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3/04 (15)
En Hakkore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 대개 비상시는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때가 된다. 한 인물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은 평범한 일상생활에서가 아니라 위기의 때다. 이것은 위기가 그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위기가 그 사람이 받은 유익한 훈련이나 그가 그런 훈련을 받지 못해 지니고 있는 약점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가 어떤 특별한 경험 때문에 크게 동요할 때 그에게 자신을 다스리라고 명령하는 것은 거의 혹은 전혀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매일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익히지 않은 사람은 특별한 상황하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특별한 열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내가 어떻게 과도한 기쁨이나 슬픔을 피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
인간은 영뿐 아니라 마음도 소유하고 있는 복합적인 존재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성적인 원리뿐 아니라 감정적인 본성도 주셨다. 어떤 사람 안에서는 열정이 보다 강하게 나타나고, 다른 사람 안에서는 지적 능력이 보다 우세하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우리는 그것들 각각의 역할과 상호 작용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감정이 우리를 압도하게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우리는 명확한 사고와 신중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의 감정이 완전히 매말라서도 안 된다. 그럴 경우 우리는 딱딱한 냉소주의자나 차가운 지적 기계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쾌락주의와 금욕주의 사이에 적절한 타협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계속적인 조심과 자기 훈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반역의 결말 "그들이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그를 던지고 그 위에 매우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삼하 18:17). 이것은 얼마나 처참한 결말인가? 그는 나무에 메달렸고, 추종자들에게 버림 받았고,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시신은 아주 크게 조롱당했다. 그는 왕의 아들로서 명예롭게 매장되기는커녕 죄인으로서 치욕스럽게 처리되었다. 사람들이 그를 큰 구멍에 던진 것은 그들이 그의 시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반면에 그들이 그의 시신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은 것은 그가 반역하는 아들로서 돌에 맞아죽어야 마땅했음을 의미한다(신 21:18, 21).🥹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
방자한 요압 상황은 다윗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이 유명한 전사를 고용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통치 초기에는 이 오만한 신하에게 제압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윗의 힘은 점점 강력해졌고, 사울의 잔당들은 흩어졌으며, 그는 명목상이 아니라 실제로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따라서 다윗의 왕좌는 법으로뿐 아니라 실제로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따라서 다윗의 왕좌는 법으로뿐 아니라 여론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었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듣는 지경에 이른다.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삼하 3:36). 결과적으로 그는 이제 그로 통치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그렇게 했다. 왜냐하면 얼마 후 우리는 그가 그 자신의 결단으로 요압을 자기 군대의 사령관으로 임명..
요압의 인물됨 "요압이 이르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삼하 18:14). 요압은 이후의 장들에서도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그의 인물됨에 대해 몇 마디 해야 할 적기(適期)로 보인다. 누군가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말한 바 있다. "요압은 다윗의 추종자들과 가장 가까운 참모들 둘에서도 으뜸가는 인물이었다. 그는 다윗이 동굴에 있을 때부터 그의 곁에 있었다. 요나단이 사울의 왕궁에 머무는 동안, 요압은 광야에서 다윗과 함께 온갖 역경과 위험을 무릅썼다. 이후의 모든 위험속에서도 그는 사자처럼 굳건히 그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섬김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다윗은..
우리는 앞 장을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매달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장면에서 마쳤다. 그의 곤경은 참으로 절망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모든 추종자들이 그를 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다윗은 자신의 장수들에게 분명한 지침을 내렸다.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삼하 18:5). 이 명령 속에는 우리는 군주의 불굴의 성실함보다는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아비의 약함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가 그런 반역자를 용서하려 했던 것은 그의 왕국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압살롬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념(情念)이 정의(正義)의 요구들을 무효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후자가 전자의 갈망과 충돌할 경우 종종 후자를 이행하기..
승리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삼하 18:6). 이 진술은 주석가들에게 문젯거리를 제공해 왔다. 어떤 이들은 불손하게도 성경을 기록한 자가 실수를 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보았듯이, 다윗과 압살롬 모두 요단강을 건넜고, 따라서 지금 그들은 모두 "길르앗 땅"에 있었다(삼하 17:22, 26). 길르앗은 요단강 동편에 있었다. 그리고 에브라임 수풀은 요단강 서편에 있었다. 그렇기에 어떤 회의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이 싸움이 에브라임 수풀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전하는 자가 지형을 착각했던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런 주장은 성스러운 역사에 대한 비판자들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심각..
압살롬을 걱정함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니 대우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지휘관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삼하 18:5). 다윗은 엇나간 지식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컸기에 이런 상황에서조차 그 아들을 죽음에서 구하고자 했다. 그는 압살롬이 자신의 목숨과 왕위를 노렸던, 그리고 무도한 배은망덕과 냉혹한 잔인성과 철저한 사악함과 사탄의 혹심의 화신(化身)으로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반역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성경에서 인간의 애정의 깊이와 힘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 주는, 또한 완전히 무가치한 자에 대한 사랑을 이보다 더 감동적으로 보여 주는 다른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의 생각을 보다 높고 순결한 사랑..