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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1] 창세기 1장 속에 있는 그리스도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1] 창세기 1장 속에 있는 그리스도

En Hakkore 2024. 3. 13. 11:02

2. 둘째 날의 역사 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상징적으로 제시된다.

구속사역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다음 단계는 무엇이었는가? 성육신 그 자체는 우리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되는 흠 없는 완전한 삶을 계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파멸된 죄인 사이의 거대한 간격에 다리를 놓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를 위해 죄가 제거되어야만 했으며, 그것은 죽음이 들어오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하나님의 어린 양은 죽임을 당해야만 하며, 거룩한 자는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보좌의 의로운 요구가 만족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다름 아닌 십자가뿐이다.

구속이 이루어지는 이러한 두 번째 단계는 둘째 날의 역사(役事) 가운데 상징적으로 제시된다. 둘째 날에 행해진 두드러진 일은 나누며 분리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6, 7절).

여기에 두 가지 나눔이 있는 것을 주목하라. 첫째로,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이 궁창이 물과 물을 나눈다. 둘째로, 이 궁창이 자기 아래의 물과 자기 위의 물을 나눈다. 우리는 여기의 "궁창"이 십자가를 상징한다고 믿는다.

십자가에서 우리 주님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사람으로부터 분리되셨다.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사 53:8).

여기에서 "궁창"이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궁창과 관련하여 여기에 언급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이의 놀라운 유비관계로부터 분명하게 확증된다. 다음 네 가지를 주목하라.

첫째로, 궁창은 그것이 실제로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었다.

6절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궁창이 있으라"라는 말씀과, 7절의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라는 말씀을 비교해 보라. 여기에서 모형과 실재가 얼마나 완전하게 일치하는지 주목하라. 골고다 언덕에 세워지지 오래 전에, 십자가는 이미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었다.♡ 계시록 13장 8절에서 우리는 "세상의 기초로부터 죽임당한 어린 양"이라는 표현을 보게 된다(KJV: the Lamb slain from thee foundation of the world).

둘째로, 궁창은 물 가운데 놓였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에서 "물"이 사람들이나 혹은 나라들을 상징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계 17:15). 그러므로 우리는 "물 가운데 궁창이 있으라"는 말씀을 "백성들 가운데 십자가가 있으라"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 먼저 우리는 그것을 "사람들 가운데" 십자가가 세워질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문자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요한복음 19장 18절을 보라.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또 그것은 갈보리의 지리적 위치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은 실제적으로 땅의 중앙에 - 혹은 가운데 - 위치해 있기 떄문이다.

셋째로, 궁창은 물들로 나누었다.

그와 같이 십자가는 "사람들"을 나누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람들을 나누는 위대한 도구이다. 실제로 골고다 언덕에서도 그랬다. 십자가는 불신의 강도로부터 믿음의 강도를 나누었다. 그때 이래로 역사적(歷史的)으로 항상 그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십자가의 도는 한편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구원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고전 1:18)♡

넷째로, 궁창은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었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7 상반절). 그와 같이 베드로는 오순절 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이라고 선언했다(행 2:23). 또 오래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이라고 말했다. 십자가는 신적 계획과 약속에 따른 것이었다.

둘째 날의 모든 일이 끝난 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빠져 있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만일 여기에 그러한 말씀이 포함되었다면, 상징은 상당 부분 훼손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둘째 날의 역사(役事)는 십자가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며,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죄를 다루고 계셨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자들을 위해 죽으시고 계셨던 의로운 자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떤 죄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으며", 그에 따라 처벌되셨다. 그렇게 볼 때 여기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계속 반복되는 표현이 빠진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 일인가! 💕

Arthur W. Pink 창세기강해 p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