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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95] 성화론의 규범(3)

En Hakkore 2024. 3. 30. 11:53

복음은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가 율법을 어긴 죄인임을 깊이 발견하고 자각하기 전까지는 참된 회개를 할 수 없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전인이 다 그 율법에 순응하는 삶을 전적으로 살지 못하여서 정죄받기에 합당한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기 전까지는 참된 회개를 할 수 없다.

그 깨달음은 우리의 행함들과 종교적인 행사들의 참여조차도 아무런 효과가 없고 다만 우리는 진정으로 정죄 받아야 마땅한 자였음을 실감케 할뿐이다. 우리의 종교적인 모든 실천들조차도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에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거나 그의 영광에 깊은 관심을 두고 실행할 것이 아니라 형식적이었고 위선적으로 행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기가 좋아서 혹은 지옥에 갈까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형식적으로라도 하면 그로 인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 같은 희망으로 실천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묵묵부답이다. 그렇게 늘어놓았던 변명거리들이 쏙 들어가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우리에게 부과되는 율법의 저주는 과연 타당한 것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존재인지를 보게 되면 주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아온 자신을 깊이 한탄하며 우리 스스로를 완강한 고집불통의 곤고한 사람으로 정죄할 뿐이다. 그러한 현상들이 참된 회개의 요소들이다.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믿으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의 권위를 바탕으로 그 놀라운 복된 소식을 받으라고 요구한다. 전에 무례하게 모독했던 그 하나님은 지금 원수들을 위해서도 자비를 가지신 분임을 받으라고 한다.

세상의 통치자께서 제정하여 너무나도 악명이 높고 지속적으로 무섭게 다가와 우리가 짓밟아버린 그 법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 안에서 우리가 용서 받을 수 있는 한 방편을 가지신 것으로 받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거룩한 율법을 무시하거나 거절함이 없이 죄 사함의 길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 율법 아래에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께서 나신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다.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으로 온전히 그 계명에 순종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계명의 무서운 형벌을 감당케 하고 그 무시무시한 저주아래에서 죽으셨다.

그러나 죄인이 성령에 의해서 깨우침을 받아 살아나게 되면 순결한 그 은혜에 대한 계시는 부정할 수 없는 참된 것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신자에게 그의 경우는 정말 절망이었고 자비가 자신에게 미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 존재이며 도저히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존재임을 알게 해 준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자는(우리는 만일 여러분 중 결코 그런 과정을 거친 적이 없는 분이 있다면 진정으로 그런 자를 긍휼히 여긴다) 그가 세상을 만드는 것보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오직 성령만이 구원 얻는 믿음을 수여해 주신다.♡

복음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한다. 우리 자신을 다 그리스도의 주 되심에 전적으로 내려놓으라고 한다. 그의 멍에를 지라고 한다. 그가 가신 길을 가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 멍에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거리낌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사신 삶의 규범은 하나님의 법에 의하여 모든 것을 책정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신다. "만일 나를 좇으려거든 먼저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마 16:24). 그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그의 가신 길을 가도록 하나의 모범을 남겨주셨다.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의 운명이 들어 있는 복음의 이 요구에 응하라는 것을 사람들은 거절하였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니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 2:7-8).

또한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벧전 4:17). 그러나 복음이 요구하는 것에 순종하는 것은 은혜로우신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은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실로 놀라운 것은 가련한 죄인이 그의 영혼 속에서 성령께서 중생케 하시고 회심케 하시는 역사를 통과하며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이다. 새로운 환경 속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 부분에 대하여 가장 근접한 추론은 고아원 아이들의 경험에서 찾아질 것이다.

어떤 보호자나 안내자가 없이 황량한 들판에 던져진 자들, 어리석음과 폭력적인 일들에 방임된 자들이 한 현명하고 착한 사람의 가정에 한 식구로 입양되었다고 하자. 이 집 없는 고아가 이제 새로운 환경과 영향권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사랑의 돌봄을 받으며 새로운 기질을 습득해간다.

새로운 규칙들이 그 아이에게 적용된다. 옛 것은 다 지나갔으며 모든 것이 그에게 새것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도 그와 같다. 하나님도 없고 소망이 없이 이 세상에서 살았다. 영원한 파멸로 내 몰린 삶을 살았다. 그런 자들이 어두움의 권세로부터 건짐을 받아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갔다.

새로운 본성이 소통하게 된 것이다. 성령 하나님이 신자 안에 내주하시고 하나님과 화목케 된 자들에게 성부 하나님의 돌봄과 보양과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주어진다. 궁극적으로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이끄신다.♡

Arthur W. Pink 성화론 p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