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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13] 성화의 필요성1 본문

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13] 성화의 필요성1

En Hakkore 2024. 3. 24. 13:07

'우리는 거룩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받게 되는 구원의 매우 필요한 부분으로 여긴다. 혹자들은 행위언약 속에 푹 젖어있다. 그들은 선한 행실들을 구원에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들을 정죄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흥미를 가지게 하는 조건들로서 혹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기에 아주 적합한 준비단계로서 선한 행실들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정죄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부류들, 우리가 행함이 없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다는 성경적인 가르침을 받게 될 때 율법에 대한 순종은 구원에 전혀 필요 없는 것으로서 전혀 관심거리가 아닌 것으로 전락시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율법에 대한 순종을 전적으로 무시해버린다면 값없이 베푸는 은혜만이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는 없을 것이다.

실로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율법 폐기론주의의 미혹에 빠져있다. 그들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함을 받은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하여 그들의 행위 속에서 율법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가책을 받지 않는다.'

서로 극단적인 입장을 띠고 있는 이러한 오류들의 한 원인은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단지 지옥으로부터 건짐을 받고 하늘의 행복과 영광을 즐기는 것으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만일 선한 행실 역시 우리의 모든 구원에 앞서 있어야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만일 선한 행실이 우리의 모든 구원에 필요한 수단이 아니라면 그것들 역시 영화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그러나 비록 구원이 성경에서는 아주 탁월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지라도 하늘의 영광가운데서 구원의 완전함을 위하여 그러나 구원의 충만함과 적절한 중요성에 따라서 우리는 그 구원이 우리의 부패한 본성의 악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거룩함과 즐거움은 우리 구주 그리스도로부터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받든지 또는 영화가운데서 장차 도래할 나라에서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칭의,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선물, 양자의 특권(내주하는 죄의 다스림으로부터 건짐을 받음. A. W. Pink)들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참예하는 우리 구원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에 순응하는 우리의 마음과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채워지는 의의 열매들은 우리 구원의 필요한 부분이다.♡

하나님은 여기서 우리의 죄악된 부정함으로부터 건져주셨다.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그렇게 하셨다(겔 36:29, 딛 3:5). 또한 이후의 지옥으로부터도 건져주셨다. 그리스도는 구세주라는 뜻의 예수시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로부터 건져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마 1:21).

그러므로 우리의 죄악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은 우리 구원의 한 부분이다. 그 일은 칭의와 성화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장차 도래할 세상에서 영화로 말미암아 완벽하게 된다. 과연 우리는 그것이 이성적으로 우리를 소생시키시는 그리스도에 의한 우리의 구원의 한 부분인지 아닌지를 의심할 수 있는가?

그리하여 우리가 본질적으로 죄와 허물로 죽은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우리가 타락으로 상실해 버린 거룩과 의로움이 우리에게 회복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게 되고, 사단과 우리의 욕망으로 굴욕적으로 악한 종노릇하던 자리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와 함께 걷는 존귀를 얻게 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을 과연 의심할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이 우리 마음과 삶에서 나타나는 거룩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 세상에서 거룩은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구원을 이루는 방편으로서만이 아니라 그 목적의 일부분으로서 고귀한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비록 우리는 구원을 일으키는 원인들로서 선한 행실로 인하여 구원함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구원함을 받은 자들이다.

구원함을 주시는 은혜의 열매들과 효과들로서 선행을 하는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신 것이다(엡 2:10).

실로 그것은 행위 언약의 속박으로부터 건짐을 받게 된 우리 구원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구원의 끝은 우리가 아직 죄에 대하여 자유함을 가진 것이 아니나(노예의 최악 상태) 자유의 신적 계명을 지켜야 할 것이며 우리는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기에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고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것이지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 것이다(갈 5:13, 롬 7:6).

Arthur W. Pink 성화론 p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