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부록1]하나님의 뜻 본문

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부록1]하나님의 뜻

En Hakkore 2024. 5. 24. 17:19

결론을 정리하며, 부록은 싣지 않고 참고만 할려고 했습니다만, 지난 3개월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여운이 계속 머리속에 맴돌아 5회에 걸쳐 추가 연재합니다. 조금 긴 장문이지만, 우리 안에 하나님의 크신 위엄과 오묘하신 주권을 분별하고 이해하는 믿음의 폭이 더 깊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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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will, 의지)을 다룰 때, 어떤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작정된 뜻과 허용된 뜻을 구분하면서, 하나님이 단호하게 예정하신 것들이 있는 반면에 단순히 존재하거나 일어나도록 허용하시는 것들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맞는 것만 허용하신다는 점에서, 이런 구분은 실제로 전혀 아무런 구분도 아니다. 이러한 신학자들이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가 아니면서도 죄의 존재를 작정하실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런 구분을 만들어내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옛 칼빈주의자들의 구분, 즉 하나님의 은밀한 뜻과 계시된 뜻을 훨씬 선호한다.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그분의 말씀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분의 은밀한 뜻은 그분만의 감춰진 계획이다.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우리의 의무를 규정하며, 우리 책임의 기준이다. 내가 어떤 길을 가야 하거나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며, 그분의 뜻이 그분의 말씀에서 내게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길을 가지 말아야 하거나 어떤 일을 삼가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 언제나 이루어지며, 그분의 계획이 늘 성취된다는 말이 여전히 참일 수 있는가? 이런 물음들 때문에, 여기서 견지하는 구분이 꼭 필요하다.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거스르는 경우는 빈번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밀한 뜻은 절대로 좌절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계시된 뜻과 은밀한 뜻으로 나누는 구분은 성경적으로 분명히 타당하다. 두 구절을 살펴보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는 거룩함이라"(살전 4:3).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롬 9:19). 생각하고 있는 독자라면, 이 두 구절에서 하나님의 뜻이 정확히 같은 의미라고 말하겠는가? 확신컨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첫째 구절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말하며, 둘째 구절은 하나님의 은밀한 뜻을 말한다. 첫째 구절은 우리의 의무와 관련이 있으며, 둘째 구절은 하나님의 은밀한 목적은 불변하며 피조물의 불순종에도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절대로 우리 가운데 그 누구를 통해서도 완전히, 또는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밀한 뜻은 가장 작은 부분이라도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은밀한 뜻은 주로 미래 사건들과 관련되고,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우리의 현재 의무와 관련된다.

전자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목적과 관계가 있고, 후자는 하나님의 드러난 기쁘심과 관계가 있다. 전자는 우리에게 이루어지고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며, 후자는 우리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은밀한 뜻은 그분이 지으신 모든 것에 대한 그분의 영원하고 불변할 목적이다. 이 뜻은 정해진 목적을 성취하는 어떤 방법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선언하신다.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사 46:19). 이것은 절대적이며, 유효한 하나님의 뜻이다. 언제나 유효하며, 언제나 성취된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그분의 목적과 계획을 내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의무를 계시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자신의 영원한 뜻에 따라 하실 일을 계시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계시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그분의 말씀이 주는 교훈과 약속에서 표현된다.

하나님이 내적으로 결정하신 모든 것은 - 그분이 무엇을 직접 하시든지, 사람들을 통해 하시든지,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허용하시든지 간에 - 그것이 그분의 마음속에만 있고 그분의 개입이나 교훈이나 예언을 통해 계시되지 않는 한 그분의 은밀한 뜻이다.

모든 피조물이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것들과 하나님의 생각들과 하나님의 계획들이 바로 그분의 은밀한 뜻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알려지면, 하나님의 계시된 뜻이 된다. 요한계시록의 거의 모든 부분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하나님은 요한계시록에서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계 1:1 참조, '반드시'라고 한 이유는 그분이 자신이 하실 일을 영원히 목적하셨기 때문이다).

알미니안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뜻과 계시된 뜻으로 나누면 하나님이 서로 상반된 두 뜻을 가지시는 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은밀한 뜻과 계시된 뜻이 완전히 다른 대상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 그릇된 주장이다.

하나님이 같은 것을 요구하신 동시에 금하셨다면, 또는 하나님이 같은 것이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도록 작정하셨다면, 그분의 은밀한 뜻과 계시된 뜻은 서로 충돌하며 무의미할 것이다.

하나님의 은밀한 뜻과 계시된 뜻에 반대하는 자들이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이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구분한다면, 겉으로 보이는 비일관성이 즉시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무엇과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은 무엇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정이 많은 부모는 불순종하는 자녀를 벌하기 싫지만,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자녀를 벌하는 게 자기 의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녀를 벌하여 바로 잡는다. 그가 자녀에게 자신은 그를 벌하기 싫다고 말하더라도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벌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안다.

똑똑한 자녀라면 아버지의 말과 행동이 일관되지 못하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싫어하고 금하며 정죄하는 일들이 일어나도록 일관되게 작정하시는 완전히 지혜로운 창조자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나님은 자신이 그 자체로 완전히 싫어하는 일들이 일어나도록 선택하신다. 하나님은 또한 자신이 그 자체로 완전히 사랑하시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선택하신다. 예를 들어 보자.

하나님은 바로에게 그분의 백성을 보내라고 명하셨는데, 이것이 그 자체로 옳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가 그분의 백성을 보내지 않을 거라고 은밀하게 선언하셨는데, 바로가 거역하는 게 옳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바로가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지 않는 게 '최선'이기 때문이었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더 큰 목적에 기여하기 때문에 '최선'이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생의 삶에서 완전히 거룩하라고 명하시는데(마 5:48 참조), 이것이 그 자체로 옳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은 어느 인간도 이생의 삶에서 완전히 거룩하지는 못하도록 하셨는데,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어느 인간도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완전히 거룩하게 되지(경험적으로) 못하게 하는 게 최선이기 때문이었다.

거룩과 거룩하게 사는 것은 다르다. 죄와 죄를 짓는 것은 다르다. 하나님이 거룩을 요구하실 때, 그분의 계시된 뜻은 거룩의 본성이나 도덕적 탁월성을 가리킨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누구도 완전히 거룩하게 되지 못하도록 작정하실 때, 그분의 은밀한 뜻은 그렇게 되지 못하리라는 것만 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죄를 금하실 때, 그분의 계시된 뜻은 죄의 본성이나 죄가 내포하는 도덕적인 악만을 고려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가 발생하도록 작정하실 때, 그분의 은밀한 뜻은 죄의 실제적 발생이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 기여한다는 점만을 고려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밀한 뜻과 계시된 뜻은 가리키는 대상이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작정과 관련된 그분의 뜻과 하나님의 명령과 관련된 그분의 뜻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그러므로 둘이 상충한다는 문제를 푸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양쪽 모두에서 하나님의 뜻은 그분의 성향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에게 사랑과 순종과 섬김을 명하실 때처럼, 하나님의 계시된 뜻과 관련된 모든 것은 그분의 본성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밀한 뜻은 그분의 궁극적인 목적과 관련이 있으며, 모든 것이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거룩한 본성은 모든 죄를 무한히 싫어하는데도, 하나님은 죄가 자신의 우주에 들어오도록 작정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가 들어오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이것이 그분이 정하신 목적을 이루는 수단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우리의 책임을 재는 잣대이며, 우리의 의무를 결정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밀한 뜻과 전혀 무관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계시된 뜻을 행하는 데 완전히 실패하리라는 것을 아셨기에 여기에 맞게 자신의 영원한 계획을 세우셨다.

하나님의 은밀한 뜻을 구성하는 이러한 영원한 계획은 우리에게 알려지지는 않지만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성취된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러한 구분을 받아드릴 준비가 됐든 안 됐든 간에 반드시 인정해야 할 사실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선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인정해야 할 사실이 또 하나 있다.

하나님은 때로 이러한 계명들에 대한 불순종을 명백하게 방해하지 않으시며, 따라서 막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이 자신이 뜻하지 않는 일을 하신다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관한 나의 책임을 재는 잣대는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에서 알려주신 것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그분이 주신 수단들을 사용하고, 그분이 내게 그 수단들을 주시도록 겸손히 기도하는 게 나의 의무라는 것을 배운다.

나에 관한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이유로 이런 의무를 행하길 거부한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을뿐 아니라 아주 뻔뻔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겠다. 하나님의 은밀한 뜻은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다. 우리의 책임을 재는 잣대는 그분의 계시된 뜻이다. 하나님의 은밀한 뜻과 계시된 뜻은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밀한 뜻은 그분의 계시된 뜻에 계시된 수단의 활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