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3/13 (15)
En Hakkore
1. 첫째 날의 역사 속에 신적 성육신이 상징적으로 제시된다. 타락한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하고자 한다면, 어떤 일이 행해져야만 하는가? 하나님과 사람을 나누는 무한한 간격에 어떻게 다리가 놓일 수 있나? 어떤 천상의 사다리를 땅에 내려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오직 하나의 답변만이 가능할 수 있다. 인류 구원을 위한 첫 단계는 신성(神性)의 성육신이어야만 한다. 바로 이것이 출발점이 되어야만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야만 하며 하나님 자신이 죄 가운데 인류가 떨어진 바로 그 구덩이로 내려오셔야만 한다. 그래야만 인류가 진흙과 흙탕물이 가득한 곳으로부터 천상의 아름다운 장소로 옮겨질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종의 형상을 취하고 사람의 모양을 입으셔야만 한다. 💕 이와 같이 첫째 날의 역..
창세기를 처음 고찰하면서, 나는 여기의 창조사역과 "새 창조" 즉 신자 안에서의 영적 창조 사이에 존재하는 두드러진 유비관계(類比關係)를 지적했다. 먼저 어둠이 있었고, 다음으로 성령의 활동이 있었으며, 다음으로 권능의 말씀이 선포되었으며, 다음으로 빛과 함께 부활과 풍성한 열매가 있었다. 이와 같이 여기의 6일 간의 하나님의 사역의 기록 속에는 우리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유능한 사람들이 이미 충분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고자 한다. 대신에 나는 여러분과 함께 여기의 구절들을 좀 다른 각도에서 적용해 보고자 한다. 창세기 첫째 장 속에는 그리스도와 관련한 것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관심을 기울이고자 하는 것은..
5.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4 하반절).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라고 말한다.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다. 우리는 이것이 문자적인 사실을 표현한 것으로 믿는다. 사람은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된 삼중적인 존재이다(살전 5:23). 피어슨(Dr. Pirson)은 그것들을 다음과 같이 구별한다. "영은 하나님을 의식(意識)하는 좌소(座所)이며, 혼은 자아를 의식하는 좌소이며, 몸은 감각을 의지하는 좌소이다". 죄를 범하는 순간, 아담은 영적으로 죽었다. 육체의 죽음은 영이 몸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지만, 영의 죽음은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
3.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2 하반절). 여기에서 소망이 동터 오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폐허가 된 최초의 땅을 버리지 않으셨다. 설령 하나님이 버리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의로운 심판 아래 놓으신 것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쓸 까닭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제 황량한 폐허가 된 것에 대해 그가 더 이상 관심을 가질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바로 여기에 주권적인 긍휼이 개입해 들어왔다. 그는 혼돈과 공허를 향한 은혜로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는 그것을 다시 세우며, 회복시키고자 계획하셨다. 이러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최초의 것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었다. 거기에 신적 행동 즉 하나님의 ..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2 상반절). 어떤 두려운 사건이 일어났음에 틀림없다. 죄가 하나님에 대항하여 감히 자기의 가증한 머리를 들었으며, 그와 함께 죽음과 그에 수반되는 모든 악들이 들어왔다. 이로 인해 창조주의 아름다운 작품은 망가졌다. 처음에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은 이제 망가져 버렸으며, 심히 좋았던 것은 심히 악한 것이 되었다. 빛은 꺼졌으며, 땅은 심판의 수면(水面) 아래로 가라앉았다. 처음에 완전했던 것은 폐허가 되었으며, 깊음의 수면 위에 어둠이 거하게 되었다. 아, 이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창세기 1장의 첫째 절과 둘째 절 사이의 대조보다 더 큰 대조를 우리는 결코 상상할 수 없다. 이와 같이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땅은 폐허가 되었다. 최초의 사람..
창세기 1장은 얼마나 놀랍도록 간결한가! 최초로 천지가 창조된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단 한 절로 충분하다(1절). 또 폐허가 된 땅의 무시무시한 혼돈을 이야기 하기 위해 또 하나의 절이 할당된 것이 전부다(2절). 또 채 서른 개도 되지 않은 절(節)들로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든" 6일 동안의 역사(役事)를 이야기한다. 이 세상이 배출한 모든 문학가들과 역사가들과 시인들과 철학자들의 모든 재주를 다 합친다 하더라도 창세기 1장과 견줄만한 작품을 결코 고안할 수 없을 것이다. 주제의 심원(深遠)함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는 얼마나 단순한가! 범위의 광대함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은 얼마나 간결한가! 과학적인 정확성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용어는 전혀 사용되지 않은 것을 보라. 이 세상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는 땅의 상태와 관련하여 1절의 상태보다 훨씬 나중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백여 년 전에 찰 머스(Dr. Chamers)는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하고 공허하며"(was)가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으며"(became)로 번역되어야만 함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1절과 2절 사이에 어떤 엄청난 사건이 개재(介在)되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한 사실은 이사야 45장 18절로부터 확실해진다.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이사야는 땅이 본래 창세기 1장 2절이 묘사하는 상태로 창조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