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성화론 97] 성화론의 규범(완결편) 본문

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97] 성화론의 규범(완결편)

En Hakkore 2024. 3. 30. 11:55

앞의 표현들은 상당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정확한 것들이다. 성화의 규범에 대해서 우리가 사려깊이 숙고하고 있듯이 그런 고민을 가지지 않은 신자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한 고민을 반박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리의 말씀에 비춰보면 사실임을 느끼고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사실이 그들을 정죄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 기준에 너무나도 많이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측면에서든 어떤 차원에서든 그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임이 명백히 드러나는 것이다.

자신들의 행함이 그 율법의 기준과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며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그 율법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하고서 애통한 마음으로 울부짖는다: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

그와 같은 고민에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첫 번째 답변은 이것이다. 그러한 정직한 고백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참으로 회심한 사람임을 보이는 분명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위선자가 아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고 울부짖는다. 중생하지 못한 심령은 그 율법에 순응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애통해 하는 법이 없다.

사랑하는이여! 그러한 경건한 슬픔은 적어도 성경의 한 구절 정도는 여러분 자신의 상황에 적합한 것이 되게 할 것이다: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나이다"(시 42:3). 그러한 고백은 가룟 유다의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우러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러한 고백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1)라고 울부짖는 자에게 발설되는 것이다.

참으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실제 경험하고 있는 실패와 승리, 탄식과 즐거움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로 남아있다. 중생할 때 새로운 속성이 성령에 의하여 우리에게 수여된다. 그 새 심령은 율법에 기울이게 하고 사랑하게 한다. 💕

옛 성품이 제거되는 것도 아님이 분명하다. 율법을 반대하고 싫어하는 성품도 바뀐 것이 아니다. 거룩의 초자연적인 원리가 성령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내주하는 죄의 원리와 뿌리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워지거나 고상한 것이 된 것이 아니다.

성도에게는 그 마음에 서로 상반되는 두 원리가 존재한다. 그것 때문에 지속적인 싸움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할 수 없다는 것은 그 두 원리를 다 겨낭하는 것이다. 성령의 억제케 하시는 현존 때문에 육체는 악한 욕구들을 전적으로 성취하지 못하게 방해되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의 방해 때문에 성령의 소욕 역시 충분히 달성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두 속성들, 성령과 육체가 공존하고 있어 벌어지는 전쟁은 죄와 거룩의 원칙들이 참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혼란에 빠지게 하고 갈등의 경험을 하는 이유가 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더 깊이 살펴보며 그 진리의 교훈으로 자신의 삶을 잘 견주어 혼란케 하고 당혹스럽게 하는 자신의 경험에 그 빛을 비추어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로마서 7장은 회심한 영혼이 걸어가는 삶의 현장에서 겪는 이중적인 모습에 대하여 가장 명료하고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성령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은 사도 바울이 거기에서 그 자신의 영적 자서전을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마귀가 로마서 7장만큼 싫어하는 성경은 없다.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메시지를 훔쳐가려고 사력을 다하며 교묘하게 활동하고 있다. 앞에서 증명하려고 했듯이 신자는 율법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임을 증명하며 사는 자여야 한다(롬 7:12). 💕

자기 안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율법이 고자질하는 것이 많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경건하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고발이 어떠하든 그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고발한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롬 7:15).

죄로부터 자신이 얼마나 멀리 있어 꽤 만족할 만한 수준에 있느냐와 상관이 없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에게 그것은 가장 큰 탄식이다. 하나님의 탁월하심에 대하여 깨달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지음 받은 것들로부터 지으신 그가 얼마나 놀라운 영광을 받으셔야할 분인지를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이 얼마나 많은 빚을 진 자인지를 자각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사랑의 순종을 지꺼이 드려야 할 존재임을 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자신의 슬프고 지속적인 실패에 대한 신자의 애통함은 자신이 그렇게 살아야만 하고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Arthur W. Pink 성화론 p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