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3/14 (15)
En Hakkore
3. 시대론적 관점으로부터의 가인과 아벨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모형(KJV)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1). 아벨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모형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은 우리 주님이 유대인들에 의해 배척과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에 대한 두드러진 그림자였다. 모형(아벨)과 원형(그리스도) 사이에서, 우리는 최소한 35가지의 일치점을 추측할 수 있다. 아벨을 우리 주님의 모형으로 고철함에 있어, 제단 위에 드려진 이삭과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처럼 우리는 거기에 이중적인 모형이 나타나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벨과 그의 제물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켰다. 이제 모형과 원형 사이의 일치점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해 보도록 하자. ..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4절) 아벨은 가인과 정반대의 제물을 가져왔다.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가져오는 것에서, 아벨은 자신이 타락한 피조물이며 죄인이며 도덕과 법정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존재임을 고백했다.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신적 정죄의 판결에 순복했으며, 그것의 옳음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이 마땅히 죽어야만 하는 존재임을 인정했다. 그는 어린 양의 제물로 드림으로써 자신의 유일한 소망이 자신을 대신하여 죽음의 형벌을 짊어진 대속물 안에 놓여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믿음으로" 제물을 드렸다. 다시 말해서 그는 하나님이 자신이 바친 어린 양을 받으실 것이며, 그것이 흘린 피가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고 그의 공..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4:3). 땅의 소산을 제물로 가져오는 것에서, 가인은 감히 하나님의 계시된 의지(意志)를 외면하고 그 대신에 자기 자신의 의지를 내세웠다. 그러한 제물을 가져오는 것에서, 가인은 자신이 타락한 피조물로서 신적 정죄의 선고 아래 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자신이 죄인으로서, 도덕과 법정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음을 부인했다. 그는 "대속의 희생제물의 죽음에 의한 속죄"가 필요하다는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했다. 그는 자신의 공로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했다. 하나님의 방법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는 오만하게도 자신의 길로 행하면서 자신이 보기에 좋은 제물을 선택했다. 그는 하나님이 저주하신 땅의 소산을 하나님께 드렸다. ..
2. 상징적 혹은 대표적 관점으로부터의 가인과 아벨 가인과 아벨은 각각 두 부류의 사람을 대표한다. 한 사람은 버림받은 자를 상징하며, 다른 사람은 구원받은 자를 상징한다. 한 사람은 형식적인 신앙고백자를 상징하고, 다른 사람은 참된 신자를 상징한다. 한 사람은 자기 공로를 의지(依支)하는 자를 상징하고, 다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의지하는 자를 상징한다.♡ 한 사람은 자기 공로로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를 상징하며, 다른 사람은 기꺼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자 하는 자를 상징한다. 한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거절되고 저주받은 자를 상징하고, 다른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복받은 자를 상징한다. 가인과 아벨 모두 타락한 부모의 자녀들이었으며, 에덴 동산 밖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8, 9절). 죄는 감출 수 없다. 가인의 죄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것을 보고 계셨다.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엄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는가!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민 32:23).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 10:26). 이러한 말씀들은 우리에게 동일한 진리를 가르친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예리한 질문에,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7절). 주석가들에게 이 구절은 항상 어려운 구절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이 구절과 관련하여 충분히 만족할만한 설명을 보지 못했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가인아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냐? 만일 네가 선을 행한다면 다시 말해서 합당한 제물을 드린다면, 네 제물은 받아들여질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네가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네가 드린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그 해결책은 속죄제물이니라. 너는 마땅히 속죄제물을 드릴 것이니라. 그리고 만일 네가 그것을 드린다면, 너는 '우울함'을 가질 것이니라. 다시 말해서 너는 장자권을 가지면..
이제 가인과 아벨이 여호와께 가지고 나온 제물의 성격과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고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이유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바로 이것이 우리가 본장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의 관심의 초점은 단순히 가인과 아벨 두 사람에게가 아니라, 그들이 드린 제물들 사이의 차이에 맞추어져야 한다. 본문 가운데 가인이 자연적이며 도덕적인 관점에서 아벨보다 더 악한 사람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인은 불신자도 아니었고, 무신론자도 아니었다. 그는 기꺼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그는 "땅의 소산으로 삼아 여호와께 가져왔다"(3절). 여기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그의 제물은 피 없는 제사였다. ..
창세기 3장과 4장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다. 전자(前者)에서 우리는 사람 안에서 죄가 시작되는 것을 본다. 그리고 후자(後者)에서는 그렇게 시작된 죄가 자라 열매를 맺는 것을 본다. 전자에서 죄는 개인 안에 있었지만, 후자에서 그것은 가족 가운데 있다. 마치 나병처럼 죄는 사람을 부정하게 하고, 점점 더 퍼져나가다가, 마침내 사망을 맺는다. 3장에서 죄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었다. 반면 4장에서 그것은 같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여기의 순서는 항상 동일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의 권리에 참된 존중심을 갖지 않는다. 또 4장에서 우리는 3:15이 부분적으로 성취되는 것을 본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