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3/13 (15)
En Hakkore
4. 타락과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3:9).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부르심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것은 죄인을 호출하는 경찰관의 엄중한 음성이 아니라, 간절한 사랑의 부르심이었다. 여기의 어두운 배경은 단지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함을 더 풍성하게 나타내는데 도움이 될 뿐이다. 우리의 첫 조상들은 얼마나 큰 호의를 입었었나! 그들은 사람의 마음이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축복을 받았다. 그들의 자유에 오직 하나의 제한만이 주어졌을 뿐인데, 그것은 창조주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충성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볼 때 그들의 죄는 얼마나 악독한 것이며, 그들의 타락은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 설령 하나님이 그들을 영원한 사슬로 결박하여 흑암 아래 던진..
3. 타락과 인간 아담과 하와에게 있어 타락의 첫 번째 결과는 그들의 수치가 실현된 것이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 알고"(7절). 죄를 통해 사람은 전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 최소한 작용하고 있지 않았던 것 - 즉 선과 악을 아는 양심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타락하기 전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사람은 무죄한 상태로 창조되었는데, 무죄함은 악을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지된 열매에 참여하자 마자 사람은 자신의 악(惡)을 의식하게 되었으며, 눈이 열려 자신의 타락한 상태를 보게 되었다. 양심 혹은 도적적인 본능은 이제 인간의 공통적인 본성이 되었다. 인간은 자기 안에 자신의 타락을 증언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양심이 창조주의 작품임을 보여 주는 한 가지..
2. 사탄과 타락 여기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신비한 인격적 존재인 마귀와 만난다. 그는 그의 이전의 역사(歷史)와 관련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자기 등장한다. 그의 창조, 아담 이전의 그의 존재, 그가 가지고 있었던 존귀한 지위와 그로부터의 가공할만한 타락 등에 대해, 우리는 예컨대 이사야 12:14-15이라든지 혹은 에스겔 28:12-19 등과 같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 의존한다. 그렇지만 여기의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우리의 대적(對敵)과 관련한 몇 가지 중요한 교훈들을 배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활동영역. 그가 접근하는 방법, 그의 유혹의 형태 등에 대해 배운다. 또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궁극적인 패배와 멸망의 확실함에 대해 배운다. 사탄을 총체적인 육체의 죄의 창시자로 만드는 통상적인 ..
창세기 3장은 전체 하나님 말씀 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통상적으로 창세기는 성경의 모판으로 불리는데, 이것은 특별히 3장과 관련하여 사실이다. 여기에 기독교를 구성하는 많은 교리들이 근거하는 기초가 있다. 여기에 신적 진리의 많은 강(江)들이 시작되는 근원이 있다. 여기에서 인간 역사(歷史)의 무대 위에서 지금까지 공연되어 온 그리고 거의 6,000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은 위대한 드라마가 시작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류의 타락과 멸망의 상태에 대한 신적 설명을 발견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원수 마귀의 간교한 책략에 대해 배운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적 은혜가 없이는 결코 의의 길을 행할 수 없다는 인간의 전적 무력성을 발견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죄의 영적 결과가 사람이 하나님으로..
이제 두 나무 사이의 유사점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1. 두 나무 모두 동산에 심겨졌다. 첫 번째 나무는 에덴 동산에 심겨졌으며, 두 번째 나무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떤 동산에 심겨졌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요 19:41). 이러한 말씀은 우리가 두 나무를 서로 연결시켜야만 하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첫 번째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 모두 "동산"에서 죽은 것은 얼마나 놀라운 유사점인가! 2. 두 나무 모두와 관련해서 우리는 "가운데"(in the midst)라는 말씀을 발견한다.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3:9). 여기에서 두 나무를 함께 연결하는 접속사 "와"(and)는 두 나무가 동산 한가운데 나란히 있었음을 암..
우리의 목적은 창세기를 세부적인 부분까지 샅샅이 해설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창세기의 거대한 광산으로부터 비교적 눈에 잘 안 띄는 보화들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그 광산에는 무궁무진한 영적 보화들이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실천적인 교훈뿐만 아니라 각종 상징과 모형과 예시(豫示)들로 가득 차 있다. 창세기를 한 장 한 장 살펴나가는 가운데 그러한 것들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 될 것이다. 구약의 상징들을 연구하는 가운데, 우리는 때로 그것들을 비교하거나 또 때로 그것들을 대조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방법의 한 가지 두드러진 실례(實例)를 우리는 창세기 둘째 장에서 발견한다. 9절에서 우리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해 듣는다..
3. 셋째 날의 역사 속에 우리 주님의 부활이 상징적으로 제시된다. 제 2장의 내용은 우리가 처음에 계획한 분량을 이미 초과했다. 따라서 우리는 부득이 나머지 내용은 간략하게 다루어야 한다. 구속사역을 성취함에 있어 필요한 세 번째 단계는 십자가에 달린 자의 부활이었다. 죽은 구주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할" 수 있으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항상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히 7:25). 그것은 여기의 상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셋째 날의 역사(役事)가 부활을 상징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한 사실은 셋째 날에 발하여진 "뭍이 드러나라"라는 말씀 가운데 나타난다(9절). 전에 땅은 물 아래 가라앉아 - 혹은 수장(水..
2. 둘째 날의 역사 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상징적으로 제시된다. 구속사역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다음 단계는 무엇이었는가? 성육신 그 자체는 우리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되는 흠 없는 완전한 삶을 계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파멸된 죄인 사이의 거대한 간격에 다리를 놓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를 위해 죄가 제거되어야만 했으며, 그것은 죽음이 들어오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하나님의 어린 양은 죽임을 당해야만 하며, 거룩한 자는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