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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결론3[하나님의 주권 88]

En Hakkore 2024. 5. 24. 17:14

요한계시록 17장 17절과 밀접하게 연결된 구절은 미가서 4장 11~12절이다.

"이제 많은 이방 사람들이 모여서 너를 치며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의 계획을 깨닫지 못한것이라 여호와께서 곡식 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 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특히 세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1. '많은 이방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욕스럽게 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모여서' 그를 '칠' 날이 다가오고 있다.

2. 이들은 자신들도 전혀 모르게 -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하나님에 의해 '모인다.' 하나님이 '이들을 모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이 이 '많은 이방 사람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치게' 하시는 목적은 시온의 딸이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리게' 하기 위헤서이다(13절).

이것은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통치를, 자신의 비밀 계획이나 뜻을, 이들을 통해 성취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들도 모르게 그분의 뜻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이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주 예수께서 빌라도 앞에서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누가 이 장면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로마 관리가 있고, 그 앞에 여호와의 종이 서 있다. 빌라도가 물었다. "너는 어디로부터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러자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 19:10). 이것이 빌라도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의 생각이기도 했다.

빌라도는 인간의 마음, 하나님을 밀어내버린 마음의 공통된 확신을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 빌라도를 바로 잡으시는 동시에 일반적인 인간의 교만과 오만을 꾸짖으며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라.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요 19:11), 얼마나 강력한 선언인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의 고위 관리자도 위에서 주신 권한뿐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권한을 주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선한 계획이나 악한 계획을 실행하지 못한다.♡

참으로 사랑하는 아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권한을 빌라도에게 주신 분은 하나님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실 뿐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거짓된 논증과 추론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인간이 타락한 후, 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을 들어보라.

"내가 너로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리니"(창 3:15). 하나님이 단지 죄를 허용하실 뿐이라는 주장은 성경이 이 신비에 관해 계시하는 모든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칼빈이 간결하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허용하셨다는 것 외에 그분이 그것을 허용하신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11장을 끝내면서, 그때 살펴보지 않은 한두 개의 난제를 더 살펴보겠다고 약속했었다. 이제 그 부분으로 돌아가 보자.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로 미리 결정하셨을 뿐 아니라 이들이 행할 선행도 미리 작정하셨다면(엡 2:10 참조). 우리가 실제적인 경건을 추가할 동기가 있는가?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의 수를 정해 두셨다면, 그리고 나머지는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이라면, 우리가 잃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이유가 있는가?(롬 9:21-23 참조). 이 문제를 차례로 살펴보자.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안에서의 신자의 성장

하나님이 일어날 모든 일을 미리 정해 두셨다면, 우리 자신이 "경건에 이르기를"(딤전 4:7) 연습한들 무슨 유익이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가 행할 선행을 미리 정해 두셨다면(엡 2:10 참조), 왜 우리가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써야"(딛 3:8)하는가?

이것은 인간의 책임 문제를 다시 제기할 뿐이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도록 명하셨다." 고 간단히 대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성경은 어디서도 숙명론적 무관심을 가르치거나 조장하지 않는다.♡

성경은 현재 우리의 성취에 만족하는 태도를 분명하게 금한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는 말씀은 모든 신자에게 주신 것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목표였으며, 우리의 목표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해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성숙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돕는다. 자신을 도울 능력이 없다는 죄인의 절망이 확실한 회심의 첫 번째 전제조건이듯이, 자신에 대한 모든 신뢰의 상실이 신자가 은혜 안에 자라는 데 필수적인 첫 번째 조건이다.

죄인이 자신을 도울 능력이 없음을 깨달을 때 주권적인 은혜의 품에 안기듯이, 자신의 약함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주님께 능력을 구한다. 우리는 약할 때 강하다(고후 12:10 참조). 다시 말해 우리는 자신의 약함을 깨달은 후에야 주님께 도움을 구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은 부족한 게 없다고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이 자기 의지력만으로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이 조금이라도 육신을 신뢰할 때,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절대 그러지 않을 거리고 큰소리쳤던 베드로와 같은 태도를 보일 때, 우리도 베드로와 똑같이 실패하고 넘어진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 15:5 참조).

하나님의 약속은 이것이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사 40:29).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실제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단순하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기르는 비결은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고 인정하며, 그럼으로써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분명한 시실은 우리 스스로는 이것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하지만 일이 잘못될 때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지만 누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들은 수많은 구절 가운데 무작위로 뽑은 것일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할 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어떤 일을 우리에게 명하심으로써 우리를 조롱하시는가? 이 물음에 대한 어거스틴의 대답이 우리에게 있는 최선의 대답이다.

"하나님이 우리가 행하지 못할 명령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께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우리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무능력을 깨달을 때, 자신을 모든 능력의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이때 하나님의 주권을 보고 깨닫는 게 도움이 된다. 하나님의 주권은 그분의 풍족함을 보여주며, 우리의 부족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