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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94] 성화론의 규범(3) 본문

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94] 성화론의 규범(3)

En Hakkore 2024. 3. 29. 10:21

이제 복음의 관계성에 대해서 몇 마디 더 하고자 한다.

첫째로 복음의 은혜는 율법의 엄격한 집행을 누그러뜨리거나 혹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다스리심을 포기하게 하여 그가 몹시 싫어하는 원수들의 마음을 달콤하게 하는 일을 결코 하지 않는다. 율법은 그 자체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이다. 그 특징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시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은 폭군이 아니며 그의 아들이 잔인한 율법의 가혹함으로부터 상처받은 그의 백성들을 회복하기 위하여 폭군의 횡포에 희생하게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불의한 계명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죽으신다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둘째로 성령에 의해서 적용된 율법은 복음을 받아드리는 심령을 마련한다. 율법은 내게 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하며 복음은 율법의 정죄와 권능으로부터 내가 어떻게 건짐을 받을 것인지를 계시하여 준다.

셋째는 복음이 아닌 율법은 우리의 성화와 규범이다. 율법은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며 복음은 그 요구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나 동기들을 제공한다.

넷째로 율법과 복음은 서로 대적 관계가 아니라 동격관계이다. 전자는 후자의 시녀이다. 그 둘은 함께 존재하고 신자들의 경험 속에서 동시에 서로 조화를 이루며 일한다.

다섯째, 율법의 높고 거룩한 요구는 복음에 의해서 가장 얕은 수준으로 개정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5)는 말씀은 우리 앞에 설정되어 있는 표준이다.

여섯째로 따라서 의에 대한 기독교인의 규범은 중보자의 손에 있다. "율법이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21). 이집트에서 구속함을 받은 후에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 안에 정말 아름답게 예표된 것은 대표적인 중재자 모세를 통해서였다(갈 3:19).

일곱 번째, 여기에서 우리는 삶의 규범으로서 하나님의 도덕법을 거부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심히 불쾌하게 하는 것임을 깊이 자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과 그의 은혜의 복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다. 전자는 후자에게 상호작용을 한다. 그 둘은 하늘에서도 서로 연관된 영광의 빛을 발한다. 율법은 가장 빛나는 거룩의 아름다운 빛 가운데서 제시되고 죄의 야비함과 무서운 과실은 진노의 자식들에게 가져온 무한히 빛나고 넘치는 영광스러운 은혜를 보여줄 것이다.

은혜는 죄인들에게 전에 그들이 얼마나 악하고 오염된 존재였는지를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율법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다. 율법의 순결함과 거룩성은 그 죄인들의 완전한 거룩함 가운데서 충만하게 예증될 것이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는 율법과 은혜의 관심사항들이 참으로 아름답게 조화되고 불가분의 것으로 연합되어 그의 성도들 안에서 영화롭게 될 것이요 믿는 자들에 의해서 경배 받으시게 될 것이다'(제임스 프레이지, 성경적인 성화론 1760).

중생케 하시고 거룩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을 그 율법에 순응하는 자가 되게 하시며 복음을 준수하게 만드신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마암음이니라"(고후 3:18).

그의 공의와 거룩의 영광이요, 그의 위엄 있고 권세있는 통치의 영광이다. 그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온 마음을 다하여 그를 사랑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를 위하여 그의 지음 받은 피조물로서 우리의 이웃들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요구하신다.

우리가 바라보는 '주의 영광'은 둘째로 복음의 거울 안에서 빛이 비추인다. 이것은 그의 구속하시는 사랑의 영광이다. 그의 놀라운 은혜의 영광이다. 그의 풍성한 자비의 영광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로서 이 영광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주님의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한다(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단어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상에서 변형된 모습을 나타낸 단어와 동일한 것이다).

영광에서 영광으로(점진적으로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나아가는 것) 변화됨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는다. 즉 그 율법에 진짜 부합하는 자가 되고 복음과 진짜 일치가 되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Arthur W. Pink  성화론 p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