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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17] 성화의 필요성2 본문

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17] 성화의 필요성2

En Hakkore 2024. 3. 24. 13:09

거룩하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다른 신을 찾아 섬기고 예배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결코 만나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옛 이교도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심령 속에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간직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롬 1:28).

그리하여 모든 더러움과 게걸스러움에 자신들을 맡겼다. 그들은 신적인 존재에 대한 개념을 상실했다. 그리하여 그들 자신들이 원하는 더럽고 악한 신들을 만들어 만족스럽게 섬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언하시기를 타락한 인간들의 삶은 낯선 희망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다.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리라"(시 50:21).

한편 하나님의 거룩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들 중에는 비록 그들이 거룩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납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에 대한 거짓된 개념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 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왜 그런가? 우리가 하나님의 그 성품에 부합해야 할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모양과 현상에 따라 지음을 받은 자들이다. 본질적으로 거룩한 자로 지음을 받은 것이다. 그 안에 보다 낮은 다른 피조물보다 더 나은 자리에 있는 인간의 특권과 복과 뛰어남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부합하는 이 거룩함이 없이는 우리를 지으실 때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하나님과 관계형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죄가 들어옴으로 이것을 잃어버렸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다시 획득할 수 있는 방편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창조 목적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회복은 우리가 거룩한 자가 됨으로 말미암는데 왜냐하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 일어났기 때문이다.(엡 4:22-24, 골 3:10). 우리가 하나님에게 합당한 성품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일이 없이는 하나님께 어떤 관심을 끌만한 것이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성결케 되는 것은 의롭다함을 요구받는 것과 같은 것이다. 거룩함이 없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리에 이른다고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룩하지 않은 분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께 가장 상상할 수 없는 무엄함을 저지르는 것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죄를 떠나든지 하나님을 포기하든지 둘 중의 하나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하늘과 지옥을 쉽게 연계시키려고 하고 빛과 어둠, 선과 악의 차이를 가볍게 없애고자 한다. 그것은 거룩하지 못한 사람을 하나님이 용납하심을 얻고자 하는 무모한 짓이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우리의 거룩함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건과 순종은 공적(功績)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들이 없이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잘못된 생각을 하고 산다.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는 거룩이 불필요하거나 무용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죄를 섬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유지하는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들을 죄 가운데서 안전을 획득하신 분이 아니라 죄로부터 구원을 이루신 분이다.♡

하나님을 닮아가며 자라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 속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다. 저자나 독자나 다 매일 이 땅에서의 삶의 마지막 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저자는 1952년 7월 15일에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가 지옥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길을 걸으면서 하늘나라로 더 가까이 나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엄청 속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은혜가운데서 자라가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영광을 향해 순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저하게 기만당하고 있는 것이다.

주관적으로 생각할 때 신자들의 영광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본다(요일 3:2). 지금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훗날에는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거룩함 가운데서 자라가는 것 외에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길은 없다.♡

그로 인하여 영광과 영광에 이르는 형상으로 변화하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고후 3:18). 즉 최후의 위대한 변화로 말미암아 영광스러운 은혜의 자리에서 영원한 영광가운데 모든 은혜와 거룩함에 이르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사악한 죄인이라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오면 하나님은 기꺼이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분이 아닌가? 그의 자비는 놀랍고 그의 은혜는 값없이 베푸시는 것이기에 죄인들의 가치나 의로운 행실을 전혀 염두에 두시는 분이 아니잖은가?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그토록 거룩을 일관되게 요구하신단 말인가? 이러한 반대 질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하는 것들이다. 만일 인간이 거룩해야한다면 육적인 사색자들의 은혜의 필요성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거룩하지 않기 때문에 멸망당해야 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인지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은혜가 넘치기 때문에 우리가 죄 가운데서 산다는 육적인 생각들보다 더 합리적인 사고들을 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것은 로마서 6:1절에서 찾아진다. 거기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은혜가 넘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부가설명하고 있다.

우리 안에 거룩함이 없이는 은혜는 은혜가 아닌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이름을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분으로 선포하고 계신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여호와 하나님은 즉각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순종함이 없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을 명백하게 죄인으로 선언하시는 것이다.

Arthur W. Pink 성화론 p5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한일서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