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3/24 (15)
En Hakkore
이제 그리스도의 중보적 실천은 그의 삼중직으로 진행된다. 그의 제사장직과 관련하여 즉각적인 효력은 만족과 화해이다. 그러나 그의 중보적 효력은 칭의와 성화이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거룩하지 않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는 것이다. 주님의 선지자직과 관련하여 여기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뜻이 어떠한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을 알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께 복종하게 하신다. 그의 선지자적인 사역 시초에서부터 그리스도는 율법을 본래 그 율법의 순수한 목적에 맞게 회복시키셨다. 유대인들이 타락시킨 것에서부터 건..
2. 우리의 개인적인 거룩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거룩은 행위언약에서만 요구된 것이 아니라 은혜 언약에서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거룩의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도 없다. 가장 사소한 죄까지도 관용적으로 여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복음은 율법보다 덜 거룩한 것이 아니다. 복음과 율법은 다 거룩하신 분으로 나온 것들이다. 비록 섭리는 죄인들의 수많은 죄를 다 용서하고 성도들의 불완전한 순종도 기꺼이 수용하는 것으로 준비된 것이라 할지라도 칭의의 기준이 완화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거룩의 의무를 어느 정도 감소시키는 어떤 것도 복음이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가장 작은 죄 정도는 용인할 수 있다는 기준저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언약의 차이는 두 가지이다. 행위 언..
거룩하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다른 신을 찾아 섬기고 예배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결코 만나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옛 이교도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심령 속에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간직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롬 1:28). 그리하여 모든 더러움과 게걸스러움에 자신들을 맡겼다. 그들은 신적인 존재에 대한 개념을 상실했다. 그리하여 그들 자신들이 원하는 더럽고 악한 신들을 만들어 만족스럽게 섬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언하시기를 타락한 인간들의 삶은 낯선 희망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다.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리라"(시 50:21). 한편 하나님의 거룩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들 중에는 비..
이러한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리하여 개인적인 거룩을 왜 추구해야하는지 그 필요성을 특별히 제시하고자 한다. 1. 우리의 개인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이 요구하는 것이다. 거룩은 신적 속성의 탁월성과 영광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시지만(엡 2:4), 거룩함에 영광스러운 분이시다(출 5:11). 그의 자비는 그의 보물이지만 거룩은 그의 영광이시다. 그는 이 완전함으로 맹세하신다: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 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시 89:35). 성경에서 그는 무려 30여 번이나 "나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땅에서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이 한결 같이 하나님을 흠모하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심령과 삶의 거룩함이 우리의 구원에 절실한 부분으로서 믿음으로 진지하게 추구해야 할 덕목이라는 점이다. 복음 안에 살면서도 수많은 무지한 사람들이 죄에 대해서 매우 둔감하고 그들의 영혼을 영원히 망치고 있다. 거룩에 전혀 포함되지 않은 구원에 대한 망상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의존하며 오로지 죄 사함과 영벌로부터 자유함을 얻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정욕을 사랑하고 거룩은 싫어하며 죄의 섬김으로부터 구원받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처럼 유해한 미혹에 반대되는 길은 혹자들이 하는 것처럼 구원을 위하여 오직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행위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룩을 위해서도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 없이는 진짜 구..
'우리는 거룩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받게 되는 구원의 매우 필요한 부분으로 여긴다. 혹자들은 행위언약 속에 푹 젖어있다. 그들은 선한 행실들을 구원에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들을 정죄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흥미를 가지게 하는 조건들로서 혹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기에 아주 적합한 준비단계로서 선한 행실들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정죄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부류들, 우리가 행함이 없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다는 성경적인 가르침을 받게 될 때 율법에 대한 순종은 구원에 전혀 필요 없는 것으로서 전혀 관심거리가 아닌 것으로 전락시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율법에 대한 순종을 전적으로 무시해버린다면 값없이 베푸는 은혜만이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것을..
성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으로 여기서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성화 혹은 거룩함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내적 변화 혹은 우리 영혼의 혁신으로서 그로 인해 우리의 생각들과 감정들 및 의지들이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둘째, 순종의 모든 의무들과 악으로부터 자제하는 것에 있어서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어떤 부당함이 없는 순종함이다. 그것은 믿음과 사랑의 원리로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셋째, 우리의 모든 행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을 따라서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 어떤 결핍함이 없는 이것이 복음적이요 구원 얻는 성화이다. 심령은 반드시 변화하여 하나님의 본성과 의지에 부합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한다. 그 동기들과 욕구들, 생각들과 행동들은 정결케 되어야..
본 장에서 우리는 신학적이거나 혹은 추상적인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매우 실천적인 방식으로 성화의 필요성을 제시하려고 한다. 주님께서 이 글을 통해서 우리의 가련한 심령에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시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리고 우리의 무감각한 양심을 살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주제가 다루는 가장 중요한 줄기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우리를 움츠려들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육체와는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악 중에서 출생하고 죄 가운데서 잉태된 자들로서(시 51:5) 우리의 심령은 본질적으로 거룩을 싫어한다. 거룩을 경험하는 것과 상반된 길을 가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에게 말씀하셨듯이 "정죄는 이것이니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어둠을 빛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