 대하여 다루었다. 하나님의 요구하심에 자신을 기꺼이 내던지는 사람은 그의 율법을 실행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시 119:127-128).

그런데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왜 그렇게 못하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거룩한 하나님을 위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거듭난 심령에만 하나님의 거룩의 형상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회심한 자는 하나님의 전 율법에 온 마음을 기울인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시 119:72, 86). 거듭난 심령안에는 고정되어 있는 원칙이 있다. 즉 거룩한 율법이 제시한 동일한 원리로서 그 율법이 금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법이 요구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원칙이다.

회심한 자는 습관적으로 자신의 외적인 행동들이 전 율법의 요구에 온전히 부응하는 것이 되도록 사력을 다한다.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시 119:5-6).

회심한 자의 욕구는 주의 법에 대하여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이요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다.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나를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시 119:33-35). 💕

이 모든 구절들이 다 구약성경에서부터 온 것이지 않느냐고 이를 제기할 것이다(그러나 그런 이의는 아무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중생과 그 효과, 그리고 회심과 그 열매들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다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자신의 경험을 묘사한 것에서부터 간접적으로 같은 뜻을 담아내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그 율법에 순응케 하시되 그의 성령께서 그들 속에서 그들의 의향을 율법에 기울이게 역사하심으로 하신다. 율법을 향한 사랑과 순종을 불러일으키심으로 하신다.

그러나 여기에서 신자에게 정말 난감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정직한 마음을 지니고 있고 거짓말하는 것과 위선을 매우 싫어한다. 그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진술할 수 있다:

만일 회심이 하나님의 율법의 거룩하심에 진짜 순응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면, 그 율법의 권위에 복종하고 따르는 것이 온 마음을 다한 지속적인 욕구이며 성실한 자세로 나아가는 것이요 실제 그렇게 행하려고 부단하게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다 내포하는 것이라면, 나는 나 자신을 진짜 회심한 사람이라고 여길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것이 나의 경험이라고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삶의 경우를 보면 그와는 정 반대의 길을 걸어온 것 때문에 너무나 슬프고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뿐이다. 죄의 다스리는 권세가 내 속에서 부서졌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나의 부패와 더러운 욕망들이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다. 내 마음이 온갖 부정한 것의 온상임을 보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성화론 p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