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3/15 (15)
En Hakkore
9. 히브리서 11:7은 노아가 "자신의 집을 구원" 하였다고 말한다. 여기에 나타나는 노아의 사역의 성공적인 결과는 우리에게 히브리서 3:6이 언급하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그러나 모형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동물과 새까지도 방주 안에서 보존된 사실에 나타나는 것처럼, 노아의 사역은 모든 피조물에게 축복을 가져다준다. 이것이 창세기 8:1에 얼마나 아름답게 나타나는지 주목하라.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역 역시도, "피조물 역시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를" 것이다(롬 8:21). 💕 10. 창세기 6:19에서 우리..
6. 하나님은 노아에게 위대한 일을 맡기셨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형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창 6:14, 18, 19).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매우 중요하면서도 어마어마한 일을 맡기시는 것을 발견한다. 한 사람에게 그와 같은 엄청난 일이 맡겨지는 것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각 피조물의 대표를 보존하는 일이 노아에게 맡겨졌다. 여기에서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나타나는 것은 설명이 필요치 ..
노아의 인물과 성격을 연구함에 있어, 그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온전한 연구가 될 수 없다. 이제 모형(노아)과 원형(그리스도) 사이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일치점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1. 노아라는 이름 자체가 장차 오실 자를 미리 나타낸다.♡ 창세기 5:28절에서 우리는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하는 말씀을 읽는다. 노아는 "안식" 을 의미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안식을 가져다 줄 자" 와 "저주로 말미암아 초래된 수고로부터 위로를 가져다 줄 자"로 인식했다.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29절). 라멕은 자기 아들을 "저주로부터 구원을 가져다 줄 자..
"하나님의 아들들"이 타락한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해석을 반박하기 위해 종종 마태복음 22:30이 인용되곤 한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30).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 말씀을 주의 깊게 연구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여기에 앞의 해석과 상충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 주님이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천사들과 같으니라"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러한 반박은 상당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는 "천사들" 앞에 "하늘에 있는" 이라는 한정어를 덧붙이셨다. 바로 이것이 모든 차이를 만든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은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간다. ..
이제 홍수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창 6:1, 2). 여기의 "하나님의 아들들"의 정체와 관련하여 주석가들 사이에 많은 의견 차이가 있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관점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의 결혼을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결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고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을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두 계열이 점차적으로 혼합되어 마침내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 사이의 구분선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홍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
뿐만 아니라 그에 더하여 그들은 신적 계시의 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적 계시의 빛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첫째로, 사람들은 구속자의 약속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첫 조상들이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나기 전에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으며, 신자들은 그의 나타남을 대망(待望)하며 기다렸다(창 49:18을 보라). 둘째로, 여호와께 나아가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속죄의 희생제사가 있었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죽옷을 통해 아담과 하와에게 알려 주셨다. 그것은 그들의 벌거벗은 것을 가리기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그러한 희생제사를 드려야 할 필요성과 그것의 의미가 ..
에녹에 대해 공부하는 가운데, 우리는 "므두셀라"라는 그의 아들의 이름 속에 장차 임할 홍수에 대한 암시가 담겨 있음을 살펴 보았다 -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창 5:21). 므두셀라의 의미는 "그가 죽을 때 그것(즉 홍수)이 임할 것이라"이다. 이와 같이 그의 이름에 신적 계시가 담겨 있었다. 세상은 에녹의 아들이 살아 있는 동안만 존속할 것이었다. 만일 베드로전서 3:20이 여기의 창세기 5:21과 연관된다면, 우리 앞에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 펼쳐진다. "그들(즉 지금 옥에 있는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벧전 3:20). 방주가 준비될 때까지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신" 것은 도대체 ..
히브리서 11:7의 노아의 믿음에 관련해서... 넷째로, 우리는 여기에서 노아의 믿음의 증거를 배운다. 그것은 "방주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생명이 없는 믿음이며, 단지 이름뿐인 믿음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 아니다(딛 1:1).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반문한다(약 2:12).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반면, 야고보는 믿음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혹은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스스로를 신자라고 고백한다. 그러면 나는 그런 고백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