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영적인 연합과 친교 50] 구원에 이르는 연합 4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50] 구원에 이르는 연합 4

En Hakkore 2024. 5. 9. 17:51

구원에 이르는 이 연합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아마도 야곱의 세 아들에게 붙여진 이름의 의미를 통해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르우벤은 '보라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바로 복음 자체가 그리스도를 말하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신령한 복이 우리의 영혼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적이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이기 때문이다.

시므온은 '들으심'을 뜻하는데 우리의 양심에 평안이 찾아오고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가득차게 되는 것은 바로 복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의 목소리를 우리가 들을 때뿐이다.

레위는 '연합함'을 뜻한다. 즉 우리가 아들을 응답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의 말씀을 믿으면서 들을 때에 우리는 그와 관계가 있게 된다. 위트수스는 '활동 중에 있는 믿음은 영혼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의 메아리이거나 반향' 이라고 잘 말해 주었다.

영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보고 듣고 받아들이는 것은 오직 살리심을 받은 영혼뿐이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아이가 구조를 요청하고 기대하며 자기의 사랑하는 아버지께 꼭 붙어있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행위 이전의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관계와 연합으로 인한 결과이다.

택함받은 죄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께 성령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이제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를 붙잡고 그를 맞아들이며 그와 굳게 결합한다. 이리하여 구원에 이르는 연합이 이루어진다.

한 여자가 그녀 자신과 자기의 미래의 모든 이익을 구혼자의 돌봄에 맡김으로써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듯이, 신자도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라고 말할 수 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속하였고 [내 자신이 동의하였고 받아들임으로써]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아 2:16)라고 말할 수 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35). 분리가 있으려면 반드시 결합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먼저 연합한 것이 없이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 편의 성령으로 인한 것이며 우리 편의 믿음으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앙 편은 사랑에 의해 서로를 알게 되며 이 때문에 그들은 서로 나누어질 수 없는 연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큰 증거이자 열매로서 주어진 것이며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불어 넣으신다.

구원에 이르도록 그리스도를 붙잡는 믿음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기" 때문이다(롬 10:10). 그 어느 것도 이들의 포옹을 풀게 할 수 없다. 이제 신자는 그의 사랑으로써 그리스도께 연합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그는 사랑하며 그리스도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그도 미워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머리보다는 그의 마음으로 신앙을 유지한다."(T. 맨튼)

생명적 연합은 중생할 때에 이루어진다. 그때에 우리는 완전히 수동적이며, 그러므로 그때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구원에 이르는 연합은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주실 때, 소생한 죄인 그를 받아들일 때 이루어진다.

이 연합에서 그는 적극적이며 자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의식하고 있다. 옛 이스라엘 사람들이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써(레 1:4)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였듯이, 신자는 자기의 모든 죄에 대한 충분한 희생 양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의지한다.♡

구원에 이르는 연합은 돌아온 탕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아버지의 팔에 안길 때에 이루어진다(눅 15:20). 즉 도망치는 자가 복수하는 법에 쫓겨(민 35:11, 12) 도피성(히 6:18)의 문턱을 넘을 때이며, 죄로 병든 영혼이 믿음의 손을 뻗쳐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접촉을 통하여 그로부터 고침을 받을 수 있게 될 때이다.(막 5:27~29).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과 친교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